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군주론 책소개
2. 시대적 배경
3. 군주론에서 말하는 위대한 군주가 되는 방법
4. 독후감 (느낀점)
2. 시대적 배경
3. 군주론에서 말하는 위대한 군주가 되는 방법
4. 독후감 (느낀점)
본문내용
나오는 말이다. 대개는 정치적 명분의 공백을 메우려는 변명으로 들리지만 현실정치의 본질을 꿰뚫은 말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권력 투쟁을 중심으로 얽힌 정치적 이해가 정치행위의 직접적 동기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실상은 더하다. 평화와 정의, 민주주의 등의 구호는 대개 겉치레일 뿐이다. 강대국의 국익에 어긋하면 언제든 평화를 깨닫는 전장을 초래할 수 있음이 옛날에 아프가니스탄 · 이라크 전쟁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됐다. 정의와 평화라는 인류 공통의 지향점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여전히 파워 폴리틱스에 사로잡혀 있다.
군주론이 설파하는 것은 그런 현실의 정치에서 승리해 권력을 얻고, 지키는 데 필요한 지혜다. 그러나 권력은 정치인에게는 목적일 수 있지만 관찰자에게는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현실 정치에 지혜로 무장한 영명한 군주가 출현하길 기대하면서, 마키아벨리가 염두에 두었던 목적은 이탈리아의 통일이었다. 그런 정당한 목적에 쓸모가 있는 범위 안에서 일반적 윤리기준을 일탈한 행위도 상대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군주론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지만 적어도 인간 사회의 보편적 원이로서가 아니라 특수한 조건이 전제된 현실적 지혜로서 읽어주길 바란다. “이상 없는 현실은 위태롭고, 현실 없는 이상은 공허하다.”는 말처럼 눈길은 높은 이념에 두고, 발은 구체적 현실을 두는 것이 참된 지혜일 것이다.
그리고 선과 악은 인간들에게 오래전부터 대조되는 이미지로서 고정되어 왔고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기준은 상당히 애매한데,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쉽게 달라지며 혼동되기 때문이다.
쉽게 판타지 소설을 예로 들 때,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에서는 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의 무리가 있고, 그것을 방어하는 선의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선의 무리를 옳다고 여겨 그들을 자연스레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을 때, 세계를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무리가 항상 선한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의 무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그들의 행위가 옳다고 여겨질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사냥꾼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사슴을 나무꾼은 숨겨주고, 사슴을 쫓아온 사냥꾼에게 거짓말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꾼을 선하다고 여기고, 사냥꾼을 악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사냥꾼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히 종사하고 있었을 뿐, 이를 악하다고 할 수 없다.
군주는 목적, 즉 자국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 허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군주론 또한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악서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한 마디로 선과 악은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이에게 선과 악의 분명한 관념이 있다면 세상의 문제의 대부분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러한 개념이 서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처신하면서 회의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군주론이 설파하는 것은 그런 현실의 정치에서 승리해 권력을 얻고, 지키는 데 필요한 지혜다. 그러나 권력은 정치인에게는 목적일 수 있지만 관찰자에게는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현실 정치에 지혜로 무장한 영명한 군주가 출현하길 기대하면서, 마키아벨리가 염두에 두었던 목적은 이탈리아의 통일이었다. 그런 정당한 목적에 쓸모가 있는 범위 안에서 일반적 윤리기준을 일탈한 행위도 상대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군주론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지만 적어도 인간 사회의 보편적 원이로서가 아니라 특수한 조건이 전제된 현실적 지혜로서 읽어주길 바란다. “이상 없는 현실은 위태롭고, 현실 없는 이상은 공허하다.”는 말처럼 눈길은 높은 이념에 두고, 발은 구체적 현실을 두는 것이 참된 지혜일 것이다.
그리고 선과 악은 인간들에게 오래전부터 대조되는 이미지로서 고정되어 왔고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기준은 상당히 애매한데,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쉽게 달라지며 혼동되기 때문이다.
쉽게 판타지 소설을 예로 들 때,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에서는 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의 무리가 있고, 그것을 방어하는 선의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선의 무리를 옳다고 여겨 그들을 자연스레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을 때, 세계를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무리가 항상 선한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의 무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그들의 행위가 옳다고 여겨질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사냥꾼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사슴을 나무꾼은 숨겨주고, 사슴을 쫓아온 사냥꾼에게 거짓말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꾼을 선하다고 여기고, 사냥꾼을 악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사냥꾼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히 종사하고 있었을 뿐, 이를 악하다고 할 수 없다.
군주는 목적, 즉 자국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 허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군주론 또한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악서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한 마디로 선과 악은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이에게 선과 악의 분명한 관념이 있다면 세상의 문제의 대부분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러한 개념이 서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처신하면서 회의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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