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매체와 이미지적 사유

목차

1. 자유로운, 총체적 허구

2. 결여 혹은 부재로서의 영상성

3. 허구적인, 혹은 너무나 현실적인

4. 언어적 사유에서 이미지적 사유로?

본문내용

리의 사유에 가져올 변화는 혹시 새로운 사유방식으로의 전환이 아닌 '사유의 정지' 또는 '사유의 포기'가 아닐까? 파졸리니의 얘기처럼 이미지란 본래 거칠고 동물적이고 문법 이전의 원시적 표현수단이라면, 영상매체의 끝없는 발전과 함께 우리의 사유단계는 다시 사유 이전의 시대로, 그러니까 언어 기호라는 수단 없이도 여러 이미지 기호들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던 저 먼 원시 시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1) 영화(映畵)가 최초의 영상매체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는 순전히 '영상(映像)'이란 단어에 대한 우리의 무분별한 남용에서부터 비롯된다. 영상이란 기본적으로 '빛의 반사나 투사로 인해 비추어진 물체의 상(像)'을 말하는 것이나, 우리는 그 동안 영상이라는 개념을 곧잘 '이미지(image)'와 동의어로 간주하며 그 안에 모든 종류의 이미지들을 포함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후자를 따를 경우 사진 뿐 아니라 회화 역시 영상예술에 속하게 되며, 전자의 경우로 개념을 제한하면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e, 1893)'라는 도구를 사용했던 영화 혹은 그보다 좀 이른 시기에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 1887)'라는 만화영사기를 사용했던 만화영화 정도부터가 영상매체의 시작일 것이다. 때문에, 영화 혹은 만화영화의 발명과 함께 탄생된 개념인 영상은 사실상 '빛의 투사로 이루어진 물체의 이미지'라는 의미뿐 아니라 '움직이는 빛의 이미지'로서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2) 물론 여기서, 보르헤스(Borges)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탐구해온 '허구 세계의 독자성' 문제를 전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또 다른 차원에서 심도 있게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유보하기로 한다.
3) 물론,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 영화'나 '팬 픽션(fan fiction)'에 대해 고려해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인터랙티브 영화는 막대한 제작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드라마들만이 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현재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반면, 팬 픽션의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 비교적 활발한 반응을 얻고 있으나 관객(혹은 독자)의 참여가 어디까지나 문자 텍스트, 즉 시나리오에 대한 개작에 국한되고 있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4) 이 때문에, 고다르 자신도 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자신의 탐구영역을 영화보다는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로 바꾸어간다.
5) 영화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가 예상한 미래의 '사이버 인간'은 지금 우리가 인터넷상에서 보는 사이버 인간들과 달리 실제적인 육체적 접촉이 가능한 존재들이다. '사이버 섹스'의 원리가 그렇듯, 결국 영화의 시각 효과조차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관객의 촉각 내지는 육체적 감각을 자극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
6) 최근 우리가 쉽게 빠지는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정보화 시대가 되면 모두가 '정보화'되고 인터넷 및 컴퓨터 조작에 통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가 되어갈수록, 광활한 인터넷 세계와 복잡한 컴퓨터 기능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이들의 수는 더욱 한정될 것이다. 대부분은 그 시대의 기술발전단계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원리들과 편리사항들만을 익히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보다 우월한 통제능력으로 다량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과거에는 '힘'에 의해 나뉘고 근대 이후로는 '자본' 의해 나뉘던 계급이, 언젠가 '정보'에 의해 나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키워드

총체적 허구,   이미지적,   언어적 사유,   영상성,   변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