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마녀재판과 한국의 국가보안법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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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세계사 속의 마녀재판

3. 한국의 국가보안법 현상과 마녀재판

4. 결론

본문내용

된 것이었다. 메시아적 신앙을 가진 타보르 종파나 재세례파등은 그들의 메시아 신앙 때문이 아니라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는 이유 때문에 처단되었다.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틀이었다. 이 틀은 끝없이 희생자들의 요구하고 있었다. 그 틀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승진과 출세라는 작은 동기를 벗어나 국가보안법이라는 틀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하여 이 법이 지향하는 체제와 그 체제로 인하여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보호막이 된 것이다. 가끔 조직계보와 함께 큼지막한 사진으로 상징되는 사건의 발표 때마다 그 사진의 주인공들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 봉사하게 마련이었다. 때로는 반공심리를 자극시켜 선서에서 안정희구세력의 표를 묶는 역할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이용하여 사회에 무겁고 불안한 심리를 일으켜 쿠테타 권력의 안정과 정착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큰 간첩사건이 터지거나 간첩사건이 자주 터질 때가 대체로 이러한 정치적 목적이 필요한 때였다. 심지어는 미리 파악해 두고 있던 간첩사건을 일부러 시간이 지나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때 터뜨리기도 하였다.
한편 기독교의 절대적 권위가 강화되면서 하나의 도그마가 되고 그에 반대되는 그 모든 것이 이단시된 것이 중세 유럽이었다. 마녀는 바로 기독교의 이단적 세력에 다름 아니었다. 동시에 남북의 분단이 강화되고 좌우대립과 상호적대가 심화되면서 국가안보의 이데올로기는 절대적 가치의 수준으로 올라갔다. 국가안보의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도그마로서 그 어떤 국민의 희생이나 기본권의 제한을 위한 명분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이 도그마들이 깨지는 것은 그 외의 다른 가치들에 대한 고려, 상대주의적 인식의 전환 등의 계기에 의해서이다. 신의 권위에 대한 휴머니즘의 등장에 의하여 마녀재판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고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의 가치 부흥에 의해 국가보안법의 위력은 악화되고 있다.
4. 결론
"15세기에서부터 18세기까지 세 세기동안 벌어진 광란의 마녀재판만큼이나 공포로 가득 찬 인간 역사의 페이지는 없다."
서양의 마녀재판은 끔찍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 있다. 유죄로 판명 나 처형된 그 수십만 마녀들을 모두 무죄였다. 그 재판 자체가 명백한 오판이었고 범죄행위였다. 고문과 자백의 강요가 빚은 이 비극적 현상은 인류의 미망과 무지, 악의 속에서 핀 독버섯이었다. 많은 영사학자들이 그것은 특정한 지역의, 특정한 시대에 벌어졌던 특수한 현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마녀재판은, 그 규모와 잔인성, 기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이며 동시에 모든 사회가 저지를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다. 우리는 전세계를 파시즘의 광란 속에 살게 하였던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의 나치즘과 이태리와 일본의 파시즘, 미국의 50년대를 사상적 황폐로 몰아 넣었던 메카니즘, 드레뷔스 사건에서도 같은 현상을 본다. 그 세대의 한 희생자였던 알지에 히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알지에 히스재판'의 해설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시대를 주름잡은 '반공의 대의'에 편승한 조작극은 그 시대의 광기를 드러낸다. 이 영화는 그 광기의 시대를 심판한다. 30년이 지난 오늘, 메카니즘의 과오는 새삼스럽게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 셈이다.
광기와 공란의 시대는 그로 인한 희생자를 낳게 마련이다. 집단적 히스테리에 빠진 사회와 국가가 그 구성원을 해칠 수밖에 없다. 바로 서양의 마녀재판과 우리의 국가보안법 소동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공정하고 이성적인 판단 대신에 적대와 분노, 그리고 선입견으로 한 개인과 집단에게 누명을 씌워 희생양으로 삼아 왔다. 법과 재판이라는 형식이 존재하지만 그야말로 그것은 형식일 뿐이다. 실제로는 법과 재판의 형식을 빈 야만적 그리고 사법적 살인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통하여 무력하고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단지 무지하고 변덕스러운 대중의 흥분이나 방관에 의해 이러한 억울함이 생겨 났다기 보다는 지배자의 면밀한 계획 하에 벌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 점에서 유사성을 띄고 있는지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직 국회의원과 수천 명의 노동자, 학생, 시민들을 구속으로 몰고간 이른바 국시논쟁이니 죄격 용공이니 하는 말이 횡행하고 있는 것도 이 길고 어두운 역사를 지닌 빨갱이 귀신을 다시 불러내어 그 주술적 위력을 이용해 보려는 세력의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면 틀린 말일까? …오로지 권력에만 눈 뒤집힌 자들이 대다수 민중들이 갈구해 마지않는 본질을 호도하고 지엽말단의 자구 몇 개, 몇 마디 구호를 침소봉대, 왜곡 과장하여 주술로 삼고 불러들인 저 어두운 시대의 망령이 초래할 참화를 이 시대의 민중들은 또 다시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인가."
'횡행' '빨갱이 귀신' '주술' '음모' '권력' '침소봉대' '왜곡과장' '어두운 시대' '망령' '참화'등 이 간단한 인용문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모두 마녀재판의 시대를 연상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이 '길고 어두운 시대'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서양의 마녀재판은 오랜 과거의 일임에 비하여 국가보안법 재판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바로 우리의 비극이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여전히 '고문'과 '조작', '프락치'와 '공작'이라는 단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서양에서는 바로 이 재판을 통하여 드러난 문제를 개선하는데 힘써 마침내 가장 선진적인 사법제도를 이룩하였다. 그 잔혹과 처참을 극한 비극의 땅에서 인간의 과오를 줄일 수 있는 사법제도가 발전되고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라기 보다는 필연적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에서 수세기 전 백만이 넘는 무고한 부녀자를 화형 시킨 죄악이 더 이상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것으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중세유럽과 초기 미국사에 나타난 마녀재판이 우리에게 주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문명이의야만의 짓, 푸닥거리 주술을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키워드

서양,   마녀,   재판,   국가보안법,   현상
  • 가격2,300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2.04.26
  • 저작시기2002.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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