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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답사 개관
Ⅱ. 나트랑 지역
나트랑 도시개관, 포나가 참사원, 롱손사, 틱낫한 스님,
나짱 대성당
Ⅲ. 판랑 탑짬 지역
판랑-탑짬 지역 개관, 탄요리 몽골마을, 판랑사막, 판랑염전,
416광장 기념비, 투롱선 사원
Ⅳ. 달랏 지역
개관, 죽림사, 다딴라 폭포, 달랏 기차역, 바오다이 황제 별장,
크레이지하우스, 달랏 야시장, 랑비앙 전망대
Ⅱ. 나트랑 지역
나트랑 도시개관, 포나가 참사원, 롱손사, 틱낫한 스님,
나짱 대성당
Ⅲ. 판랑 탑짬 지역
판랑-탑짬 지역 개관, 탄요리 몽골마을, 판랑사막, 판랑염전,
416광장 기념비, 투롱선 사원
Ⅳ. 달랏 지역
개관, 죽림사, 다딴라 폭포, 달랏 기차역, 바오다이 황제 별장,
크레이지하우스, 달랏 야시장, 랑비앙 전망대
본문내용
을 1936년 재건하여 이름을 롱선사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롱선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나짱 시내에선 높은 곳이다. 해서 좌불상이 있는 곳에서는 동서남북 나짱 시내를 두루 살펴볼 수가 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정문>
1889년에 건설된 유서 깊은 중국식 절인 롱선사. 그러나 본당은 어딘지 모르게 도교적인 냄새가 가미되어진 느낌이 든다. 본당은 밑에 있고 오른쪽의 계단을 타고 오르면서 사원의 부속 설치물들을 관람할 수가 있도록 되어져 있는데 높이가 더운 이 나라에선 장난이 아니다. 오르다 보면 종각이 있고 바로 위에는 인도에서 기증된 와불상이 있으며 언덕 정상에는 14미터에 달하는 하얀 좌불상이 안치되어져 있다. 이 좌불상은 남베트남의 디엠 정부에 항거하여 분신한 수도사들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 하며 불상의 뒷쪽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져 있다. 그리고 좌불상 주위에는 망자들의 함벽이 늘어서 있고... 손오공의 삼장법사께서 이곳을 다녀갔다 하여 기념으로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중앙의 탑은 기원세계평화탑>
<롱선사의 금동불상을 지키는 사천왕상>
<금으로 그려진 석가모니 행적>
<대웅전 안의 불상들>
<나트랑 시내를 굽어보는 백색의 대형 불상>
<불상 뒤쪽에 있는 납골당>
3-2. 불교의 전래와 수용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한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거쳐왔다. 중국과의 접경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아왔고 근현대사에 있어서 외세의 침략과 독립운동 이후 남북전쟁 등 굉장히 유사한 점이 많다. 종교에 있어서도 불교신자가 80% 이상을 차지하며 비슷한 문화색채를 나타내고 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베트남의 불교는 소승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이다. 이는 오랜 중국의 지배 하에서 받은 영향으로 이러한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비슷한 양식이 나타난다.
베트남 불교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지정학적으로 육지와 바다를 잇는 반도국이면서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에 의해 일찍부터 많은 민족이 교차할 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이것은 베트남의 다민족, 다 종족적인 특징을 잘 표현하는 것이 되면서 고, 중, 대를 거쳐 근,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와 서구열강들의 군사, 경제, 정치, 문화의 각축장이 되는 이유였다. 이와 같이 지리적인 특징에 의하여 베트남의 문화는 크게 북부의 중국문화와 남부의 인도문화로 나눠지며, 불교도 북부의 대승불교와 남부의 상좌불교로 구분된다. 베트남은 중국과 1,400km에 걸친 접경국가로 기원전 179년을 기점으로 기원후 938년까지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고 1406년에서 1428까지 명의 지배를 받았다. 베트남 북부는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점과 장기간의 지배 및 종주관계에서 비롯된 이유 외에도 보다 발달 된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려는 베트남의 능동적 자세에 의해 중국의 문화와 영향을 깊이 받았다. 반면 베트남 남부는 북부처럼 정비되고 안정된 장기적인 국가형태를 이루지 못했던 까닭에 비록 인도와 서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북부에 병합되면서 단순히 소수민족의 문화로 전락되었다.
불교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으나 일찍이 해로(海路)를 통해 인도와 남해로부터 들어왔던 것만은 확실하다. 중국인으로 194~195년경에 쟈오주에서 불교에 귀의하고 중국 불교사상에 영향을 미쳤던 모자(眸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리혹론(理惑論)에서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을 체계화 시켜 베트남의 三敎동원 사상에 대한 개념을 세우는 데도 공헌하였다. 좀 더 앞서 후한(後漢)말 쟈오찌군(郡)의 태수였던 사섭(士燮)이 있다. 사섭은 유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면서 불교에도 심취한 인물이었다. 그것은 태수로 베트남에 재직하던 중 그가 출입을 할 때에 많은 인도 승려들이 향을 피우며 수행했다고 하는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다. 베트남 불교 발전의 중심지였던 루이러우 또한 베트남 불교 유입시기를 추론할 수 있는 중요한 사적지가 된다.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에 유입된 불교가 남 중국에 전파되기 이전에 하박성 투언타잉 현의 루이러우에는 20층의 보탑(寶塔)이 있는 사원이 있었고, 이곳에서 500명 이상의 승려에 의해서 20권 이상의 불경이 한역(漢譯)되었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미루어 봤을 때 남중국의 불교는 전래속도가 베트남 보다 늦었다고 하는 것과 베트남의 불교는 중국을 거쳐 전파된 게 아닌 인도의 승려들에 의해 직접 전해졌다고 추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일부 베트남이나 중국의 일부 학자들 중에는 베트남이 중국보다 먼저 불교가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2세기부터 5세기의 베트남 불교는 주로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5세기부터 베트남은 중국의 불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면서 귀족(貴族)성을 띤 대승불교(大乘佛敎)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상좌불교(上座佛敎)는 10~12세기에 남방에서 스리랑카와 캄보디아를 거쳐 남부 베트남에 전해졌다. 이 상좌불교는 베트남의 소수민족인 커메(Kho\' me)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일명 ‘커메불교’라고도 한다.
6세기부터 10세기 독립 시기까지의 베트남 불교는 중국의 지배로 인하여 중국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때는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베트남이 중국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시기로, 베트남은 당나라에 중국의 많은 고승들이 구도를 목적으로 인도를 순례할 경우 반드시 거쳐야 했던 경유지였던 까닭에 이들로 인한 중국 불교의 전파가 활성화되었다.
당시에 상류지식계층으로 인식되었던 승려는 한자를 가르치는 교육사업과 병을 치료하는 의료활동도 하였다. 그리고 주목되는 점은 베트남 불교는 도교 및 민간신앙과 어우러져 발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난 이후 15세기까지의 기간은 베트남의 불교가 가장 발전했던 시기이다. 딘 왕조(968~980년)와 前레(黎)왕조(980~1009년) 때에는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를 등용할 정도로 유학이 아직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승려들이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승려 중
<중국의 영향을 받은 정문>
1889년에 건설된 유서 깊은 중국식 절인 롱선사. 그러나 본당은 어딘지 모르게 도교적인 냄새가 가미되어진 느낌이 든다. 본당은 밑에 있고 오른쪽의 계단을 타고 오르면서 사원의 부속 설치물들을 관람할 수가 있도록 되어져 있는데 높이가 더운 이 나라에선 장난이 아니다. 오르다 보면 종각이 있고 바로 위에는 인도에서 기증된 와불상이 있으며 언덕 정상에는 14미터에 달하는 하얀 좌불상이 안치되어져 있다. 이 좌불상은 남베트남의 디엠 정부에 항거하여 분신한 수도사들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 하며 불상의 뒷쪽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져 있다. 그리고 좌불상 주위에는 망자들의 함벽이 늘어서 있고... 손오공의 삼장법사께서 이곳을 다녀갔다 하여 기념으로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중앙의 탑은 기원세계평화탑>
<롱선사의 금동불상을 지키는 사천왕상>
<금으로 그려진 석가모니 행적>
<대웅전 안의 불상들>
<나트랑 시내를 굽어보는 백색의 대형 불상>
<불상 뒤쪽에 있는 납골당>
3-2. 불교의 전래와 수용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한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거쳐왔다. 중국과의 접경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아왔고 근현대사에 있어서 외세의 침략과 독립운동 이후 남북전쟁 등 굉장히 유사한 점이 많다. 종교에 있어서도 불교신자가 80% 이상을 차지하며 비슷한 문화색채를 나타내고 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베트남의 불교는 소승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이다. 이는 오랜 중국의 지배 하에서 받은 영향으로 이러한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비슷한 양식이 나타난다.
베트남 불교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지정학적으로 육지와 바다를 잇는 반도국이면서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에 의해 일찍부터 많은 민족이 교차할 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이것은 베트남의 다민족, 다 종족적인 특징을 잘 표현하는 것이 되면서 고, 중, 대를 거쳐 근,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와 서구열강들의 군사, 경제, 정치, 문화의 각축장이 되는 이유였다. 이와 같이 지리적인 특징에 의하여 베트남의 문화는 크게 북부의 중국문화와 남부의 인도문화로 나눠지며, 불교도 북부의 대승불교와 남부의 상좌불교로 구분된다. 베트남은 중국과 1,400km에 걸친 접경국가로 기원전 179년을 기점으로 기원후 938년까지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고 1406년에서 1428까지 명의 지배를 받았다. 베트남 북부는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점과 장기간의 지배 및 종주관계에서 비롯된 이유 외에도 보다 발달 된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려는 베트남의 능동적 자세에 의해 중국의 문화와 영향을 깊이 받았다. 반면 베트남 남부는 북부처럼 정비되고 안정된 장기적인 국가형태를 이루지 못했던 까닭에 비록 인도와 서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북부에 병합되면서 단순히 소수민족의 문화로 전락되었다.
불교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으나 일찍이 해로(海路)를 통해 인도와 남해로부터 들어왔던 것만은 확실하다. 중국인으로 194~195년경에 쟈오주에서 불교에 귀의하고 중국 불교사상에 영향을 미쳤던 모자(眸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리혹론(理惑論)에서 유교, 불교, 도교의 사상을 체계화 시켜 베트남의 三敎동원 사상에 대한 개념을 세우는 데도 공헌하였다. 좀 더 앞서 후한(後漢)말 쟈오찌군(郡)의 태수였던 사섭(士燮)이 있다. 사섭은 유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면서 불교에도 심취한 인물이었다. 그것은 태수로 베트남에 재직하던 중 그가 출입을 할 때에 많은 인도 승려들이 향을 피우며 수행했다고 하는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다. 베트남 불교 발전의 중심지였던 루이러우 또한 베트남 불교 유입시기를 추론할 수 있는 중요한 사적지가 된다.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에 유입된 불교가 남 중국에 전파되기 이전에 하박성 투언타잉 현의 루이러우에는 20층의 보탑(寶塔)이 있는 사원이 있었고, 이곳에서 500명 이상의 승려에 의해서 20권 이상의 불경이 한역(漢譯)되었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미루어 봤을 때 남중국의 불교는 전래속도가 베트남 보다 늦었다고 하는 것과 베트남의 불교는 중국을 거쳐 전파된 게 아닌 인도의 승려들에 의해 직접 전해졌다고 추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일부 베트남이나 중국의 일부 학자들 중에는 베트남이 중국보다 먼저 불교가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2세기부터 5세기의 베트남 불교는 주로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5세기부터 베트남은 중국의 불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면서 귀족(貴族)성을 띤 대승불교(大乘佛敎)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상좌불교(上座佛敎)는 10~12세기에 남방에서 스리랑카와 캄보디아를 거쳐 남부 베트남에 전해졌다. 이 상좌불교는 베트남의 소수민족인 커메(Kho\' me)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일명 ‘커메불교’라고도 한다.
6세기부터 10세기 독립 시기까지의 베트남 불교는 중국의 지배로 인하여 중국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때는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베트남이 중국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시기로, 베트남은 당나라에 중국의 많은 고승들이 구도를 목적으로 인도를 순례할 경우 반드시 거쳐야 했던 경유지였던 까닭에 이들로 인한 중국 불교의 전파가 활성화되었다.
당시에 상류지식계층으로 인식되었던 승려는 한자를 가르치는 교육사업과 병을 치료하는 의료활동도 하였다. 그리고 주목되는 점은 베트남 불교는 도교 및 민간신앙과 어우러져 발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난 이후 15세기까지의 기간은 베트남의 불교가 가장 발전했던 시기이다. 딘 왕조(968~980년)와 前레(黎)왕조(980~1009년) 때에는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를 등용할 정도로 유학이 아직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승려들이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승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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