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우파니샤드란 무엇인가?
(1) 베다와 우파니샤드
(2) 우파니샤드의 구성과 쌍까라의 주석
2. 우파니샤드의 주요 내용
(1) 아트만과 브라흐만
(2) 마야와 무명
(3) 개체아 그리고 업, 윤회, 해탈
(4)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신과 그 역할
3. 인도철학과 우파니샤드
(1) 인도철학의 근간인 우파니샤드의 형성 과정
(2) 우파니샤드의 특성
4. 인도의 종교와 우파니샤드
(1) 힌두교와 우파니샤드
(2) 불교와 우파니샤드
5. 산스크리트와 우파니샤드
Ⅲ. 결론
Ⅳ. 출처 및 참고문헌
Ⅰ. 서론
Ⅱ. 본론
1. 우파니샤드란 무엇인가?
(1) 베다와 우파니샤드
(2) 우파니샤드의 구성과 쌍까라의 주석
2. 우파니샤드의 주요 내용
(1) 아트만과 브라흐만
(2) 마야와 무명
(3) 개체아 그리고 업, 윤회, 해탈
(4)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신과 그 역할
3. 인도철학과 우파니샤드
(1) 인도철학의 근간인 우파니샤드의 형성 과정
(2) 우파니샤드의 특성
4. 인도의 종교와 우파니샤드
(1) 힌두교와 우파니샤드
(2) 불교와 우파니샤드
5. 산스크리트와 우파니샤드
Ⅲ. 결론
Ⅳ. 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를 ‘베다의 끝’ 또는 ‘베다 사상의 정수’인 ‘베단타’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파니샤드가 베다 전통의 맨 마지막 단계에 형성되었으며, 그 내용이 베다 사상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베다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호기심에서 출발하였는데 사람들은 불, 바람, 태양과 같은 자연의 심을 형상화해 자연신으로 숭배하였고, 이러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례용 서적을 모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초기의 베다는 자연신에 대한 찬양과 제사가 가장 중요한 인간의 행위로 여겨졌다. 하지만 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점차 여러 자연신을 하나의 신으로 보게 되었고, 종래에는 신이라기보다 세계의 근원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우파니샤드는 이런 베다 사상을 계승하여 신이 아닌 인간의 주체가 되는 존재의 참모습인 ‘아트만’과 세상의 참모습인 ‘브라흐만’으로 발전시킨 것이며, 자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는 의의가 있다.
베다는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문헌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부분인 리그베다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미 제사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책으로 전해진 것은 아니고 나중에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하지만 베다는 엄격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베다는 리그베다,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아타르와베다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베다를 해설한 해설집이 기록된 이유는 베다를 변형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베다의 전승이 이렇게 독특한 과정을 가진 이유는 베다는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계시를 통해 받은 천계서라고 여겨서이다.
해설집인 브라흐마나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워진 각 베다의 내용을 분석하고 의미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해설서에 따르면 베다 식 제사를 통해 이루지 못할 것은 없었으며, 심지어 신조차도 제사를 받지 못하면 권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제사 제일주의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제사라는 행위에 치우친 해석을 비판한 사람들은 또 다른 해설집 아란야까를 통해 제사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의 파악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고, 제사는 하나의 상징일뿐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여기에서 베다의 상징을 신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발전시킨 것이 바로 우파니샤드이다. 우파니샤드를 베다의 끝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러한 베다 해설집들의 전통에서 마지막을 장식했기 때문이고, 베다의 정수라고 하는 것은 베다 사상의 가장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베다에서 우파니샤드로 옮겨가는 과정을 통해 제사의 형식주의와 권위는 강한 저항에 직면한다. 그것은 형식적인 제례 의식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며, 신에게 제사의 대가를 기대하는 것보다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업과 윤회의 개념도 이러한 저항에서 나온 것이다. 제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따라 선한 행위에는 그에 따른 결과가 반대로 악한 행위에는 그에 따른 악한 결과를 받게 된다는 ‘업(業)’ 사상과 업으로 인한 결과를 받기 위해 반복해서 세상에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는 윤회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제사에 의지하는 베다를 추월한 비판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의 우파니샤드가 출현하게 되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 말기에 시작된 일원론을 확장하였고, 관심의 대상이 자연에서 인간 세계로 이동함에 따라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신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즉 막연히 신에 관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 자유, 평화를 위해 인간과 그를 둘러싼 우주의 본질을 밝혀내려 한 것이다.
(2) 우파니샤드의 특성
우파니샤드는 어떤 유명철학자에 의한 개인의 철학이 아니다. 베다를 해설하는 전통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인도철학은 기존의 것에 해설을 붙이는 형식으로 발달하였는데, 베다는 물론 약 기원전 1000년부터 기록된 베다의 해설집에도 계보의 흔적만 드물게 있을 뿐 저자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설집의 마지막 부분인 우파니샤드 역시 철학자 개인이 아닌, 전통을 중시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철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300년 정도에 형성된 우파니샤드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데, 특정한 철학자의 철학을 펼친 것이 아닌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축적된 많은 철학자가 남긴 어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설집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인도철학의 갈래를 낳았다.
앞서 언급한 8세기경 실존 인물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도 철학자인 샹까라는 10종의 우파니샤드에만 해설을 붙였고, 이처럼 특정 철학 또는 종교의 계보와 관계없이 후대에 영향을 미친 고전 우파니샤드는 ‘이샤 우파니샤드’, ‘께나 우파니샤드’를 비롯한 18종 정도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초기 우파니샤드가 형성된 시기는 최소 기원전 6세기 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불교가 나오기 전이며, 베다의 제사 형식이 한창 왕성하게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여기에 속하는 우파니샤드는 ‘아이따레야 우파니샤드’, ‘까우쉬따끼 우파니샤드’, ‘따잇띠리야 우파니샤드’,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브리하다란야까 우파니샤드’가 있다. 이러한 우파니샤드마다 조금씩 다루는 주제와 내용을 전개하는 형식이 다르다. 또, 초기의 우파니샤드는 주로 산문체의 형식으로 작성되었지만, 산문과 운문이 섞이기 시작했고, 뒤로 갈수록 완전한 시 형식의 운문체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파니샤드가 경전처럼 여겨졌고, 교육을 위해 낭송하거나 암기하는 방식을 따랐기 때문으로 유추하고 있다.
또, 초기의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일원론을 중심으로 관념론적인 범아일여 사상을 전개했고, 후기의 우파니샤드에서는 조금씩 종파의 성격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기원전 6세기 이후 조금씩 전개된 신화시대의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신화시대에는 베다 시대와 같이 신들이 중요한 자리에 오르고,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창조의 신, 유지의 신, 파괴의 신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이 생겨났다.
따라서 후기에 형성된 ‘슈웨
베다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호기심에서 출발하였는데 사람들은 불, 바람, 태양과 같은 자연의 심을 형상화해 자연신으로 숭배하였고, 이러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례용 서적을 모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초기의 베다는 자연신에 대한 찬양과 제사가 가장 중요한 인간의 행위로 여겨졌다. 하지만 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점차 여러 자연신을 하나의 신으로 보게 되었고, 종래에는 신이라기보다 세계의 근원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우파니샤드는 이런 베다 사상을 계승하여 신이 아닌 인간의 주체가 되는 존재의 참모습인 ‘아트만’과 세상의 참모습인 ‘브라흐만’으로 발전시킨 것이며, 자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는 의의가 있다.
베다는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문헌이며,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부분인 리그베다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미 제사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책으로 전해진 것은 아니고 나중에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하지만 베다는 엄격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베다는 리그베다,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아타르와베다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베다를 해설한 해설집이 기록된 이유는 베다를 변형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베다의 전승이 이렇게 독특한 과정을 가진 이유는 베다는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계시를 통해 받은 천계서라고 여겨서이다.
해설집인 브라흐마나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워진 각 베다의 내용을 분석하고 의미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해설서에 따르면 베다 식 제사를 통해 이루지 못할 것은 없었으며, 심지어 신조차도 제사를 받지 못하면 권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제사 제일주의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제사라는 행위에 치우친 해석을 비판한 사람들은 또 다른 해설집 아란야까를 통해 제사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의 파악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고, 제사는 하나의 상징일뿐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여기에서 베다의 상징을 신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발전시킨 것이 바로 우파니샤드이다. 우파니샤드를 베다의 끝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러한 베다 해설집들의 전통에서 마지막을 장식했기 때문이고, 베다의 정수라고 하는 것은 베다 사상의 가장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베다에서 우파니샤드로 옮겨가는 과정을 통해 제사의 형식주의와 권위는 강한 저항에 직면한다. 그것은 형식적인 제례 의식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며, 신에게 제사의 대가를 기대하는 것보다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업과 윤회의 개념도 이러한 저항에서 나온 것이다. 제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따라 선한 행위에는 그에 따른 결과가 반대로 악한 행위에는 그에 따른 악한 결과를 받게 된다는 ‘업(業)’ 사상과 업으로 인한 결과를 받기 위해 반복해서 세상에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는 윤회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제사에 의지하는 베다를 추월한 비판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의 우파니샤드가 출현하게 되었다. 우파니샤드는 베다 말기에 시작된 일원론을 확장하였고, 관심의 대상이 자연에서 인간 세계로 이동함에 따라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신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즉 막연히 신에 관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 자유, 평화를 위해 인간과 그를 둘러싼 우주의 본질을 밝혀내려 한 것이다.
(2) 우파니샤드의 특성
우파니샤드는 어떤 유명철학자에 의한 개인의 철학이 아니다. 베다를 해설하는 전통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인도철학은 기존의 것에 해설을 붙이는 형식으로 발달하였는데, 베다는 물론 약 기원전 1000년부터 기록된 베다의 해설집에도 계보의 흔적만 드물게 있을 뿐 저자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설집의 마지막 부분인 우파니샤드 역시 철학자 개인이 아닌, 전통을 중시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철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300년 정도에 형성된 우파니샤드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데, 특정한 철학자의 철학을 펼친 것이 아닌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축적된 많은 철학자가 남긴 어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설집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인도철학의 갈래를 낳았다.
앞서 언급한 8세기경 실존 인물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도 철학자인 샹까라는 10종의 우파니샤드에만 해설을 붙였고, 이처럼 특정 철학 또는 종교의 계보와 관계없이 후대에 영향을 미친 고전 우파니샤드는 ‘이샤 우파니샤드’, ‘께나 우파니샤드’를 비롯한 18종 정도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초기 우파니샤드가 형성된 시기는 최소 기원전 6세기 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불교가 나오기 전이며, 베다의 제사 형식이 한창 왕성하게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여기에 속하는 우파니샤드는 ‘아이따레야 우파니샤드’, ‘까우쉬따끼 우파니샤드’, ‘따잇띠리야 우파니샤드’,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브리하다란야까 우파니샤드’가 있다. 이러한 우파니샤드마다 조금씩 다루는 주제와 내용을 전개하는 형식이 다르다. 또, 초기의 우파니샤드는 주로 산문체의 형식으로 작성되었지만, 산문과 운문이 섞이기 시작했고, 뒤로 갈수록 완전한 시 형식의 운문체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파니샤드가 경전처럼 여겨졌고, 교육을 위해 낭송하거나 암기하는 방식을 따랐기 때문으로 유추하고 있다.
또, 초기의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일원론을 중심으로 관념론적인 범아일여 사상을 전개했고, 후기의 우파니샤드에서는 조금씩 종파의 성격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기원전 6세기 이후 조금씩 전개된 신화시대의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신화시대에는 베다 시대와 같이 신들이 중요한 자리에 오르고,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창조의 신, 유지의 신, 파괴의 신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이 생겨났다.
따라서 후기에 형성된 ‘슈웨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