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기
Ⅱ. 사후 피임약이란
Ⅲ. 사후 피임약에 대한 사회의 찬·반 논쟁
Ⅳ. 사후 피임약에 대한 나의 생각
Ⅱ. 사후 피임약이란
Ⅲ. 사후 피임약에 대한 사회의 찬·반 논쟁
Ⅳ. 사후 피임약에 대한 나의 생각
본문내용
우는10대 임신경험자 중 8%에 지나지 않고 다수가 합법 또는 불법의 낙태를 선택하였다는 표본조사결과도 있으며, 매년 낙태시술이 100만 건 이상 이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이러한 낙태시술은 많은 여성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가져온다. 특히 무자격자에 의한 시술이나 잘못 유통되는 약물 복용 그리고 주위의 시선 때문에 낙태 후 충분한 요양을 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경우는 그 피해가 더욱 심해 향후 생명잉태의 기회마저 앗아가기 쉽다.
물론 성적 윤리가 결여되어 가는 우리 사회가 이 약을 큰 충격과 혼란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단계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의에 의한 제한적 투약을 통해 약의 무분별한 오ㆍ남용을 막으며, 의사 약사 사회학자 등 전문가 집단의 진지한 토론을 통해 부정적 영향에 대한 차분하고 신중한 대처방안이 마련되어야할 것이다.
Ⅳ. 사후 피임약에 대한 나의 생각
한강의 수면에 떠다니는 오물들을 수거하는 미화원들 사이에는 묶여져 있는 검은 봉지는 열어 보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고 한다. 많은 경우 봉지 속에서 잘못 성관계를 통해 출산된 아기들의 주검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성숙한 가치관이 아직 제대로 정립되어져 있지 않은 청소년들에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이 낳은 아이의 생명의 소중함을 볼 수 없도록 한다. 그러기에 아직 탯줄도 잘려지지 않은 어린 아이를 검은 봉지에 싸서 한강에 버리는 것이다. 때때론 마치 금방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듯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주검이 그냥 물위에 떠다니는 채로 미화원들에게 발견되기도 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 시내 곳곳에는 낙태수술을 싼 가격에 해 준다는 불법 산부인과들이 즐비하다. 임신한 10대를 상대로 싸다는 이유로 마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궁 속을 마구 긁어내어 아기를 떼어버리는 무허가 의사들, 수술의 고통으로 걷지도 못하는 청소년들을 잠시 쉴 시간도 주지 않고 좇아내는 몰인정한 의사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 자궁에 염증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구멍이 나서 다시는 임신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필자는 사후 피임약의 사용을 찬성하는 입장에 서려고 한다. 많은 생각들로 혼란스렀다. 임신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했을 때부터라고 배웠지만 언제부터 생명이라고는 배운 바가 없고, 그것을 정의하는 것 역시 난해하고 동.서양이나 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약의 사용이 낙태인지 피임인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또 성의 문란으로 겪게될 사회적 진통 역시 생각해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미 생명의 의미가 있는 수정란을 생명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고 또, 이 사회가 더욱 성적으로 문란해지리라는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에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무절제한 죄인이라고 비난하며 도덕적 이상만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대중매체들이 그릇된 성관계를 아름다운 것으로 과장하고, 또 그럴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방송하므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회의 약자,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어려운 장애자들이 희생이 되는 것이다. 낙태의 경험, 낳은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버려야하는 여성들의 상처와 고통을 그냥 두고볼 수는 없다. 그리스도 인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는 그들을 정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서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참다운 윤리란 그릇된 것을 뽑아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바라보는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낙태시술은 많은 여성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가져온다. 특히 무자격자에 의한 시술이나 잘못 유통되는 약물 복용 그리고 주위의 시선 때문에 낙태 후 충분한 요양을 하지 못한 청소년들의 경우는 그 피해가 더욱 심해 향후 생명잉태의 기회마저 앗아가기 쉽다.
물론 성적 윤리가 결여되어 가는 우리 사회가 이 약을 큰 충격과 혼란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단계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의에 의한 제한적 투약을 통해 약의 무분별한 오ㆍ남용을 막으며, 의사 약사 사회학자 등 전문가 집단의 진지한 토론을 통해 부정적 영향에 대한 차분하고 신중한 대처방안이 마련되어야할 것이다.
Ⅳ. 사후 피임약에 대한 나의 생각
한강의 수면에 떠다니는 오물들을 수거하는 미화원들 사이에는 묶여져 있는 검은 봉지는 열어 보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고 한다. 많은 경우 봉지 속에서 잘못 성관계를 통해 출산된 아기들의 주검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성숙한 가치관이 아직 제대로 정립되어져 있지 않은 청소년들에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이 낳은 아이의 생명의 소중함을 볼 수 없도록 한다. 그러기에 아직 탯줄도 잘려지지 않은 어린 아이를 검은 봉지에 싸서 한강에 버리는 것이다. 때때론 마치 금방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듯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주검이 그냥 물위에 떠다니는 채로 미화원들에게 발견되기도 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 시내 곳곳에는 낙태수술을 싼 가격에 해 준다는 불법 산부인과들이 즐비하다. 임신한 10대를 상대로 싸다는 이유로 마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궁 속을 마구 긁어내어 아기를 떼어버리는 무허가 의사들, 수술의 고통으로 걷지도 못하는 청소년들을 잠시 쉴 시간도 주지 않고 좇아내는 몰인정한 의사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 자궁에 염증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구멍이 나서 다시는 임신을 할 수 없게 되거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필자는 사후 피임약의 사용을 찬성하는 입장에 서려고 한다. 많은 생각들로 혼란스렀다. 임신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했을 때부터라고 배웠지만 언제부터 생명이라고는 배운 바가 없고, 그것을 정의하는 것 역시 난해하고 동.서양이나 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약의 사용이 낙태인지 피임인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또 성의 문란으로 겪게될 사회적 진통 역시 생각해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미 생명의 의미가 있는 수정란을 생명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고 또, 이 사회가 더욱 성적으로 문란해지리라는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에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무절제한 죄인이라고 비난하며 도덕적 이상만을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대중매체들이 그릇된 성관계를 아름다운 것으로 과장하고, 또 그럴 수 있다는 입장으로 방송하므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회의 약자,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어려운 장애자들이 희생이 되는 것이다. 낙태의 경험, 낳은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버려야하는 여성들의 상처와 고통을 그냥 두고볼 수는 없다. 그리스도 인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는 그들을 정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서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참다운 윤리란 그릇된 것을 뽑아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바라보는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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