목차
1. 연보쓰기
2. 자서전
2. 자서전
본문내용
신문사에서 전화를 받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때 속초에서는 일용직 노동자조차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리를 하염없이 떠돌고 있었다. 어머니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적어도 그 중에서는. 어머니는 일주일에 여섯 번씩 서울과 속초를 오가며 눈코 뜰 쌔 없이 바쁜 날들을 보냈으나 삼 남매를 키우고 다섯 식구를 먹일 만큼 많은 급여를 받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교통도 차편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하루의 대부분을 도로에서 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방 한 가득 쌓인 술병을 청산하고 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매일 밖에 나가 일자리를 알아보셨다. 그러나 실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사회에서 일할 곳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언니와 오빠는 더 이상 친구들 앞에서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결국 몇 년 뒤, 부모님은 집을 팔고 충북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부모님 두 분이 직접 돈을 모아 마련했던 그 집은 젊은 시절의 노력을 증명하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 집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간다니, 다른 때 같으면 농담처럼 웃고 넘길 일이었으나 그 시기에는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삿짐 트럭을 부를 수도 없어서 우리는 짐의 대부분을 두고 가야했다. 속초에서 충북 청주까지는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때는 터널이나 고속도로 같은 것도 제대로 뚫리지 않았을 때라 지금의 배로 오래 걸린 것이리라. 나는 아직도 그 때 본 풍경을 기억한다. 우리는 해안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어느 터널로 접어들었다. 불빛이 깜빡이는 터널 안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조금 다투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터널을 나오자 갑자기 짙푸른 광경이 펼쳐졌다. 산이 도로 양 옆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다는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 많던 물은, 하늘을 가득 담아내던 해안선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나는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부모님은 놀라 말다툼을 멈추고 나를 달래주셨다. 언니가 나를 꼭 안아주었지만 어째서인지 한참동안 그칠 수 없었던 것 같다. 다음 해 봄, 나는 청주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에 온 부모님의 얼굴은 전보다 한결 나아보였다. 이마에, 콧잔등에 잔뜩 껴 있던 그늘이 조금은 가신 것 같았다. 나는 얼마 전 어머니를 모시고 속초에 다녀왔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요즘 갱년기 탓에 발이 자꾸만 더워져서 모래 속에 발을 확 파묻어버리고 싶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 충동적으로 떠난 길이었다. 속초에 살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바다 냄새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이곳에 도착했으나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난 감상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밀려온 파도에 모래알갱이들이 발가락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바다는 끊임없이 새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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