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거창 개관
2. 양평동 석조여래입상
3. 둔마리 벽화고분
4. 상동 석조관세음보살입상
5.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상
6. 동계 정온 고택
7.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8. 수승대(搜勝臺)
9. 한국의 누와 정자
2. 양평동 석조여래입상
3. 둔마리 벽화고분
4. 상동 석조관세음보살입상
5. 가섭암터 마애삼존불상
6. 동계 정온 고택
7.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8. 수승대(搜勝臺)
9. 한국의 누와 정자
본문내용
적으로 유희할 수 있는 최적의 물리적 조건이다.
유(遊)와 화(和)의 상호 작용은 무용(無用)의 개념과 동일하다. 유와 화가 상호작용을 하여 도달하는 상태는 자연의 천지만물이 참다운 작용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다. 참다운 작용을 건축적으로 해석하자면 진정한 쓰임새라는 개념이 된다. 진정한 쓰임새는 노자의 무위 개념을 이어받아 장자가 발전시킨 무용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무용이란 쓰이는 것이 하나도 없되, 혹은 쓰이는 것이 하나도 없음으로써 쓰이지 않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의미이다. 풀어쓰면 불필요한 쓰임새를 없앰으로써 진정한 쓰임새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은유적으로 해석하면 진정한 쓸모는 쓸모없음에 있다라는 의미이다.
무용의 가르침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이 자연이다. 자연은 번거로운 쓸모를 피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쓸모를 확보하여 인간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다. 자연을 개발이나 정복 등과 같이 나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쓸모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자연과 나 모두를 망치는 일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나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이것이 무용의 가르침을 따라 유와 화의 상호작용에 이른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만 자연은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하고 인간에게 진정한 이로움을 줄 수 있다.
누각의 노출 구조는 무용의 가르침이 잘 구현된 예이다. 누각에서는 필요 불가결한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워둠으로써 진정한 쓰임새를 얻을 수 있다. 누각에서 얻어지는 진정한 쓰임새는 단계별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다양한 상황을 맞을 수 있는 융통성을 확보한다. 융통성은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필요를 만족시킴으로써 진정한 쓸모를 발휘한다. 이것은 공리적 차원의 기능의 의미이다. 이것보다 높은 차원의 쓰임새는 자연을 끌어들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잘하고 쓸모없는 탐욕적 쓰임새를 없앰으로써 자연과 하나 되는 진정한 쓰임새를 얻는 것이다.
누정이 주는 무용의 교훈 가운데 대표적인 예로 기후 요소를 들 수 있다. 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각은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건물의 모든 기능을 충분히 소화해낸다. 생활살이를 하고 글을 읽고 정치를 논한다. 뿐만 아니라 봄· 여름·가을의 계절 특징을 극대화하여 느끼고 즐길 수 있다. 봄날 누각에 오르는 느낌은 그 어떤 다른 건물 형식도 줄 수 없는 최고의 경지이다. 여름날 정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가을날 단풍 든 먼 산을 보며 푸른 하늘을 직접 호흡하는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한겨울에조차 따듯한 햇빛의 존재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또한 누정이라 하겠다.
9-8. 결
우리나라는 자연 경관이 아기자기하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철에 따라 변하는 산과 들과 강의 풍정을 즐기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 우리 민족에게 누정은 극히 자연스러운 존재였으며 그래서 널리 보편화한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조선조 유학의 영향으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다는 생활철학이 정신적 바탕을 이루었고, 특히 선종이 한국 불교의 주류를 이루면서 자연과의 동화가 생활화되어 더욱 친숙해진 것 같다.
농경을 주로 했던 우리나라는, 자연을 사랑함에는 상류층과 서민의 차별이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서민 문화와 상류문화가 모두 그 바탕을 자연에 의지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누정은 당연히 산 좋고 물 좋은 경관을 배경으로 하며, 신체의 휴식이나 잔치, 놀이를 위한 기능보다는 자연인으로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같이 하려는 정신적 기능이 더 강조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인공의 구조물이지만 이미 그 인공을 초월한 대자연속에 동화되며 때로는 물과 함께 억겁의 세월 속에서 함께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광활한 허공에서 시공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공의 구조물인 정자가 결코 자연 경계 속에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거기 있는 바위, 거기 있는 소나무처럼 그저 자연스러우며 이것이 한국 정자의 모습이자 기능이며 존재 이유이다.
한국의 정원은 사람을 압도시키는 풍경은 아니다. 자연 조건도 그렇거니와 농경 조건도 광활한 대지의 경작이 아닌 개인 능력의 한도 내에서 주거와 농경이 밀착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일상생활이 자연 속의 모든 것을 직감하게 해준다. 그 결과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멋에 젖어 살아간다. 이는 곧 자연과 동화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만족할 줄 알고 자연의 시련에 순응하는 다소곳함을 말하는 것이 된다.
농촌 서민들의 일터 가까이 있는 원두막은 그들이 잠시나마 신선놀음을 하는 곳이다. 풍류와 친교와 학문을 목적으로 하는 상류계층의 정자와는 거리가 먼, 들녘의 원두막은 생산을 위한 공간이다. 비록 정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는 못했으나 바쁜 일손을 멈추고 잠시나마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자연에 순응하며 세속을 떠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농민들의 선경이다.
아직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농촌도 많이 변해 지난날의 가난에서 벗어나고 재래식의 농업환경에서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전원 풍경 속에 하나둘씩 새로운 농민들의 휴식처인 정자가 눈에 띄게 되었으며 이런 농촌형의 정자에서 연세 많으신 분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환담하고, 마을 청년들이 개인과 마을의 장래를 의논하는 정경은 상류층의 정자문화가 일반화된 일면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현대 건축의 상징인 고층 아파트 단지에는 거의 정자가 만들어져 있다. 정자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런 정자는 같은 구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좋은 친교의 장이기도 하여 새로 조성되는 공원이나 위락시설 등에는 으레 정자가 만들어지며 이러한 모습 속에서 정자가 일반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 또 우리 민족의 심성에 투영되었던 문화가 표출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과는 밀접한 관계였으며 또 우리만이 느끼고 즐기는 문화 공간인 것이다. 친교의 장으로써, 자연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누정은 조경의 입장에서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유(遊)와 화(和)의 상호 작용은 무용(無用)의 개념과 동일하다. 유와 화가 상호작용을 하여 도달하는 상태는 자연의 천지만물이 참다운 작용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다. 참다운 작용을 건축적으로 해석하자면 진정한 쓰임새라는 개념이 된다. 진정한 쓰임새는 노자의 무위 개념을 이어받아 장자가 발전시킨 무용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무용이란 쓰이는 것이 하나도 없되, 혹은 쓰이는 것이 하나도 없음으로써 쓰이지 않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의미이다. 풀어쓰면 불필요한 쓰임새를 없앰으로써 진정한 쓰임새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은유적으로 해석하면 진정한 쓸모는 쓸모없음에 있다라는 의미이다.
무용의 가르침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대상이 자연이다. 자연은 번거로운 쓸모를 피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쓸모를 확보하여 인간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다. 자연을 개발이나 정복 등과 같이 나의 물질적 이익을 위한 쓸모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자연과 나 모두를 망치는 일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나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이것이 무용의 가르침을 따라 유와 화의 상호작용에 이른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만 자연은 비로소 그 가치가 빛을 발하고 인간에게 진정한 이로움을 줄 수 있다.
누각의 노출 구조는 무용의 가르침이 잘 구현된 예이다. 누각에서는 필요 불가결한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워둠으로써 진정한 쓰임새를 얻을 수 있다. 누각에서 얻어지는 진정한 쓰임새는 단계별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다양한 상황을 맞을 수 있는 융통성을 확보한다. 융통성은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필요를 만족시킴으로써 진정한 쓸모를 발휘한다. 이것은 공리적 차원의 기능의 의미이다. 이것보다 높은 차원의 쓰임새는 자연을 끌어들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잘하고 쓸모없는 탐욕적 쓰임새를 없앰으로써 자연과 하나 되는 진정한 쓰임새를 얻는 것이다.
누정이 주는 무용의 교훈 가운데 대표적인 예로 기후 요소를 들 수 있다. 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각은 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건물의 모든 기능을 충분히 소화해낸다. 생활살이를 하고 글을 읽고 정치를 논한다. 뿐만 아니라 봄· 여름·가을의 계절 특징을 극대화하여 느끼고 즐길 수 있다. 봄날 누각에 오르는 느낌은 그 어떤 다른 건물 형식도 줄 수 없는 최고의 경지이다. 여름날 정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가을날 단풍 든 먼 산을 보며 푸른 하늘을 직접 호흡하는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한겨울에조차 따듯한 햇빛의 존재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또한 누정이라 하겠다.
9-8. 결
우리나라는 자연 경관이 아기자기하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여, 철에 따라 변하는 산과 들과 강의 풍정을 즐기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 우리 민족에게 누정은 극히 자연스러운 존재였으며 그래서 널리 보편화한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조선조 유학의 영향으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다는 생활철학이 정신적 바탕을 이루었고, 특히 선종이 한국 불교의 주류를 이루면서 자연과의 동화가 생활화되어 더욱 친숙해진 것 같다.
농경을 주로 했던 우리나라는, 자연을 사랑함에는 상류층과 서민의 차별이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서민 문화와 상류문화가 모두 그 바탕을 자연에 의지하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누정은 당연히 산 좋고 물 좋은 경관을 배경으로 하며, 신체의 휴식이나 잔치, 놀이를 위한 기능보다는 자연인으로서 자연과 더불어 삶을 같이 하려는 정신적 기능이 더 강조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인공의 구조물이지만 이미 그 인공을 초월한 대자연속에 동화되며 때로는 물과 함께 억겁의 세월 속에서 함께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광활한 허공에서 시공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공의 구조물인 정자가 결코 자연 경계 속에서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거기 있는 바위, 거기 있는 소나무처럼 그저 자연스러우며 이것이 한국 정자의 모습이자 기능이며 존재 이유이다.
한국의 정원은 사람을 압도시키는 풍경은 아니다. 자연 조건도 그렇거니와 농경 조건도 광활한 대지의 경작이 아닌 개인 능력의 한도 내에서 주거와 농경이 밀착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일상생활이 자연 속의 모든 것을 직감하게 해준다. 그 결과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멋에 젖어 살아간다. 이는 곧 자연과 동화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만족할 줄 알고 자연의 시련에 순응하는 다소곳함을 말하는 것이 된다.
농촌 서민들의 일터 가까이 있는 원두막은 그들이 잠시나마 신선놀음을 하는 곳이다. 풍류와 친교와 학문을 목적으로 하는 상류계층의 정자와는 거리가 먼, 들녘의 원두막은 생산을 위한 공간이다. 비록 정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는 못했으나 바쁜 일손을 멈추고 잠시나마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자연에 순응하며 세속을 떠나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농민들의 선경이다.
아직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농촌도 많이 변해 지난날의 가난에서 벗어나고 재래식의 농업환경에서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전원 풍경 속에 하나둘씩 새로운 농민들의 휴식처인 정자가 눈에 띄게 되었으며 이런 농촌형의 정자에서 연세 많으신 분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환담하고, 마을 청년들이 개인과 마을의 장래를 의논하는 정경은 상류층의 정자문화가 일반화된 일면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현대 건축의 상징인 고층 아파트 단지에는 거의 정자가 만들어져 있다. 정자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런 정자는 같은 구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좋은 친교의 장이기도 하여 새로 조성되는 공원이나 위락시설 등에는 으레 정자가 만들어지며 이러한 모습 속에서 정자가 일반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 또 우리 민족의 심성에 투영되었던 문화가 표출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과는 밀접한 관계였으며 또 우리만이 느끼고 즐기는 문화 공간인 것이다. 친교의 장으로써, 자연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누정은 조경의 입장에서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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