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저자는 소로스를 악마도 천사도 아닌 이중성을 지닌, 철학을 지닌 투자가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소로스는 냉혈한이기도 하지만 많은 액수의 돈을 매년 자선 사업에 쓰고 있는 자선 사업가이고, 보스니아 내전과 천안문 사태 등 인권 문제에 관련된 국제적인 구호 사업에 직접 참여하여 봉사하는 행동하는 인권운동가이며, 칼 포퍼의 철학을 대변하고 계승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세계 42위의 거부이면서도 사람을 의심하고 거리를 두는 소로스의 성격, 고민하고 사색하는 철학자의 성향, 엄청난 부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내면적인 문제들, 그리고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유태인이고 나치의 대학살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태생을 부정했던 과거의 부끄러움,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소외감, 미국 이민 등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소로스의 개인적인 문제까지 들춰내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단지 좋지 않은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소로스의 전혀 상반되는 얼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소르스라는 사람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소로스가 아무리 인도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이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에 있어서 소로스의 긍정적인 모습도 부정적인 모습을 덮기 위한 몇 가지의 방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 최종옥(북코스모스 대표) ( 2002-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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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인 카우프만은 소로스와의 대담, 주변 인사들과의 인터뷰, 소로스의 미발표 원고 등을 종합해 <소로스-그는 선인인가? 악인인가?>를 썼다. 그러므로 카우프만과 소로스가 책의 공동 저자로 올랐지만,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소로스의 육성을 토대로 카우프만이 써내려간 평전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1·2부는 성장과 부의 축적 과정을, 마지막 3부는 동구권 반체제 운동 지원과 자선사업 등을 펼치며 스스로를 ‘국적 없는 정치가’라고 부르는 소로스의 면면들을 그린다. “혁명적인 부호”로서 소로스를 마하트마 간디, 앙드레 말로, 체 게바라 등과 동격으로 끼워넣는 카우프만의 시각을 제쳐놓는다면, 선출되지 않은 금권이 세계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들여다볼 기회가 된다. 원제는 (메시아같은 억만장자의 생애와 시대)이다. - 정세라 기자 ( 2002-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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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양자역학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퀀텀(Quantum)은 양자(量子)란 뜻.소로스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퀀텀을 측정하기 힘든 것이란 의미로 차용했다.
실제로 소로스의 축재는 타고난 직관력에 의해 가능했다. 소로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학을 싫어했으며 런던경제대학(LSE)은 삼수 끝에 간신히 붙었고 증권분석가 자격증 시험은 수차례 낙방한 뒤 아예 포기해버렸다. 젊은 소로스는 "숫자를 보면 느낌이 온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마이클 카우프만이 쓴 <소로스>는 소로스를 단순한 투기꾼으로 보지 않고 철학을 가진 금융자본가로 파악한 일종의 전기다. 소로스 인터뷰와 각종 자료를 토대로 쓰여진 이 책은 소로스를 '자본주의 악마'로 보는 시각에 정면 반대한다. 소로스는 칼 포퍼를 스승으로 열린 사회를 추구했던 의식 있는 '금융인'이었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자유주의 수호자로서 폴란드 자유노조,모스크바 반체제집단에 자금을 댔다. 보스니아 분쟁 땐 사라예보 여인들이 물을 길어가다 저격되는 것이 안타까워 수도 복구를 위해 5천만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정승같이' 돈을 쓴 덕에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주장이다.
1930년 유태계 헝가리인으로 태어난 소로스는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나치의 박해로 이름을 바꾸고 기독교인 행세를 하며 학살을 피했다. 종전 후 런던에 유학한 소로스는 접시닦이, 마네킹공장 직원, 철도역 짐꾼 등을 하며 학비를 조달했다. 당시 다리가 부러져 산업재해연금을 받았는데 한 학기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고 소로스는 회상한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헝가리 '촌놈'은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 뒤 증권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부터 소로스의 비상한 재주가 불을 뿜게 되었다. 1956년 뉴욕의 월가로 진출한 소로스는 5년내 50만달러를 벌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해외 증시를 맡은 소로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런던증시 개장시간에 거래 주문을 넣고 다시 잠을 잤다. 밤잠을 설쳐가며 일한 덕에 그는 5개년 계획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었다.
소로스의 돈 굴리기는 '선투자 후조사' 원칙을 지킨다. 10분전에 결정한 것도 뒤엎기 때문에 소로스(Soros)는 헝가리어로 '변덕'을 뜻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소로스는 어린 아들과 게임을 할 때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이처럼 지독하게 한 덕분에 1969년 10만달러였던 자산이 1997년 3억5천3백만달러로 불어났다.
이 책은 세계 최고 갑부 중의 하나인 소로스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박애주의적 자선사업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편향적인 서술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 윤승아 기자 ( 2002-05-25 )
한국일보 : '희대의 환투기꾼'. '세계적인 자선사업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조지 소로스의 삶을 파헤친다. 소로스의 가족, 친구를 통해 그의 일생을 상세히 그린다. 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난 소로스는 2차 대전중 나치의 학살을 피해 신분을 숨기기도 했다.
영국 런던경제대학에서 공부하고 미국 월스트리트에 진출, 성공한 펀드 매니저로 부상한 뒤 금융계의 거물이 되는 과정과 거부가 된 50대 초반부터 자선활동에 뛰어든 이야기도 소개된다. 소로스를 대체로 좋게 평가했다. ( 2002-05-25 )
이 밖에도 저자는 세계 42위의 거부이면서도 사람을 의심하고 거리를 두는 소로스의 성격, 고민하고 사색하는 철학자의 성향, 엄청난 부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내면적인 문제들, 그리고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유태인이고 나치의 대학살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태생을 부정했던 과거의 부끄러움,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소외감, 미국 이민 등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소로스의 개인적인 문제까지 들춰내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단지 좋지 않은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소로스의 전혀 상반되는 얼굴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소르스라는 사람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소로스가 아무리 인도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이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에 있어서 소로스의 긍정적인 모습도 부정적인 모습을 덮기 위한 몇 가지의 방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 최종옥(북코스모스 대표) ( 2002-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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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인 카우프만은 소로스와의 대담, 주변 인사들과의 인터뷰, 소로스의 미발표 원고 등을 종합해 <소로스-그는 선인인가? 악인인가?>를 썼다. 그러므로 카우프만과 소로스가 책의 공동 저자로 올랐지만,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소로스의 육성을 토대로 카우프만이 써내려간 평전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1·2부는 성장과 부의 축적 과정을, 마지막 3부는 동구권 반체제 운동 지원과 자선사업 등을 펼치며 스스로를 ‘국적 없는 정치가’라고 부르는 소로스의 면면들을 그린다. “혁명적인 부호”로서 소로스를 마하트마 간디, 앙드레 말로, 체 게바라 등과 동격으로 끼워넣는 카우프만의 시각을 제쳐놓는다면, 선출되지 않은 금권이 세계 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들여다볼 기회가 된다. 원제는 (메시아같은 억만장자의 생애와 시대)이다. - 정세라 기자 ( 2002-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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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양자역학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퀀텀(Quantum)은 양자(量子)란 뜻.소로스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퀀텀을 측정하기 힘든 것이란 의미로 차용했다.
실제로 소로스의 축재는 타고난 직관력에 의해 가능했다. 소로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학을 싫어했으며 런던경제대학(LSE)은 삼수 끝에 간신히 붙었고 증권분석가 자격증 시험은 수차례 낙방한 뒤 아예 포기해버렸다. 젊은 소로스는 "숫자를 보면 느낌이 온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마이클 카우프만이 쓴 <소로스>는 소로스를 단순한 투기꾼으로 보지 않고 철학을 가진 금융자본가로 파악한 일종의 전기다. 소로스 인터뷰와 각종 자료를 토대로 쓰여진 이 책은 소로스를 '자본주의 악마'로 보는 시각에 정면 반대한다. 소로스는 칼 포퍼를 스승으로 열린 사회를 추구했던 의식 있는 '금융인'이었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자유주의 수호자로서 폴란드 자유노조,모스크바 반체제집단에 자금을 댔다. 보스니아 분쟁 땐 사라예보 여인들이 물을 길어가다 저격되는 것이 안타까워 수도 복구를 위해 5천만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정승같이' 돈을 쓴 덕에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주장이다.
1930년 유태계 헝가리인으로 태어난 소로스는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나치의 박해로 이름을 바꾸고 기독교인 행세를 하며 학살을 피했다. 종전 후 런던에 유학한 소로스는 접시닦이, 마네킹공장 직원, 철도역 짐꾼 등을 하며 학비를 조달했다. 당시 다리가 부러져 산업재해연금을 받았는데 한 학기동안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고 소로스는 회상한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헝가리 '촌놈'은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 뒤 증권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부터 소로스의 비상한 재주가 불을 뿜게 되었다. 1956년 뉴욕의 월가로 진출한 소로스는 5년내 50만달러를 벌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해외 증시를 맡은 소로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런던증시 개장시간에 거래 주문을 넣고 다시 잠을 잤다. 밤잠을 설쳐가며 일한 덕에 그는 5개년 계획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었다.
소로스의 돈 굴리기는 '선투자 후조사' 원칙을 지킨다. 10분전에 결정한 것도 뒤엎기 때문에 소로스(Soros)는 헝가리어로 '변덕'을 뜻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소로스는 어린 아들과 게임을 할 때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이처럼 지독하게 한 덕분에 1969년 10만달러였던 자산이 1997년 3억5천3백만달러로 불어났다.
이 책은 세계 최고 갑부 중의 하나인 소로스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박애주의적 자선사업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편향적인 서술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 윤승아 기자 ( 2002-05-25 )
한국일보 : '희대의 환투기꾼'. '세계적인 자선사업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조지 소로스의 삶을 파헤친다. 소로스의 가족, 친구를 통해 그의 일생을 상세히 그린다. 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난 소로스는 2차 대전중 나치의 학살을 피해 신분을 숨기기도 했다.
영국 런던경제대학에서 공부하고 미국 월스트리트에 진출, 성공한 펀드 매니저로 부상한 뒤 금융계의 거물이 되는 과정과 거부가 된 50대 초반부터 자선활동에 뛰어든 이야기도 소개된다. 소로스를 대체로 좋게 평가했다. ( 2002-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