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에서 국민, 민족주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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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윌슨은 제국이 국가의 효율성과 지배계급의 통치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잣대였고, 그것을 통해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1650년에서 1750년 사이의 기간에 대외교역이 세 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과 식민지들로부터 들어온 각종 상품들을 생각해 볼 때,
25) 주11)을 보라.
제국이 이 시기의 중간 부류에게 꽤 가까운 존재였으리라고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잉글랜드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대외교역에서 얼마나 흑자를 거두어들이는가에 달려있었고, 교역에서 흑자를 얻기 위해서 중요한 거점마다 영국의 영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식민지와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강력한 해군이 필요했다.
중상주의의 변종으로 볼 수도 있는 이러한 제국주의관은 잉글랜드의 중간 부류에게는 사실 경제적 이익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제국을 통해 잉글랜드 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의 제국과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전제적인 절대주의 국가의 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 생각했다. 그 차이의 핵심은 스페인과 프랑스는 식민지에 대해서 지배권(imperium)을 행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에 잉글랜드는 식민지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들을 문명화하는 보호(patrocinicum)를 목표로 했다는 것인데, 그런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은 잉글랜드 인들이 전통적으로 누리는 자유와 그것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헌정질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민지는 잉글랜드의 지배를 통해 자유와 문명화의 혜택을 받고, 또한 잉글랜드 인들은 식민지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이루는 남성다움, 독립, 덕성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26) 이러한 제국관에 대해서는 윌슨의 연구 외에도 Anthony Pagden, Lords of All the World: Ideologies of Empire in Spain, Britain and France, c.1500-c.1800 (New Haven: Yale Univ. Pr., 1995), chap. 5; Jack Greene, "Empire and British Identity," in Oxford History of the British Empire, ed. Marshall, pp. 208-36를 보라. 이들의 연구는 잉글랜드의 정치질서가 제국에 미친 영향에 비해서 제국이 잉글랜드 인의 정치의식에 미친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이의 주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시기의 영국인들에게 제국은 그들의 정치제도를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전제적인 식민지 지배로부터 식민지인들을 해방시키는 데 주저하던 18세기 중반의 귀족들은 영국인의 정체성과는 상반되는 여성스러움, 외국으로부터의 영향, 그리고 부패에 물들어 버린 타락한 귀족이었고, 따라서 더 이상 인민들에게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18세기 중반의 상업, 제국주의에 대한 헌신적인 이데올로기가 곧 귀족 중심의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과 중간계급이 대변하고 있는 인민의 정치권리에 대한 요구, 즉 18세기 후반의 급진주의의 주장과 직접적으로 결부될 수 있었던 것이다.(특히 201-205면)
하지만 윌슨은 이러한 중간 부류의 애국주의와 정체성에 대한 주장이 곧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중간부류의 주장이 하층민들에게도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지배적인 담론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연구에서 주목할 것은 중간부류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주장은 사실상 합리적이고 사리판단을 할만한 교양을 가진 백인 잉글랜드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배타적인 범주였다는 지적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 식민지인들은 그들이 여성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종속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잉글랜드 문화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범위에서만 잉글랜드 인의 일부로 수용되는 배제의 과정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174, 234-236면)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국민 정체성이라는 것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징을 통해서 '창조'되는 것이고, 베네딕트 앤더슨과 콜리가 주장했던 것처럼, 타자를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면 그 타자는 외국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체성의 형성과정에는 여러 집단 사이의 갈등, 특히 권력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내재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뉴먼의 연구와 그리고 윌슨의 연구는 이점을 보여주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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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살펴본 콜리, 뉴먼, 윌슨의 연구는 국민, 민족주의, 그리고 제국의 문제를 18세기 영국사의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했고, 앞으로 이 문제들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이들 모두 영국인 혹은 잉글랜드 인의 정체성에 관한 지배적인 담론이 18세기 중반에 형성되고, 그것이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는 점을 밝히려 애썼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의 연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앞으로의 연구는 단일한 영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영국을 구성하는 여러 공간과 그 각각의 사회관계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국가, 제국, 그리고 국민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것이 잉글랜드의 역사는 물론이고 반대로 각 지역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27)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최근의 연구성과들을 검토하는 글로 David Armitage, "Greater Britain: A Useful Category of Historical Analysis?" American Historical Review (1999): 427-45를 보라. 아미티지는 영국에서 나타나는 제국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변화를 추적하는 본격적인 연구를 출간할 예정이다. The Ideological Origins of the British Empire (forthcoming,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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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06페이지
  • 등록일2002.07.05
  • 저작시기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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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197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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