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의 음악이 끼친 영향
본 자료는 8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해당 자료는 8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8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1]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2]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3]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4]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5]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6]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7]

제목 : 20세기의 바하상[8]

제목 : 바하음악의 진가는 무엇인가?

본문내용

인간이었다. 그는 자기의 모든 작품을 모든 펴
현과 모든 음악적 굴절을 충일하게 하며 그것을 탐미하는 사람이었다. 바하의
푸가는 형식으로서 최고의 형체를 갖는 법칙적인 음악적 경과의 원형이다.
그러나 그는 그저 강력한 형식으로서 압축된 푸가의 창조자일뿐 아니라, 동시
에 공상적인 무변분방한 프렐류드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가령 평균율 피아노
곡집이나 무수한 오르간 작품들 속에 전개되고 있는 저 프렐류드와 푸가의 융
합은 오직 그에게서나 볼 수 있는 독탁한 세계를 나타낸다. 이 둘이 잘 통합
됨으로써, 비로소 바하의 감각의 전체량을 포괄하기에 알맞은 것이 형성된다
.
그의 칸타타에 있어서, 그의 수난곡에 있어서, 그의 콘체르토의 아다지오에
있어서, 또 그의 무수한 작품 속에서 바하는 지상의 음악으로서 발상할 수 있
는 인간 중에서 가장 위대한 주관주의자임을 보여준다. 바하는 신의 아들 예
수의 고난을, 구세주의 희유의 역사를 그토록 깊게 그 자신의 혼에 사무쳐 체
험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저 마지막 작품 수난곡에서그토록 위대한
작품을 완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수난곡은 그 첫소리에서 마지막 소리
까지 꿰뚫고 흐르는 정상이 암시적이면서도 웅장한 통체를 이루고 있다. 그
점에서 오로지 낭만시대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게나 비교할 수 있으리라. 바그너의 경우 바하 자신으, 경우에서도 그렇지만
작품의 감정이 이토록 강하게 전 작품위에 깊은 음영을 던지고 있는 것은 달
리 구경할 수가 없다. 작곡자의 안간과 그 혼에 이토록 깊이 의존한 작품은
달리 찾아 볼 수 없다.
가차없는 객관성의 지배
어쨌든 이 두 작품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나, 작곡자는 아무리 서로 다르기느
할 망정 객관성의 배후에서 주관성이 그 궤도를 무너뜨리고 있는 점에서느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그것은 이 작품에서만 그런것이 아니다. 자세히 조사해
보면 많건 적건, 바하의 모든 작품에서 그런 것이다. 모든 선율적인, 화성적
인 곡절이나모든 소절에 이르기까지 그저 가차없는 객관성만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만큼 웅대한 최고의 인간적 개성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들 중의 하나는 다른 것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핫
기 시작했다. 이 대립이야말로 그 자신 속에 바하라는 현상을 구현하는 것이
다. 흔히 베토벤은 엉뚱하리만치 주관적으로 보여지고, 바하는 그 정반대로
극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바하가 베토벤보
다 더 객관적일 까닭도 없고, 베토벤이 바하보다 주관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방법에 임하는 그들의 수법과 양식이 서로 다를 뿐이다. 아닌게 아니라
베토벤은 개성적인 인간으로서 발상하리라. 그러나 그는 이 발상과 주제를
객관적으로 추궁한다. 가차없는 정확성과 엄격성을 가지고 각각 그 고유의 운
명을 지향하게 하면서. 베토벤의 경우 일단 그 주제가 제시되고 나면 그 자신
은 말하자면 자기 작품의 경과에 대해서 아무 권리도 갖지 못하며 또 가지려
고도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낭만파를 구제한 해방자
바하에 있어서는 음악적인 노력은 실로 정미, 그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제
는 독립된 생명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따로 떼어서 전개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 작품과 작곡자 사이의 탯줄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음악은 그 창조자에게
바싹 붙어있다. 그러므로 그의 경우는 베토벤이 음악의 생명으로 삼고 있는
주제와 주제의 대립, 창조족인 대위라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모든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창조의 의
지와, 거대한 주관성이라는 양극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생각된다
.
이것이야말로 낭만파가 바하에 공갑하고 바하에 매료된 원인이다. 멘델스존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그 자신의 작곡이나 그 자신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속에
서 바하의 감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멘델스존에 의한 바하 재발견 이
후 낭만파는 바하의 음악에서 이상적 전형을 발견했다. 극단적으로 개인적인
이유에서였지만, 낭만파는 바하에게서 자기들을 구제해주는 해방자를 보았다
. 너무나 자극 과잉이라는 자기들의 병적인 경향에서 구제해주는 자를 발견한
것이다.
유럽 하늘을 밝히는 빛
바하는 낭만파 사람들과 아무리 다르다고 하지만 만일 그가 같은 살을 살로
가지며 같은 피를 피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만일 그가 마음 속에 서로 통
하는 것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커다란 영향을 그들 낭만파에 줄
수가 없었으리라. 어느 입장에서 보면 바하는 낭만파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낭만파였다. 바하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낭만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후 시대가 자남에 따라서 그 모습은 확대강화는 했으
나 달라진 것은 없다. 단 한가지 빠뜨릴 수가 없는 일이 있다. 바하는 종교음
악가로서 가장 위대했으며 오늘날도 그렇다는 사실이다. 바하의 음악과 그듸
마음 안에 있었던 종교적인 핵심의 결합은 너무나 밀접하고 강열하다. 이것
은 그의 주제의 전개, 그밖의 음악형성에서 한계를 이루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지상적인 풍부한 현실을 음악 속에 담아 넣는 방해도 되고 있다. 가령 그와
동시대의 동료였던 헨델이나, 그보다 뒤의 작곡가에 비해서.
내심에서 지고자와 밀접한 결합을 갖는 것은 만일 다른 인간이었다면 도리어
정력의 고달픔, 맥빠짐, 경솔한 자기 소모같은 것에 빠져버렸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바하의 경우는 그것이 도리어 신선하고 높여진 끊임없는 힘의 원천
이 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의 바하를 어느 누구도 능가못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 음악에 있어서의 호메로스로 보게 하는 이유이다. 그의 빛은
지금 우리 유럽의 음악의 하늘에 빛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우리는 아무도
그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자료는 정보유통 활성화를 위해 [레포트 천국]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정보·아이디어·지식" 복합 포탈의 리더 "다자바컴"(www.dajaba.com)

키워드

  • 가격3,3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02.09.22
  • 저작시기2002.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3845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