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강해> : 시편 제73편 – 악인의 형통에 대한 신앙적 해답
1. 악인의 번영으로 인한 고뇌 (73:1-14)
① 악인에 대한 질투(2, 3절)
② 악인의 상태(4-9절)
③ 악인의 영향력(10, 11절)
④ 시인의 한탄(12-14절)
2. 세상적 유혹에 대한 극복 (73:15-28)
① 디딤돌(15, 16절)
② 승리에로의 전환(17절)
③ 깨달음(18-20절)
④ 자신에 대한 반성(21, 22절)
⑤ 시인의 변화된 관점(23-26절)
⑥ 새로운 결단(27, 28절)
<설교> :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말라 (시 73:1-28 / 마 6:33)
1. 악인의 번영으로 인한 고뇌 (73:1-14)
① 악인에 대한 질투(2, 3절)
② 악인의 상태(4-9절)
③ 악인의 영향력(10, 11절)
④ 시인의 한탄(12-14절)
2. 세상적 유혹에 대한 극복 (73:15-28)
① 디딤돌(15, 16절)
② 승리에로의 전환(17절)
③ 깨달음(18-20절)
④ 자신에 대한 반성(21, 22절)
⑤ 시인의 변화된 관점(23-26절)
⑥ 새로운 결단(27, 28절)
<설교> :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말라 (시 73:1-28 / 마 6:33)
본문내용
팔리는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을 읽음으로써 이모저모로 사람들의 마음에 귀한 양식이 될 수 있는 책을 펴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인간의 삶을 어지럽히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 물을 혼탁하게 만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본문의 시편 기자도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만나 하나님께 매달림으로써 흔들리던 마음을 다시금 바로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제 이 시편 기자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거의 실족할 뻔했습니다.
시인은 이 시편의 거의 절반 가량을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된 현실에 대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2절). 악인들은 온갖 부귀와 장수를 누릴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는 참담한 조롱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11절). 우리도 종종 역경과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옆으로만 돌렸기에 큰 시험에 들게 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온갖 죄악과 타락이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진실만을 소극적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산에 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겠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할 존재이지(마 5:13), 이 세상으로부터 빛과 소금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빛과 소금은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써 베풀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2. 하나님의 성소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언급하였거니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는 지름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17절). 목전에서 되어가는 일만 바라보면 오히려 자신이 한 발 더 앞서 온갖 악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일단 상황을 호전시켜 보려는 충동에 빠집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도의 삶이 현실 구복(現實救福)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에 있음을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기타 모든 것은 주께서 책임져 주심을 또한 믿습니다(마 6:33).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현실의 모순과 악인의 형통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굳세고 진실된 것인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실상의 여건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나 오직 하나님의 가르치심에 준하여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 이런 자를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시고 끝내 도우실 것입니다.
3. 주를 떠나는 자의 종국은 멸망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큰 위로와 확신을 회복하게 된 시인은, 이제 믿음의 눈을 뜨고 악인의 결말이 어떠할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시기와 질투와 원망의 마음이 불일 듯 일었지만, 다시금 믿음의 눈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를 확신함으로써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회복케 되었습니다. 비록 악인들이 번영을 누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눈은 모든 악행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졸지에 황폐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19절).
성도 여러분!
시인의 체험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변화나 악인이 창궐하는 현실을 보고 신앙의 회의를 가질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아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환경이 조악(粗惡)할수록 더욱 빛나고 굳센 믿음에로 나아가도록 하십시다. 현실의 지평을 넘어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대망하는 종말론적 신앙의 터전 위에 굳게 서십시다.
거의 실족할 뻔했습니다.
시인은 이 시편의 거의 절반 가량을 악인이 형통하는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된 현실에 대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2절). 악인들은 온갖 부귀와 장수를 누릴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는 참담한 조롱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11절). 우리도 종종 역경과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옆으로만 돌렸기에 큰 시험에 들게 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온갖 죄악과 타락이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진실만을 소극적으로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산에 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겠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할 존재이지(마 5:13), 이 세상으로부터 빛과 소금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빛과 소금은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써 베풀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2. 하나님의 성소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언급하였거니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는 지름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17절). 목전에서 되어가는 일만 바라보면 오히려 자신이 한 발 더 앞서 온갖 악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일단 상황을 호전시켜 보려는 충동에 빠집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도의 삶이 현실 구복(現實救福)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에 있음을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기타 모든 것은 주께서 책임져 주심을 또한 믿습니다(마 6:33).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현실의 모순과 악인의 형통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굳세고 진실된 것인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실상의 여건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어떤 경우에나 오직 하나님의 가르치심에 준하여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 이런 자를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시고 끝내 도우실 것입니다.
3. 주를 떠나는 자의 종국은 멸망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큰 위로와 확신을 회복하게 된 시인은, 이제 믿음의 눈을 뜨고 악인의 결말이 어떠할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시기와 질투와 원망의 마음이 불일 듯 일었지만, 다시금 믿음의 눈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를 확신함으로써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회복케 되었습니다. 비록 악인들이 번영을 누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눈은 모든 악행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졸지에 황폐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19절).
성도 여러분!
시인의 체험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변화나 악인이 창궐하는 현실을 보고 신앙의 회의를 가질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아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환경이 조악(粗惡)할수록 더욱 빛나고 굳센 믿음에로 나아가도록 하십시다. 현실의 지평을 넘어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대망하는 종말론적 신앙의 터전 위에 굳게 서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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