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른 광장을 빙 둘러가며 서 있고, 가운데에는 깃발을 들고 있는 여인의 동상이 놓여 있다. 그리고 맑고 청명한 하늘이 모든 풍경을 아우른다. 사진 속에서 기분 좋은 바람 냄새가 묻어나는 듯도 하다. 그러나 1937년 이 너른 공간은 소련 정부로 인하여 강제이주를 위하여 수많은 고려인들을 집합시키는 장소로 바뀌었었다. 지금은 다시금 그 탁 트인 풍경을 되찾았으나, 이곳에 얼마나 많은 고려인들의 눈물과 한이 묻혀 있을지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평범한 광장의 경관을 감상하듯 가만히 지켜 보다 보면 슬그머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역사적 아픔이 잊혀지거나 배제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마음도 공존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방면으로 역사를 되돌아보고, 마찬가지로 현재 또한 돌아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 시절 러시아로 망명했다면 어떻게 살아갔을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나 또한 민족의식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러나 아마 사랑하는 가족들도 함께 망명했을 것이기에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과 나의 정체성을 지키고픈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할 것 같다. 먼 이국땅에서 자국의 독립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러시아에 남았을까. 러시아로 이주했던 고려인들 중 대부분은 살던 그곳에 그대로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조선에서 태어나 자란 것은 그들로부터 까마득할 정도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나오는 조상들뿐일 테니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고려인들이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대단하다 생각된다. ‘고려인의 날’과 같은 민족 단합 행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타지의 사회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사람들은 힘들수록 그 고달픈 감정을 나누며 더욱 뭉친다는데, 고려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단결 중시 특성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지기도 했다. 타지에서 국력이 약한 국가 출신 이주민으로서 겪었을 고초는 내가 막연하게 상상해본 것 그 이상일 것이리라. 본문에서 목격했던 지친 이주민들의 눈빛 몇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드넓은 대륙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이주민들… 그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가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을 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되새겨야 하고, 생각해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시금 시작점으로 돌아와 만주를 한 번 살펴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 교육이 의무화 되었으며 그만큼 역사의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감각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런 우리나라의 역사책에도 조금씩은 빈틈이 있다. 바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국내의 역사에 비해, 국외에서 벌어진 우리나라 관련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덜하다는 것이다. 초중고등학생의 교과서를 참고해 봐도, 국내의 항일운동은 중요하게 다루지만 국외에서 행했던 항일운동은 가장 인상에 남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작게 다룬다. 『러시아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을 읽고 나니 이러한 부분에 대해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에 ‘공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모든 페이지는, 그야말로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는 사람들. 공간에서 공간으로 내쫓기는 사람들. 가혹한 칼바람이 과제처럼 주어진 공간들. 자비 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피해 땅을 파고 만들어낸 공간들. 눈을 빛내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공간들. 아이들이 자라나는 공간들.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공간들…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결국,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거주 한인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번 독서를 통해 저 먼 곳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들어 영화 ‘미나리’가 개봉하면서 해외 거주 한인들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해외 거주 한인을 연기한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나는 이것이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거주 한인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나빴던 때도 있었다. 인터넷 등지에서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을 칭하는 속어로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해외에 몸을 담고 소속감을 느끼며 살다가도, 의료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보험이 잘 되어있는 부분은 다 누린다고 하여 붙여진 별칭으로, 해외 거주 동포를 향한 거부감을 내재하고 있는 말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누리면서 세금은 내지 않고, 해외에 나가서는 그 국가의 국민임을 표방한다는 몇몇 해외 거주 동포에 대한 비난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사실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같은 민족을 배척한다면 우리 민족정신 유지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지구촌은 다양화 과정을 통해 같은 핏줄, 같은 지역 출신이 이전보다는 의미 없어진 곳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외 거주 동포들을 배척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같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피해는 그들에게 연결되며, 그들이 타지에서 입은 피해 또한 국내에 있는 우리에게로 직결된다. 최근 들어 더욱 이슈가 되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만 봐도 그러하다. 앞서 언급했던 일제 강점기 시기의 위안부 문제도 그렇다. 우리는 싫든 좋든 같은 역사를 품고 있기에 이를 함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커다란 고양이가 휘젓고 간 실타래처럼 잔뜩 꼬여있는 역사적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미래로 향하는 실마리를 잡아내 끄집어내야 할 것이다. 저자의 러시아 거주 한인들에 대한 연구 또한 그런 의도를 근본적인 바탕으로 둔 것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들에게 더욱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야겠다.
추천자료
(고려인)러시아 한인 이주민문제
[과외]중학 국사 1-12 예상 모의고사
[추석][한가위][추석명절][한가위명절][놀이][풍습][시절음식][세계의 추석]추석(한가위)의 ...
재외동포의 성격, 재외동포법의 기본법안, 재외동포법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재...
[재일동포][재일교포][동포][교포][해외동포]재일동포의 법적지위 역사,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재중동포][재중동포 활용전략][재중동포정책][재중교포][해외교포][해외동포][교포][동포]재...
[재외동포][해외교포][재외교포][해외동포][재일동포][교포][동포][재외동포정책]재외동포의 ...
삼성병원의 성공요인과 새로운 전략 제안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