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목차없음..

본문내용

었다. 그리고 괴테 가의 상당히 복잡하고 손님도 많은 집안살림을 적절히 처리해냈으며,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항상 겸손하게 들어앉아서 아는 척하지 않는 매우 이상적인 주부였다.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이마르 국도 프랑스군에게 침공 당하게 되었는데, 술 취한 군인들이 한때 약탈을 자행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괴테의 침실에까지 침입한 프랑스의 난폭한 군인들이 그를 해치려 하였다. 그때 크리스티아네가 용감하고도 기지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던들 괴테의 생명은 위험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그때 이후의 즉 괴테 만년의 가장 중요한 활약은―《파우스트》를 포함해서―그녀의 덕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괴테도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억제치 못했으며 특히 그녀가 근 20년이나 첩이라느니 식모라느니 하는 뒷공론을 들어가면서도 한결같이 봉사해준 은덕을 생각하여, 마침내 서둘러 정식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천화력》과 소녀 민나
괴테가 저작을 위하여 잠시 바이마르를 떠나 예나에 체류한 일이 있었는데(1807년), 거기서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서점 주인 프롬만의 집에 자주 출입하였다. 그런데 그는 그 집에 양녀로 있는 민나에게 갑작스러운 연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은 그녀가 열 살 정도였을 때부터 괴테는 잘 알고 있었던 터인데, 이제 몰라보도록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그녀의 모습을 대하자 그는 새삼스러이 걷잡을 수 없는 뜨거운 피가 마구 솟아오름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도 위험감을 가지게 된 괴테는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했으며, 그후 용무도 생기고 해서 그녀로부터 도주(제7의 도주)하기 위하여 그곳을 아주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사랑의 체험은 그후 집필된《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속에서 영원히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그리하여 그 작품 속에 그려진 내용은 격렬한 정열이긴 하지만 그것을 그리는 작가의 필치는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서 가히 체념의 경지에 도달한 노시인의 높은 심경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괴테 만년의 업적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나로서《서동시집》이 있다. 괴테의 깊은 인간통찰과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은 멀리 동양에까지 미쳤으며 특히 14세기의 페르샤 시인 하피스에 대해서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을 가졌다. 그래서 괴테는 그 무렵의 자신의 뜻깊은 시집을 《서동시집》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즉 서방시인에 의한 동양적인 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시집 속에서 한 가닥 광채를 발하는 것은 역시 괴테의 새로운 여성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그 시집 속의 백미인 <술레이카의 편>은 아름다운 마리안네에 대한 그의 정열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안네는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 빌레머 씨의 양녀로서 나중에 그의 후처가 된 여성인데, 괴테는 1814년 그 집을 방문하여 마침 꽃피는 나이에 있었던 그녀에게 몹시 이끌렸었다. 그 눈치를 챈 빌레모 씨는 재빨리 그녀를 자기의 정식 부인으로 피로하였다. 다음해 가을 괴테는 또 다시 그 집을 방문하여 그녀와도 친숙하게 지냈는데 그때는 그 남편도 그들의 친교를 방해하지 않는 아량을 보였다. 그런데 거기서 놀라운 일이 발견되었다. 즉 그녀가 뛰어난 서정시인이라는 점이었다. 괴테가 그녀에게 보내는 사랑의 시에 답하여 그녀가 쓴 시는 괴테를 놀라게 하는 솜씨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가 그대로 <술레이카의 편>으로서 전기한 《서동시집》속에 수록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물론 시인으로서 위대한 괴테의 힘이 <정신감응>이 되어 그녀에게 작용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하여간에 그녀가 놀라운 시재의 소유자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 사이는 더욱 친숙해지고 정열의 불이 붙었던 것인데, 그때 이미 나이가 65세였던 괴테는 내심의 고통스러운 투쟁 끝에 그녀를 단념하고, 어느 보름날 밤에 그녀와 작별하면서 '이제부터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서로의 생각을 하기로 하자'는 약속을 하고 그녀로부터 도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제8의 도주).
그러나 《서동시집》은 <술레이카의 편>과 같은 사랑과 정열 이외에도 괴테의 인생관과 이상을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해주는 의미심장한 작품들로 가득찬 시집인 것이다.
노시인의 회춘
괴테는 아내 크리스티아네와 사별(1816년) 후 몇해가 지나서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경험할 기회를 가졌으니 그 상대방의 여성은 바로 마리엔바트의 온천지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던 19세의 소녀 올리이케였다. 1823년 여름, 괴테는 마침 나이 74세가 되던 생일날(8월 28일) 그 젊은 소녀를 껴안고 무용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때 그의 정열은 어느 젊은이 못지 않는 열렬한 것이었으며, 그 점은 그 당시의 연시, <마리엔바트의 비가>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또한 얼마나 진지한 사랑을 하였는가는 그녀에 대한 구혼 중매를 서 달라고 바이마르 국의 대공에게까지 정식으로 부탁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그 구혼은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서 괴테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완곡한 방법으로 거절되었지만 그 결과로 전기한 <마리엔바트의 비가>, 즉 노시인의 영원한 젊은 정열의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괴테는 긴 일생동안 그 풍부한 결실에 못지 않게 여러 여성들과의 사랑을 경험하였는데, 괴테의 사랑은 결코 고답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진지하고 헌신적인 사랑이었으며, 그 하나하나의 여성에게 적어도 그 순간만은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겸허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러하였기 때문에 그는 여성들에 의하여 항상 높은 단계의 정신적 발전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괴테의 만년의 가장 큰 업적으로서는 역시 《빌헬름 마이스터》와 《파우스트》의 완성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두 작품은 그가 젊은 청년시대에 구상하여 쓰기 시작했으나 여러 번 중단되었다가 고령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는 괴테의 일생의 전체험과 예지, 그리고 각단계의 여러 가지 감정감각이 내포되어 있을뿐더러 정치적 사회적 이념들로부터 인류문화와 예술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키워드

  • 가격1,7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2.06.15
  • 저작시기2002.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9612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