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지역 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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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충주지역 답사자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길의 고장 충주 개관
Ⅱ. 청룡사터
Ⅲ. 고구려비와 칠층석탑
Ⅳ. 탄금대(彈琴臺)
Ⅴ. 석불입상과 철불좌상
Ⅵ. 중원 미륵리 절터
Ⅶ.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

본문내용

. 받침은 각층 5단이나 추녀가 너무 짧아 6단 받침으로 착각된다. 추녀 밑은 수평이고 옥상의 경사는 급하나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은 거의 없다.상륜부(相輪部:탑의 맨 윗부분)는 노반(露盤)·복발(覆鉢)이 남아 있는데, 노반은 5층 옥개석의 크기에 비하여 6층 옥개로 볼 만큼 크며, 복발은 조각이 없는 반구형이다. 정상에 철제 찰간(擦竿)이 남은 것은 드문 예로 중요시된다.
4-3. 미륵리 사각석등
고려 초기에 세워진 석등으로 추정되며 사적 제317호로 지정된 중원 미륵리사지 내에 위치한다. 미륵리 사각석등은 크게 기단부·화사석·옥개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일부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원래는 평면 사각형의 판석형 석재가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대석은 투박한 복판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연화문은 대형으로 새겨져 있지만 치석 수법이 정연하지 못하고 다소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대석 상면에는 사각형의 홈을 마련하여 간주석을 끼워 고정하도록 했다. 간주석은 평면 사각의 석주형으로 마련되었다. 표면에 보주형 안상이 새겨지고, 그 안에 좌우대칭을 이루는 화형 문양이 새겨져 장식성을 보이고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앙련문을 표현하였는데, 하대석에 비하여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연화문은 복판으로 각 면이 가운데 배치된 연화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나가는 형상으로 표현되어 하대석과 대조를 이룬다. 화사석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모서리마다 원주형 기둥을 세워 옥개석을 받치도록 했다. 옥개석은 하부를 수평으로 치석하고 관통된 원공을 시공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내려오고 있으며, 합각부는 약간 돌출시켜 치석함으로써 마루부처럼 보이도록 했다. 상륜부는 현재 사각형 받침대가 올려져 있고 나머지 부재들은 결실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간주석과 화사석은 독특한 치석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미륵리 사각석등은 전형적인 석등 양식에서 다소 벗어난 이채로운 결구 수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화사석은 고려시대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기법이었다. 이러한 화사석은 고려시대 개경 일대에 건립된 사찰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려시대 수도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있는 미륵리 사지에 이런 양식의 석등이 세워졌다는 것은 석등 양식이 지방으로 전파되는 측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이와 같은 화사석 결구 수법의 석등으로는 관촉사ㆍ현화사ㆍ개국사 석등이 있다. 대부분 고려 초기와 중기에 걸쳐 건립된 석등으로 특정 사찰에서만 적용된 석등 양식이었다.
4-4. 미륵대원지 삼층석탑
석굴이 있는 미륵사터 경내에서 동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이곳이 원래의 터로 추정되는데 절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왜 탑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 ·아래층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하여 2층 몸돌의 높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시대가 고려로 내려옴으로 인해 지붕돌 밑면받침 수가 4단으로 줄어드는 등 후대의 양식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갖추었다.
Ⅶ.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
1. 사자빈신사터
충주미륵리에서 송계계곡에 이르는 도로 변에 절터를 알리는 안내 표지가 있고, 유적 내에도 석탑 해설 안내판이 있다. 사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유물인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옥개석 1매가 놓여 있다. 석탑 서쪽과 동쪽 주변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서쪽 지역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평탄 대지이다. 남쪽에는 석축이 2단으로 축조되어 있고, 북쪽은 산과 접하고 있다. 절터에서는 기와편과 함께 많은 청자편이 수습되었다. 사자빈신사지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없으나 사역 내에 남아 있는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의 하층 기단 남쪽 면석에 새겨진 명문 내용을 통해 석탑이 1022년(현종 13)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사사자석탑 : 보물 제94호
송계계곡의 와룡대와 망폭대 사이에 있는 빈신사지 터 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화강석 석탑으로 상, 하 2단의 기단위에 4층까지 지붕돌이 남아 있는데 원래는 9층이었음을 아래층 기단의 명문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기단하부 지대석(地臺石)을 8각형의 석재로 구성하여 이형(異形)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받침틀 위에 4각의 하대가 놓여 있고 상부에 두꺼운 태를 둘렀으며 그 밑에는 각 면을 파낸 3개씩의 얼굴조각 안상 안에는 꽃모양을 새겨 넣어 고려시대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아래기단 중석의 4면에는 넓은 모서리 기둥인 우주(隅柱)를 넣고 이곳에 탑의 조성경위를 알 수 있는 79자의 명문에 의하여 고려 1022년(현종13년: 태평2년)에 왕의 장수, 국가안녕, 불법융성의 기원과 거란족을 물리쳐 줄 것을 염원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위 기단에는 형상이 각기 다른 아,음.이.오 형상의 4마리 사자를 모서리에 한마리씩 배치하여 갑석을 받치고 있으며 사자의 안쪽에는 [비로자나]좌상을 안치한 특수한 구조이다
사자의 얼굴모양과 꼬리 모양이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 각각의 모서리 방향으로 배치되었고
비로자나 불상은 두건을 쓰고 뒤에서 가지런히 묶은 모습이 선명하며 두주먹을 모아 가슴에붙이고 앉은 모습과 표정이 매우 흥미로운 양식이며 머리위의 갑석 아래쪽에는 연꽃 무늬를 새겨넣은 것이 독특한 양상이다.
기단의 명문
불제자고려국중주월(佛弟子高麗國中州月)
악사자빈신사동량 태위 대대(岳獅子頻迅寺棟梁 泰爲 代代)
성왕항거만세천하대(聖王恒居萬歲天下大)
평법윤상전비계지방(平法輪常傳比界地方)
영소원적후우생사파(永消怨敵後遇生娑婆)
즉지화장술생즉오정(卽知花藏述生卽梧正)
각경조구층석탑일좌영윤공양(覺敬造九層石塔一坐永允供養)
태평이년4월 일근기(太平二年四月日謹記)
특히 통일신라 시대 화엄사 3층석탑(국보 35호)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이형탑(탑의 기존형식을 벗어난 기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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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2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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