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정토회의 고민과 다양한 사회운동의 모색
새로운 사회의 모색과 공동체운동
생태위기와 새로운 대안운동
환경위기의 근본성
새로운 사회의 모색과 공동체운동
생태위기와 새로운 대안운동
환경위기의 근본성
본문내용
제애와 투자, 포기, 선택이 중요한 덕목으로 되어 있어요. 히피공동체는 내
부질서가 없어서 많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공동체들이 세계변화를
어떻게 대체할 것이냐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세월에 세계를 변화시킬 것
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너의 사고부터 점검해봐라고 대답합니다. 국가
단위의 운동이나 지역운동이나 하나의 단위밖에 되지 않느냐하는 거에요. 두
번째는 운동의 사고가 구조적이라는 거에요. 궁극적으로 변화는 자기변화와
사회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는 자기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변화보다 자기 밖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런 변혁은
어렵다구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카오스이
론이나 나비효과처럼 구조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즉 중심을 이동
시키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나비효과처럼 북경에서 날개짓하면 뉴욕에서 태
풍이 분다고 하는 것처럼 작은 단위의 변화가 근본적이고 실질적이라고 생각
하는 거에요. 또 하나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는 점에 불과하지만 이 점들이 모
여 선으로, 선이 면으로 나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더딘 것 같지
만 훨씬 근본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과거 공동체 중에 성공한 곳이 어디있냐고 질문하는데 앞으로 공
동체운동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보다 과정을 소중히 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목
적을 달성하는 과정이 행복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정중에서 죽어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운동은 굉장히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사고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내부적으로 질서가 있습니다. 물론 공동체가 어떤 것이냐 하는
규정의 문제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있었어요. 의도된 공동체로부터 다양한 스
펙트럼이 있습니다. 많은 공동체들은 산업사회에서의 비인간성을 부정하는 공
통점이 있어요. 무엇을 거부한다는데 공통점과 더불어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
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공동체
는 내부질서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코하우징(co-housing)이라는
공동주거운동이 있는데 큰 부지를 사서 일종의 주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데
개인 공간은 작게, 공적 공간은 크게하는 것입니다. 70년대에 많이 생겨났죠.
그 다음에 도시 공동체가 있는데 집을 구입해서 같이 사는 겁니다. 또 공동체
운동을 말하는 사람은 대안가족을 말하는데 과거에는 씨족단위의 대가족이었
는데 자연과 관계에서 많은 일손이 필요했습니다. 필연적으로 같이 살 수밖에
없었지요. 도구가 발달하면서 생산능력의 증대로 협력보다는 개인 중심의 노
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핵가족이 발생했는데 개인주의나 실용주의가 결합되면
서 과거 마을이 가지고 있었던 공동체성이 파괴되었다는 거에요. 같은 지역에
모여 살때는 그 나름의 문화가 생겨납니다. 붙박이기 때문에 그 지역에 책임
감을 가지게 되고 윤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떠돌이이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책임이 없어요. 요즘은 지역에 대한 연고가 없고 지역 내에서 커
뮤니티가 없어 졌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간성뿐 만아니라 공동체
를 회복하면서 만드는 새로운 가족형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아이들은 집단으로 기르는 등 많은 실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육아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것입니다.
고도의 결합을 원하는 계획공동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야마기시나
남원의 동광원, 푸른누리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헌신성과 집중성으로 내부에
서 뼈를 묻는다는 생각과 서로간의 끈끈한 형제애로 자기를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드러내며 사는거죠. 실제로 내부적으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공동
체가 잘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결속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들은 원인보다는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머레이 북친에 의하면 인간과 인간이 소외되는 지금의 경제를 '차가운 경
제'라고 하는데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익명성, 즉 소비하는 사람과 생산하는
사람이 서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이 잘 팔리기만 하
면 그만입니다. 물건에 정이 없는 거에요. 협동조합운동이 왜 대안운동이냐 하
면 차가운 경제에서 따뜻한 경제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산자와 소비
자가 서로 알고 일도 도와줍니다. 또한 서로 얼굴을 알기 때문에 정이 들어
있는 상품이 되는 겁니다. 생협운동같은 경우는 생산자가 생산물을 만들때에
도 먹을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에 또한 누가 생산하는지는 알기 때문에 대면해
서 상품을 교환하기 때문에 농약이라든가 착색제를 쓰지 않는 거에요.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따뜻한 경제로 가야합니다. 앞으로 운동은 완
전파괴가 아니라 체제의 잘못된 틈을 벌려나가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생협운
동이 바로 자본주의와 정면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자본주의 안에 있으면서 자
본주의 안에 있지 않은 운동, 즉 자본주의 틈을 벌리는 운동입니다. 틈이 점차
벌어져 결국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에요. 바닷물을 변화시키는 것이 3퍼센트
의 소금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
니다. 농민, 노동자, 시민단체들이 저항운동을 벌여나가면서 동시에 이런 단체
들이 공동체적인 생산체를 만드는 거에요. 소비자들은 소비자 공동체를 만들
어 생산과 소비 공동체를 연결시켜나가고, 농민들은 생산하면서 유기농운동을
하면서 생명운동을 벌여나가고, 도시는 시민운동을 벌여나가는 겁니다. 지역내
의 지역운동이 부실하기 때문에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말이 많이 얘기되고
있잖아요. 지역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조그만한 모임들이 있을 때 시민운동
이 풍요로와질 뿐 만아니라 지역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
거의 사고에서처럼 공동체운동은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운동방식에 대한 전격적인 변화를 한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공동체 운동을 바라본다면 중요한 의미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운동은 모두 의미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
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감싸주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질서가 없어서 많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공동체들이 세계변화를
어떻게 대체할 것이냐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세월에 세계를 변화시킬 것
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너의 사고부터 점검해봐라고 대답합니다. 국가
단위의 운동이나 지역운동이나 하나의 단위밖에 되지 않느냐하는 거에요. 두
번째는 운동의 사고가 구조적이라는 거에요. 궁극적으로 변화는 자기변화와
사회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는 자기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변화보다 자기 밖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런 변혁은
어렵다구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카오스이
론이나 나비효과처럼 구조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즉 중심을 이동
시키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나비효과처럼 북경에서 날개짓하면 뉴욕에서 태
풍이 분다고 하는 것처럼 작은 단위의 변화가 근본적이고 실질적이라고 생각
하는 거에요. 또 하나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는 점에 불과하지만 이 점들이 모
여 선으로, 선이 면으로 나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더딘 것 같지
만 훨씬 근본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과거 공동체 중에 성공한 곳이 어디있냐고 질문하는데 앞으로 공
동체운동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보다 과정을 소중히 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목
적을 달성하는 과정이 행복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정중에서 죽어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운동은 굉장히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사고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내부적으로 질서가 있습니다. 물론 공동체가 어떤 것이냐 하는
규정의 문제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있었어요. 의도된 공동체로부터 다양한 스
펙트럼이 있습니다. 많은 공동체들은 산업사회에서의 비인간성을 부정하는 공
통점이 있어요. 무엇을 거부한다는데 공통점과 더불어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
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공동체
는 내부질서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코하우징(co-housing)이라는
공동주거운동이 있는데 큰 부지를 사서 일종의 주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데
개인 공간은 작게, 공적 공간은 크게하는 것입니다. 70년대에 많이 생겨났죠.
그 다음에 도시 공동체가 있는데 집을 구입해서 같이 사는 겁니다. 또 공동체
운동을 말하는 사람은 대안가족을 말하는데 과거에는 씨족단위의 대가족이었
는데 자연과 관계에서 많은 일손이 필요했습니다. 필연적으로 같이 살 수밖에
없었지요. 도구가 발달하면서 생산능력의 증대로 협력보다는 개인 중심의 노
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핵가족이 발생했는데 개인주의나 실용주의가 결합되면
서 과거 마을이 가지고 있었던 공동체성이 파괴되었다는 거에요. 같은 지역에
모여 살때는 그 나름의 문화가 생겨납니다. 붙박이기 때문에 그 지역에 책임
감을 가지게 되고 윤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떠돌이이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책임이 없어요. 요즘은 지역에 대한 연고가 없고 지역 내에서 커
뮤니티가 없어 졌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간성뿐 만아니라 공동체
를 회복하면서 만드는 새로운 가족형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아이들은 집단으로 기르는 등 많은 실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육아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것입니다.
고도의 결합을 원하는 계획공동체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야마기시나
남원의 동광원, 푸른누리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헌신성과 집중성으로 내부에
서 뼈를 묻는다는 생각과 서로간의 끈끈한 형제애로 자기를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드러내며 사는거죠. 실제로 내부적으로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공동
체가 잘되는 것은 이런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결속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들은 원인보다는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머레이 북친에 의하면 인간과 인간이 소외되는 지금의 경제를 '차가운 경
제'라고 하는데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의 익명성, 즉 소비하는 사람과 생산하는
사람이 서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이 잘 팔리기만 하
면 그만입니다. 물건에 정이 없는 거에요. 협동조합운동이 왜 대안운동이냐 하
면 차가운 경제에서 따뜻한 경제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산자와 소비
자가 서로 알고 일도 도와줍니다. 또한 서로 얼굴을 알기 때문에 정이 들어
있는 상품이 되는 겁니다. 생협운동같은 경우는 생산자가 생산물을 만들때에
도 먹을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에 또한 누가 생산하는지는 알기 때문에 대면해
서 상품을 교환하기 때문에 농약이라든가 착색제를 쓰지 않는 거에요.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따뜻한 경제로 가야합니다. 앞으로 운동은 완
전파괴가 아니라 체제의 잘못된 틈을 벌려나가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생협운
동이 바로 자본주의와 정면적으로 대립하지 않고 자본주의 안에 있으면서 자
본주의 안에 있지 않은 운동, 즉 자본주의 틈을 벌리는 운동입니다. 틈이 점차
벌어져 결국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에요. 바닷물을 변화시키는 것이 3퍼센트
의 소금만 있으면 되는 것처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
니다. 농민, 노동자, 시민단체들이 저항운동을 벌여나가면서 동시에 이런 단체
들이 공동체적인 생산체를 만드는 거에요. 소비자들은 소비자 공동체를 만들
어 생산과 소비 공동체를 연결시켜나가고, 농민들은 생산하면서 유기농운동을
하면서 생명운동을 벌여나가고, 도시는 시민운동을 벌여나가는 겁니다. 지역내
의 지역운동이 부실하기 때문에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말이 많이 얘기되고
있잖아요. 지역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조그만한 모임들이 있을 때 시민운동
이 풍요로와질 뿐 만아니라 지역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
거의 사고에서처럼 공동체운동은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운동방식에 대한 전격적인 변화를 한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공동체 운동을 바라본다면 중요한 의미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운동은 모두 의미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
고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감싸주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