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독교의 도입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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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탈리아 기독교의 도입 전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개인의 프라이버시(privacy)를 위주로 한 양식이었으므로 개인생활 · 밀통 · 비밀 · 개인의 경험 등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되고, 그 개인이 차지하는 내부공간을 실질적으로 아담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장식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바로크 건축은 절대군주였던 루이 14세와 그의 귀족을 위하여 발전되었고,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말았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루이 14세의 사망 이전에도 혁명의 기운이 조성되었으며, 궁중에 있는 귀족들도 의식적이고 장중하며 거추장스런 공적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아담하고 조용한 사생활의 프라이버시를 열망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되어 루이 14세말에 이르러서는 개인생활에 대한 충동이 지배적이 되며, 사회생활에 완전한 혁신을 가져오게 되었고 개인의 관계, 친근한 교제와 환담 등이 사회생활의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사상을 배경으로 한 그 시대의 건축은 필연적으로 실내에 중점을 두게 되고 특수한 실내장식이 발전되었으며, 이 시대의 특유한 로카유(rocaille)라는 암석과도 같고 조개껍질과도 같은 특이한 조각장식인 소위 로코코 장식이 사용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로코코란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로코코 양식이 발전된 18세기는 그 때까지 발명되고, 발견된 과학적 지식을 체계화하고 활용하도록 한 이지(理智)가 발달된 시대였다. 이와 같은 시대의 조류는 건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므로 바로크 시대와는 달리 건축계획에 있어서 기능적인 고려가 중요시되고, 따라서 공간의 구성과 배치에 있어서도 각기 특정된 용도에 맞도록 합리적인 계획방법이 연구되었다. 바로크 건축은 기능을 무시하고 과대 망상적이었으며 공적 기능만을 과장한 건축이었으나, 18세기에 들어와서는 급전환을 하여 경제적이며 아담하고 살기 좋은 기능적인 공간을 만들도록 힘썼다. 로코코 건축은 실내에 중점을 두어서 실내의 화미한 장식과 외부의 간소한 표현이 좋은 대조가 되었으며, 프랑스의 취미와 영향이 지배적이었고, 이와 같은 경향은 유럽의 각국에 파급되었다. 로코코의 특징은 한 마디로 말해서 조용하고 관능적인 우아함에 있다. 강요하는 듯 한 것, 과장된 것, 힘찬 느낌과 양감을 과시하는 것은 모두가 품위가 없다고 해서 배척되었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라는 순서로 등장한 건축양식이 모두 교회건축으로부터 비롯된 것에 반해 로코코는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의 저택, 왕후의 궁전 건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로코코식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건축 내부의 마무리 방법이다. 먼저 방의 사이즈가 일반적으로 작아졌다. 위압적인 바로크식의 장대함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비교적 적은 인원의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기지에 넘친 대화를 즐기는 살롱이 왕후 귀족의 사교생활에서 중심이 된 것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작지만 친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넓은 방에 높다란 천장이라는 상례의 왕후의 궁전도 차츰 보통 저택과 같은 느낌으로 가까워져서 천장의 높이도 낮아졌다. 쓸데없이 높은 천장은 차분한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모두 \'모서리가 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 로코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기둥, 대들보, 문틀, 창틀이 삐쳐 나오는 것을 의식적으로 없애고 방안에서 보면 주위의 벽을 모두 평평한 평면으로 마무리하였다. 기둥, 대들보, 문틀, 창틀은 건축구조에서 꼭 필요한 것이므로 벽이나 천장에 메워 넣어 눈에 잘 띄지 않게 했다.
그리스 건축에서는 열주와 대들보, 로마 건축에서는 열주와 아치와 벽체가 자아내는 힘찬 구성감이 건축에서 중심이 되었다. 여기서 유럽의 건축은 그 전통을 계속 계승해온 셈이지만 로코코가 추구한 건축의 미의식은 실로 180도의 전환이었다.
로코코식의 궁전을 구경할 때 자세히 보면 방과 방을 막고 있는 벽이 너무 두텁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앞에서 든 \'메워넣기의 기법\'을 쓴 결과로 그만큼 방이 좁아진다. 작은 집안의 공간을 가능한 살리려고 애쓴 것을 볼 때 어느 면에서는 사치스럽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18세기의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불합리와 사치를 멈추지 않았던 것은 일부 특권 계급일 뿐이었다.
로코코의 건축가들은 건축의 외형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과거의 바로크식의 요란스러움을 없애고 경묘하고 우아한 느낌을 내게끔 신경을 썼는데, 한 눈에 \'이것이 로코코식이다\' 라고 할 만한 두드러진 특징을 건물의 외형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그들이 정성을 들인 것은 건축 내부의 설계였으며 건축의 후원자였던 왕후 귀족의 관심도 전적으로 그 방면에 쏟아졌다.
대신 내부의 벽면이나 문장식에 로카이유 모양(작은 돌, 자갈로써 그릇토의 내장에 쓰는 재료)의 장식이 애용되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왕후의 정원에 그롯토(정원 관계의 용어에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동굴 내지는 동굴 같은 방을 가리키며 그 내부를 작은 돌이나 조개껍질로 굳혀서 마치 천연의 동굴, 특히 바닷속의 동굴 같은 느낌을 냈던 것)를 만드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롯토에는 대개 샘을 설계하고 해신, 해마, 님프, 돌고래, 어패류 등 물과 관계가 깊은 조각을 설치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로카이유는 그롯토에서 벗어나 실내의 벽면 장식에도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롯토와는 달리 진짜 조개껍질을 벽면에 박아 넣은 것이 아니라 조개껍질과 해초를 뒤섞어 놓은 듯한 환상적인 모양을 벽에 시공했다. 이것이 로카이유 무늬이다.
로코코의 건축가들은 로카이유 무늬의 경묘함과 우아함에도 주목하고 벽이나 문의 장식에는 전적으로 로카이유를 사용했던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벽이나 문을 장식할 때 로카이유가 되어 있으면 그 방은 로코코식이라고 단정해도 좋을 만큼 철저하게 로카이유를 좋아했다. 로코코라는 양식명은 로카이유에서 유래한다. 그 무늬도 가벼운 느낌을 내기 위해 일부러 좌우대칭을 피하고 선은 되도록 가늘게 했으며 밝은 색 벽면에 황금빛의 로카이유를 우아하게 벽면에 떠오르게 했다. 건축실례로는 파리의 오뗄 드 수비스와 오뗄 드 마티뇽 독일의 산수시 궁, 아마리엔부르그가 있다.
<로코코양식의 대표적 건축 : 프러시아 황제의 별장인 상수시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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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24.02.29
  • 저작시기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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