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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중국의 역사
Ⅱ. 중국불교사
Ⅲ. 도교(道敎)
Ⅳ. 중국 건축사
Ⅱ. 중국불교사
Ⅲ. 도교(道敎)
Ⅳ. 중국 건축사
본문내용
수밖에 없었다. “왕공 이하의 옥사(주택)는 이중처마와 마름 우물을 만들지 못하고, 삼품 이상의 당사(주택)는 5간 7가(서까래)를 넘지 못한다.……서민이 짓는 당사는 3간 4당을 넘지 못하고, 문옥은 1간 2가를 넘지 못하며, 또한 장식을 할 수 없다.……선비와 서민의 공사 제택(건물)은 모두 누각을 올려 이웃집을 넘겨다 볼 수 없다.”라는 내용의 당대의 건축조칙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대 이후의 민간건축양식인 사합원과 대표적인 황실궁전 자금성을 알아볼까 한다.
① 사합원
사합원은 종축선 위에 먼저 주요한 건축을 안치하고, 다시 마당의 좌우 양측에 횡축선을 따라 형체가 비교적 작은 두 개의 부차적인 건축을 배치한 삼합원 양식에 주요건축의 맞은 편에 다시 한 동의 보조건축을 지어 방형, 장방형의 정원을 구성하게 하는 것이다. 사합원은 일반적으로 사각의 주랑과 담을 이용하여 네 동의 건축물을 연결시켜 폐쇄성이 비교적 강한 총체를 이룬다. 이러한 배치양식은 종국 고대사회의 종법과 예교제도에 적합하고, 가족 구성원의 거처를 안배하는데 편리하고, 존비 장유 주복 사이의 명확한 구별을 짓게 한다.
원내에는 상방(중심이 되는 방), 측방, 하방을 동서남북으로 배치하였다. 부속 건축물로 주방, 창고, 측소와 저권(돼지우리)을 두었다. 사합원 건축물의 지붕은 비교적 높고, 두공을 두어 처마를 깊게 하며, 원내에는 조벽과 이진문을 두어 정원을 전원과 후원으로 구분하였으며, 연장자와 연하자, 남자와 여자, 주인과 손님에 따라 출입할 수 있는 방이나 정원 등의 공간이 엄격히 구별되었다. 어른은 상방에 아랫사람은 측방에 거주했으며, 부녀들은 함부로 전원으로 나오지 못했고 손님은 함부로 후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정환경이 넉넉치 못할 경우 사합원의 규모를 모두 갖추지는 못하지만, 대체적인 설계는 이와 비슷하며, 중요한 것은 유교적 장유유서(長幼有序)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이 강한 대가족의 건축형태와 배치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사합원의 대문을 지나 후원으로 들어서게 되면 당, 실, 방이 높은 대(臺)위에 건축되어 있으며, 대부분 좌북조남(북쪽에 앉은 남향집)의 방위를 유지하고 있다. 당이 높게 설계되어 있는 것은 유교적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한 대 가의(賈誼)는 “인주의 존엄은 마치 당과 같고 군신은 폐(계단)와 같으며 서민은 땅과 같다.” 라고 했다.
당은 가장 정면에 있고, 당 아래에는 좌우 양쪽에 계단이 있는데, 이를 서계와 동계라 했다. 서계로는 손님이 오르고 동쪽으로는 주인이 오르는데, 이는 고대의 실외존좌(실외에서는 왼쪽을 높임)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에는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오르며 아랫사람은 함께 당에 오르지 못했다. 당은 정면, 즉 남쪽은 벽이 없이 열려 있는 한국의 전통마루와 같은 모습으로, 동쪽벽은 동서, 서쪽벽은 서서이다. 남쪽 정면에는 동영과 서영의 마루만 있고 햇빛이 밝게 비추므로 당황이라고도 했다. 당은 주인이 평소에 활동하며 예를 행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이며, 당의 뒤쪽은 실이다. 실은 주인이 기거하는 곳인데, 객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당과 실을 연결하는 통로는 호와 유가 있는데, 호는 동쪽에 있고 유는 서쪽에 있으며, 실의 북쪽으로 난 창은 향이다. 실은 사각형이며 모서리를 우라 했고, 사방의 이름이 있다.
② 자금성
<자금성의 역사>
고궁은 명나라 영락(성조)가 4~18년(1406~1420)에 20~30만 명의 민간인과 군대를 동원해 14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4년에 걸쳐 건조하였다. 현존하는 중국의 궁전 건축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완전하게 보존되어진 궁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이다. 그 동안 수차례 건, 개수하였는데, ‘천하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황제 한사람을 받든다.’라고 할 만큼 500여 년간 부단히 고쳐지어졌고, 인력과 물력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요되었다. 옛날에 \"자금성\"이라고 불렀는데 명 청 시기의 황궁이며, 약 500여 년 전인 1420년에 건축되어졌으며 명 · 청 시대 24명의 황제가 중국을 통치했던 곳이다.(명 : 14 청 : 10) 명대 가정 32년(1553년)에 경성의 방어와 성곽 남부의 수공업 상업 구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의 남쪽에 하나의 외성을 덧붙
여 축성하였다.
<자금성의 규모>
고궁은 부지 72헥타르, 남에서 북으로 7.5Km에 이르는 축선이 도성 전체의 공간을 이룬다. 수십 개의 대소 정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방이 도합 9999칸(890여채), 주위에 높이는 10.3m으로 성벽위의 넓이는 6.8m, 아래는 8.2m인 성벽을 쌓고 50여미터 너비의 성호를 팠으며, 성벽 네 모퉁이에 각루를 건조하고 남쪽 중간은 오문이다.
성벽의 남북이 961m이며 동서로는 753m로 둘레가 모두 3.43km에 이른다. 성벽밖은 성을 보호하는 폭 52m의 물이 흐르고 있다.
축선의 남단은 외성의 영정문을 기점으로 하여 내성의 정문인 정양문에까지 이른다. 대로 양편에 두 개의 대규모 건축군을 배치하였다. 봉건전통에 따라 동쪽은 천단이고 서쪽은 선농단이다. 주요 건축물은 크게 외조, 내정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외조는 3층 한백옥석 기초위에 건조된 태화,중화,보화 3대전을 주체로 하는데 황제가 권력을 행사하고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던 곳이다. 내정은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을 주체로 하는데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고 거주하던 곳이며, 그 양측의 동,서 6궁은 비빈들의 거처이다. 도성의 황성인 자금성은 내성의 중앙에서 남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동서는 약 2500m, 남북은 2750m이고 성곽은 네 방향에 문을 열었으며 남쪽의 문이 천안문이다.
자금성은 높은 곳의 정자와 탑, 낮은 곳의 작은 구릉 혹은 교량을 이용하여 멀리 교외의 서산에 연계시켜 공간의 심도를 확대하고, 서로 다른 체형의 각종 건축을 함께 배치하여 기복 있는 궁성의 윤곽을 구성하고 있다.
고궁은 현재 중국에서 보전되고 있는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황궁건축군이다. 전제 건축은 중축선을 기준으로 서로 대칭되게 배치, 주체가 두드러지고, 계층이 분명하며, 중국 고대 건축예술의 전통과 독특한 풍경을 구현하고 있다.
① 사합원
사합원은 종축선 위에 먼저 주요한 건축을 안치하고, 다시 마당의 좌우 양측에 횡축선을 따라 형체가 비교적 작은 두 개의 부차적인 건축을 배치한 삼합원 양식에 주요건축의 맞은 편에 다시 한 동의 보조건축을 지어 방형, 장방형의 정원을 구성하게 하는 것이다. 사합원은 일반적으로 사각의 주랑과 담을 이용하여 네 동의 건축물을 연결시켜 폐쇄성이 비교적 강한 총체를 이룬다. 이러한 배치양식은 종국 고대사회의 종법과 예교제도에 적합하고, 가족 구성원의 거처를 안배하는데 편리하고, 존비 장유 주복 사이의 명확한 구별을 짓게 한다.
원내에는 상방(중심이 되는 방), 측방, 하방을 동서남북으로 배치하였다. 부속 건축물로 주방, 창고, 측소와 저권(돼지우리)을 두었다. 사합원 건축물의 지붕은 비교적 높고, 두공을 두어 처마를 깊게 하며, 원내에는 조벽과 이진문을 두어 정원을 전원과 후원으로 구분하였으며, 연장자와 연하자, 남자와 여자, 주인과 손님에 따라 출입할 수 있는 방이나 정원 등의 공간이 엄격히 구별되었다. 어른은 상방에 아랫사람은 측방에 거주했으며, 부녀들은 함부로 전원으로 나오지 못했고 손님은 함부로 후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정환경이 넉넉치 못할 경우 사합원의 규모를 모두 갖추지는 못하지만, 대체적인 설계는 이와 비슷하며, 중요한 것은 유교적 장유유서(長幼有序)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이 강한 대가족의 건축형태와 배치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사합원의 대문을 지나 후원으로 들어서게 되면 당, 실, 방이 높은 대(臺)위에 건축되어 있으며, 대부분 좌북조남(북쪽에 앉은 남향집)의 방위를 유지하고 있다. 당이 높게 설계되어 있는 것은 유교적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한 대 가의(賈誼)는 “인주의 존엄은 마치 당과 같고 군신은 폐(계단)와 같으며 서민은 땅과 같다.” 라고 했다.
당은 가장 정면에 있고, 당 아래에는 좌우 양쪽에 계단이 있는데, 이를 서계와 동계라 했다. 서계로는 손님이 오르고 동쪽으로는 주인이 오르는데, 이는 고대의 실외존좌(실외에서는 왼쪽을 높임)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에는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오르며 아랫사람은 함께 당에 오르지 못했다. 당은 정면, 즉 남쪽은 벽이 없이 열려 있는 한국의 전통마루와 같은 모습으로, 동쪽벽은 동서, 서쪽벽은 서서이다. 남쪽 정면에는 동영과 서영의 마루만 있고 햇빛이 밝게 비추므로 당황이라고도 했다. 당은 주인이 평소에 활동하며 예를 행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이며, 당의 뒤쪽은 실이다. 실은 주인이 기거하는 곳인데, 객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당과 실을 연결하는 통로는 호와 유가 있는데, 호는 동쪽에 있고 유는 서쪽에 있으며, 실의 북쪽으로 난 창은 향이다. 실은 사각형이며 모서리를 우라 했고, 사방의 이름이 있다.
② 자금성
<자금성의 역사>
고궁은 명나라 영락(성조)가 4~18년(1406~1420)에 20~30만 명의 민간인과 군대를 동원해 14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4년에 걸쳐 건조하였다. 현존하는 중국의 궁전 건축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완전하게 보존되어진 궁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이다. 그 동안 수차례 건, 개수하였는데, ‘천하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황제 한사람을 받든다.’라고 할 만큼 500여 년간 부단히 고쳐지어졌고, 인력과 물력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요되었다. 옛날에 \"자금성\"이라고 불렀는데 명 청 시기의 황궁이며, 약 500여 년 전인 1420년에 건축되어졌으며 명 · 청 시대 24명의 황제가 중국을 통치했던 곳이다.(명 : 14 청 : 10) 명대 가정 32년(1553년)에 경성의 방어와 성곽 남부의 수공업 상업 구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의 남쪽에 하나의 외성을 덧붙
여 축성하였다.
<자금성의 규모>
고궁은 부지 72헥타르, 남에서 북으로 7.5Km에 이르는 축선이 도성 전체의 공간을 이룬다. 수십 개의 대소 정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방이 도합 9999칸(890여채), 주위에 높이는 10.3m으로 성벽위의 넓이는 6.8m, 아래는 8.2m인 성벽을 쌓고 50여미터 너비의 성호를 팠으며, 성벽 네 모퉁이에 각루를 건조하고 남쪽 중간은 오문이다.
성벽의 남북이 961m이며 동서로는 753m로 둘레가 모두 3.43km에 이른다. 성벽밖은 성을 보호하는 폭 52m의 물이 흐르고 있다.
축선의 남단은 외성의 영정문을 기점으로 하여 내성의 정문인 정양문에까지 이른다. 대로 양편에 두 개의 대규모 건축군을 배치하였다. 봉건전통에 따라 동쪽은 천단이고 서쪽은 선농단이다. 주요 건축물은 크게 외조, 내정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외조는 3층 한백옥석 기초위에 건조된 태화,중화,보화 3대전을 주체로 하는데 황제가 권력을 행사하고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던 곳이다. 내정은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을 주체로 하는데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고 거주하던 곳이며, 그 양측의 동,서 6궁은 비빈들의 거처이다. 도성의 황성인 자금성은 내성의 중앙에서 남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동서는 약 2500m, 남북은 2750m이고 성곽은 네 방향에 문을 열었으며 남쪽의 문이 천안문이다.
자금성은 높은 곳의 정자와 탑, 낮은 곳의 작은 구릉 혹은 교량을 이용하여 멀리 교외의 서산에 연계시켜 공간의 심도를 확대하고, 서로 다른 체형의 각종 건축을 함께 배치하여 기복 있는 궁성의 윤곽을 구성하고 있다.
고궁은 현재 중국에서 보전되고 있는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황궁건축군이다. 전제 건축은 중축선을 기준으로 서로 대칭되게 배치, 주체가 두드러지고, 계층이 분명하며, 중국 고대 건축예술의 전통과 독특한 풍경을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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