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창극(唱劇)에 관련한 신재효(申在孝)의 암시
2. 창극과 판소리의 관계 정립
3.사설의 조건
4.판짜기의 조건
5.추상화의 공연 조건
6.추임새의 조건
7.창극의 미래를 위하여
2. 창극과 판소리의 관계 정립
3.사설의 조건
4.판짜기의 조건
5.추상화의 공연 조건
6.추임새의 조건
7.창극의 미래를 위하여
본문내용
바 있지만 연극은 집단을 향하여 말하는 예술
) Thornton Wilder, Some Thoughts on Playwrighting, James L. Calderwood & Harold E. Toliver ed., Perspectives on Drama, 1968, pp.9-10.
이다. 그래서 연출자도 관객의 생각과 기호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함은 당연하다.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한다 해도, 전통의 계승이 아무리 당위라 해도, 오늘날의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지 못한다면 모든 논의는 어디에 쓸 것인가
) 황두진, 국립창극단 81회공연 <이생규장전> 연출가의 말, 1993.
하는 의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는 하되 관객의 문제가 그처럼 단선적으로 처리될 만큼 단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창극 역사에서 논의의 단서를 찾아 본다.
一篇(일편) 小說(소설)을 滋美(자미)잇게 지어다되 我國(아국) 古來(고래) 貪官汚吏(탐관오리)의 政治(정치)도 包含(포함)힝며 閨門內(규문내) 妻妾(처첩) 爭妬(쟁투)의 弊端(폐단)도 寓意(우의)힝며 或(혹) 乙支文德(을지문덕)의 薩水大戰(살수대전)힝든 形容(형용)이며 桂月香(계월향)의 賊將(적장) 謀斬(모참)힝든 眞相(진상)을 這這(저저)히 活劇(활극)힝면 一般(일반) 觀聽(관청)이 忠義勇敢(충의용감)의 大氣槪(대기개)링 鼓發(고발)힝지며 古來(고래) 政俗(정속)의 不美(불미)한 것을 不得不(부득불) 改良(개량)힝 思想(사상)도 發現(발현)힝지니 演戱(연희)의 資料(자료)가 如此(여차)힝면 읏지 今日(금일)과 갓치 淫女蕩子輩(음녀탕자배) 幾個式(기개식)만 入場觀光(입장관광)힝리오
) 달관생(達觀生), 연극장 주인에게, 『서북학회월보』 1권 6호, 1909, p.33.
이 글은 극장에 가서 잡가며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대목 연창(演唱)을 보고 그것이 음탕한 내용의 공연이라고 비난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대목이다.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그 공연의 흥행적 성립을 가능하게 했다면, 동시대인 가운데는 그에 강력히 반발하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이렇듯이 있게 마련이라는 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이 말에 대하여 판소리를 즐기는 대다수의 사람은 물론 침묵했을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새마을 운동을 부르짖으면서 장승을 뽑아버린 1970년대의 우리 사회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지금은 그런 것을 보존하는 일이 민족정신을 부르짖는 일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그 때 그 사람이 지금 그 사람이라는 사실도 참조되어야 한다. 추임새의 원리도 추임새에 참여하는 사람의 몫이다. 극장 밖에는 여전히 냉담한 목소리가 건재할 것도 예상해야 한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창극이 판소리의 연극인 한은 추임새의 조건은 어떤 형태로든지 지켜지고 충족되어야 그 본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발전적 문화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창극의 미래를 위하여
이제 우리의 창극 논의에 결말을 짓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주목하고자 한다.
판소리는 전환시대에 이르러 一人立唱의 전통적 형태를 묵수하는 방향과 배역을 나누어 분창하는 창극 형태로 양분되었다. 창극으로의 변모는 시대적 요청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지만, 극적 요소의 확대와 관객의 기호에 영합하여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그 예술화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관객의 인기를 바라고 예속자본과 타협하면서 민족 예술을 살리고자 한 것은 대상을 이용하여 후일을 기약하는 슬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는 것이 삶의 원리이다. 창극의 분창에 따라 연창자는 한 인물의 극적 성격 표출에만 관심을 가지고, 판소리 자체가 가지는 인간의 깊이 있는 성찰은 도외시하였다. 연기와 분장술 등은 그 자체로서는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연창자가 가져야 하는 본질적 노력인 소리의 추구는 그만큼 등한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창극은 외면적으로는 확장되고 발전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위축과 자기 상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정병헌, 『판소리문학론』, 새문사, 1993, p.52.
20세기 전반기를 판소리의 전환시대로 규정한 이 글을 길게 인용한 까닭은 판소리의 본질에 연계되지 못하는 창극의 갈 길이 어디인가에 대한 시사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연극적 흥미에만 몰두할 때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암시가 손등과 손바닥처럼 하나가 되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가 생성되고 전개되어 온 조선 후기의 사회가 그러했듯이, 또 창극이 형성되고 변모해 온 20세기의 사회가 그러했듯이, 거기에는 언제나 이중적 대극(對極)이 공존하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은 일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 되기 쉽다. 그러한 이중적 대극은 조선 후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을 것이며 다가오는 21세기에도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인간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보수와 혁신이 혹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라는 것까지도 대를 이루면서 다양하게 혼재한다. 사회만이 그러한가? 우리도 또한 아침에는 선인이다가 저녁에는 악인이다가 혹은 그 역이다가 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판소리는 그래서 이중성을 본질로 하고 있음은 앞에서 살핀 바와 같다.
그러기에 진지한 판소리가 오늘날의 것이므로 창극이 그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든가, 보존이냐 개혁이냐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든가 하는 논의들은 무의미할 수 있다. 판소리 자체가 이중적 구조의 결정체인 데서 인간적이라는 논의에 주목하면 추론의 단서는 찾아진다.
그래도 아직 창극의 조건에 대하여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창극을 하면 연극소리라고 해서 소리를 버리게 된다는 악조건은 연기자의 몫이고, 서양 음악의 도입이 음악적 개화로 인식되었던 근대사 때문에 알아들을 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악조건은 관객의 몫이다. 이런 문제도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악조건은 악조건일 뿐 불가능의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악조건이 오히려 거듭나는 예술적 조건으로 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최근에 사회적 선풍을 일으킨 영화 <서편제>의 성공이 주는 의미를 반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Thornton Wilder, Some Thoughts on Playwrighting, James L. Calderwood & Harold E. Toliver ed., Perspectives on Drama, 1968, pp.9-10.
이다. 그래서 연출자도 관객의 생각과 기호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함은 당연하다.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한다 해도, 전통의 계승이 아무리 당위라 해도, 오늘날의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지 못한다면 모든 논의는 어디에 쓸 것인가
) 황두진, 국립창극단 81회공연 <이생규장전> 연출가의 말, 1993.
하는 의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는 하되 관객의 문제가 그처럼 단선적으로 처리될 만큼 단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창극 역사에서 논의의 단서를 찾아 본다.
一篇(일편) 小說(소설)을 滋美(자미)잇게 지어다되 我國(아국) 古來(고래) 貪官汚吏(탐관오리)의 政治(정치)도 包含(포함)힝며 閨門內(규문내) 妻妾(처첩) 爭妬(쟁투)의 弊端(폐단)도 寓意(우의)힝며 或(혹) 乙支文德(을지문덕)의 薩水大戰(살수대전)힝든 形容(형용)이며 桂月香(계월향)의 賊將(적장) 謀斬(모참)힝든 眞相(진상)을 這這(저저)히 活劇(활극)힝면 一般(일반) 觀聽(관청)이 忠義勇敢(충의용감)의 大氣槪(대기개)링 鼓發(고발)힝지며 古來(고래) 政俗(정속)의 不美(불미)한 것을 不得不(부득불) 改良(개량)힝 思想(사상)도 發現(발현)힝지니 演戱(연희)의 資料(자료)가 如此(여차)힝면 읏지 今日(금일)과 갓치 淫女蕩子輩(음녀탕자배) 幾個式(기개식)만 入場觀光(입장관광)힝리오
) 달관생(達觀生), 연극장 주인에게, 『서북학회월보』 1권 6호, 1909, p.33.
이 글은 극장에 가서 잡가며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대목 연창(演唱)을 보고 그것이 음탕한 내용의 공연이라고 비난하면서 그 대안으로 제시한 대목이다.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그 공연의 흥행적 성립을 가능하게 했다면, 동시대인 가운데는 그에 강력히 반발하는 생각을 지닌 사람도 이렇듯이 있게 마련이라는 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이 말에 대하여 판소리를 즐기는 대다수의 사람은 물론 침묵했을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새마을 운동을 부르짖으면서 장승을 뽑아버린 1970년대의 우리 사회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지금은 그런 것을 보존하는 일이 민족정신을 부르짖는 일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그 때 그 사람이 지금 그 사람이라는 사실도 참조되어야 한다. 추임새의 원리도 추임새에 참여하는 사람의 몫이다. 극장 밖에는 여전히 냉담한 목소리가 건재할 것도 예상해야 한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창극이 판소리의 연극인 한은 추임새의 조건은 어떤 형태로든지 지켜지고 충족되어야 그 본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발전적 문화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창극의 미래를 위하여
이제 우리의 창극 논의에 결말을 짓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주목하고자 한다.
판소리는 전환시대에 이르러 一人立唱의 전통적 형태를 묵수하는 방향과 배역을 나누어 분창하는 창극 형태로 양분되었다. 창극으로의 변모는 시대적 요청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지만, 극적 요소의 확대와 관객의 기호에 영합하여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그 예술화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관객의 인기를 바라고 예속자본과 타협하면서 민족 예술을 살리고자 한 것은 대상을 이용하여 후일을 기약하는 슬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는 것이 삶의 원리이다. 창극의 분창에 따라 연창자는 한 인물의 극적 성격 표출에만 관심을 가지고, 판소리 자체가 가지는 인간의 깊이 있는 성찰은 도외시하였다. 연기와 분장술 등은 그 자체로서는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연창자가 가져야 하는 본질적 노력인 소리의 추구는 그만큼 등한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창극은 외면적으로는 확장되고 발전하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위축과 자기 상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정병헌, 『판소리문학론』, 새문사, 1993, p.52.
20세기 전반기를 판소리의 전환시대로 규정한 이 글을 길게 인용한 까닭은 판소리의 본질에 연계되지 못하는 창극의 갈 길이 어디인가에 대한 시사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연극적 흥미에만 몰두할 때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암시가 손등과 손바닥처럼 하나가 되어 여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가 생성되고 전개되어 온 조선 후기의 사회가 그러했듯이, 또 창극이 형성되고 변모해 온 20세기의 사회가 그러했듯이, 거기에는 언제나 이중적 대극(對極)이 공존하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은 일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 되기 쉽다. 그러한 이중적 대극은 조선 후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을 것이며 다가오는 21세기에도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인간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보수와 혁신이 혹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라는 것까지도 대를 이루면서 다양하게 혼재한다. 사회만이 그러한가? 우리도 또한 아침에는 선인이다가 저녁에는 악인이다가 혹은 그 역이다가 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판소리는 그래서 이중성을 본질로 하고 있음은 앞에서 살핀 바와 같다.
그러기에 진지한 판소리가 오늘날의 것이므로 창극이 그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든가, 보존이냐 개혁이냐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든가 하는 논의들은 무의미할 수 있다. 판소리 자체가 이중적 구조의 결정체인 데서 인간적이라는 논의에 주목하면 추론의 단서는 찾아진다.
그래도 아직 창극의 조건에 대하여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창극을 하면 연극소리라고 해서 소리를 버리게 된다는 악조건은 연기자의 몫이고, 서양 음악의 도입이 음악적 개화로 인식되었던 근대사 때문에 알아들을 귀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악조건은 관객의 몫이다. 이런 문제도 해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악조건은 악조건일 뿐 불가능의 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악조건이 오히려 거듭나는 예술적 조건으로 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최근에 사회적 선풍을 일으킨 영화 <서편제>의 성공이 주는 의미를 반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