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와유물유적(기말)) 1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고 감상문 적기 아래 제시된 내용을 포함하여 작성해 주세요 2교재 3장 ‘향교와 서원을 참조하여,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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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와유물유적(기말)) 1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고 감상문 적기 아래 제시된 내용을 포함하여 작성해 주세요 2교재 3장 ‘향교와 서원을 참조하여,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있다. 일반적으로 사당이 잠긴 경우가 많은데 반곡서원의 사당은 내부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개방되어 있었다. 반곡서원의 재실 가운데 우암 송시열을 호를 넣은 우암사가 이었으며 우암사 옆에는 정혼성을 모시는 사당인 동록당도 함께 자리 잡아 뛰어난 학문을 견지한 선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소는 대나무 숲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샘물인 죽천이다. 죽천은 어지러운 생각이 정리될 정도로 맑은 물이었는데, 당시 유배지에 온 선비들이 이 물을 마셨다고 한다. 실제 서원 곳곳에 있는 대나무나 소나무는 임금에 대한 충성을 보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원군은 서원 자체가 너무 힘이 세져서 그 힘을 견제하기 위해 서원철폐령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그렇다고 대원군에 굴복한 선비들이 왕권 강화를 위해 그 힘을 왕에게 받치지 않았다. 대원군의 힘의 논리가 당시 선비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당시 선비들도 송시열이 살았던 시절처럼 순수하게 조선의 발전을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죽천 근처에 병풍처럼 흐드러진 대나무를 보면서 대원군이 오히려 자신을 낮추며 선비들을 다독였으면 조선의 역사가 일제강점기까지는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또한 서원이 지방 인재를 모인 학교다 보니 각 지역이나 문파마다 자신의 의견을 설파하기 쉬웠을 것이다. 즉 중앙정계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지방에 모여 자신들의 뜻을 나누는 장소이다 보니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원이 하나의 지방 권력이 되어 조선보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거나 또는 권력 있는 권문세도가를 위해 학문적 견지를 펼치는 곳도 많았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게다가 영남계 노론 서원 가운데 하나인 반곡서원은 거제 유림을 위한 공공기관이었지만 정계 진출을 위한 생존의 학당이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적 사건들도 진행되었던 반곡서원이지만 분명 당시 선비들의 학문을 정진했던 곳이며 이로써 거제도에 유학의 절정을 이끈 서원이기도 했다.
서원의 붉은 문은 마치 현대의 디자인과도 겨눌 정도로 아름답다. 이곳에는 거제시 거제면 구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구조물도 있어 교육적 효과도 높다. 교육시설이면서도 제향시설의 중심으로 변화한 곳이어서 소박하고 간결한 미학이 돋보인 반곡서원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는 조형미를 구축한 서원이다. 또한 송시열을 추모하기 위한 유허비의 쓰여 진 글귀도 읽는 내내 송시열의 높은 학문을 엿볼 수 있으며 서원 곳곳은 거제의 역사를 자연에 녹아낸 장소이다.
3. 출처 및 참고문헌
1) 해금강 테마박물관
- 해금강 테마박물관 홈페이지 / http://www.hggmuseum.com/
2) 반곡서원
- 거제시 공식블로그 / https://m.blog.naver.com/geojecity/222223465138
- 거제시민뉴스(2023). “거제 반곡서원문학,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 영남 노론과 거제반곡서원” / http://www.geojesim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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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24.01.29
  • 저작시기2024.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239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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