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본 말
1. 함석헌의 기독교 사상
2. 함석헌의 동양사상
3. 함석헌의 씨알사상
4. 함석헌의 평화사상
Ⅲ. 나아가는 말
Ⅱ. 본 말
1. 함석헌의 기독교 사상
2. 함석헌의 동양사상
3. 함석헌의 씨알사상
4. 함석헌의 평화사상
Ⅲ. 나아가는 말
본문내용
서 비폭력 주장은 바로 그의 평화운동이다.
함석헌은 평화운동을 결국 간디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평화운동도 평화로써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Ⅲ. 나아가는 말
기독교 사상 측면에서 함석헌의 윤리사상은 초기 무교회 신앙의 신앙적 가치들을 그대로 가지고 이를 퀘이커와 만남을 통해 그 성숙함을 성취시켰으며, 삶의 양태, 행동으로서 무교회에서 느꼈던 문제의식을 실천해 나가는 발전의 과정으로 삼았다. 즉 무교회 신앙의 특징인 '하느님의 직접 체험', '비형식적이고 비제도적인 예배'가 퀘이커 안에서도 계속 계승될 수 있었고, 또 무교회의 신앙의 실천적인 측면의 부족함이 퀘이커의 평화운동에서 채울 수 있었다. 퀘이커의 신학과의 만남을 통해 함석헌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은 계승, 발전하면서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무교회와 퀘이커 사이에서 그 자신의 기독교 사상과 신앙이 단절된 것이 아닌 연속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함석헌의 윤리 사상을 크게 가름지어 볼때 기독교사상과 동양사상으로 가름지을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의 윤리 사상은 이 두 사상이 상호교류하며, 상호깊이를 더해 가면서 자신의 창조적인 사상으로 발현되어 나간 것이다. 그의 사상의 깊고 넓은 맛은 이러한 깊은 만남의 결과이다. 그렇기때문에 그의 종교사상 이해는 이 두 사상의 이해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동양과 한국의 사상은 나, 우리, 전체의 연속성과 일원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어는 '나'가 우리로 해소되거나 생략되는 경향이 있고 나와 남의 일치와 동화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의 통전성과 일원성을 드러내고 집단적인 우리의식은 강화되지만 개성과 나의식이 약화되고 객관적인 남의식, 엄정한 공공성에 이르기 어렵다. '남'과 '공공성'이 '나'와 '우리' 속에 편입되고 굴절되기 쉽다. 나의식과 남의식과 공공성이 약하면 건전한 민주사회를 이룰 수 없다. 이러한 점이 함석헌의 윤리사상 근저에 자리잡아 전체의 흐름을 조율한다.
서구언어와 문화에서는 '나'가 두드러지고 지배한다. 나의식과 남의식과 공공성의식이 민주사회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구의 문화와 사상에서는 나와 남의 갈등과 대립이 전제되므로 나와 남의 통전과 일치에 이르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동체적인 민주사회, 하나되는 지구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동양사상의 기초 위에 함석헌은 자신만의 독특한 씨알사상을 이룩한다. 씨알사상은 스스로 함과 생각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치열하게 나의 식을 강조하고, '나'의 부정과 비움, '남'의 스스로 함을 말함으로써 '남'을 '남'으로 보는 객관적인 남의식, 전체의 공공성에 이른다. 또한 '나'와 '남'을 '한'(전체) 속에 일치시키고 통전시키는 생명이해를 통해 공동체적인 삶의 기초와 원리를 닦아 내고 있다. 씨알사상은 생태학적인 통전성에 기초해서 개성(스스로 함)과 전체(공공성)를 창조적으로 결합한다. 씨알사상은 건강한 민주사회와 지구공동체를 위한 꿈과 실천적 지침을 담고 있다.
씨알을 향한 함석헌의 비젼은 평화사상으로 초점되어 진다. 모든 사상들이 그의 평화사상에서 융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그의 평화사상은 반정치, 반폭력, 반국가로 이어졌다. 그는 한 번도 그런 용어를 쓰지 않았으나 결국 무정부주의(Anarchism)에 도달했다. 이것은 정부란 도덕성이 없고 폭력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단정한 것과 직결된다. 그는 역사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그의 생애를 통해서 자국이나 침략 외세 하에서 그리고 공산주의사회나 민주주의 체제를 두루 겪으면서 국가라는 이름 밑에 도사린 폭력성을 몸으로 체험해왔다. 그러므로 그의 평화론과 반국가주의는 그의 생을 통한 실험의 결론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그가 귀착한 것은 자연주의라 하겠다. 그는 노자의 사상을 '건드리지 말라'로 집약하기도 한다. 그는 참 우주, 역사, 자연, 신을 하나로 묶는데 그것을 일관하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하면 '뜻'이다. 이 뜻이 실현되는 것이 바로 평화이다. 그 '뜻대로' 안에서 신과 인간, 자연과 역사가 이원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하나로 조화. 통합되는데 평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것은 새삼 만들어나갈 현실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이다. 이 원래적인 길을 가로막는 것이 결국 반평화세력인데 그것이 바로 인위성이다. 이 인위성을 폭력으로 강제하는 것이 정부이다. 그러므로 그의 평화를 위한 투쟁은 결국 반평화적인 것을 제거해서 세상이 제 본래의 길을 가게 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노장의 주장대로 흐르는 물길을 가로막지 않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 물은 방향성을 확실히 갖고 있다. 그것은 아래(골짜기)로 가는 것이다. 이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밀어붙이거나 그게 안되면 그 장애물에 의해 생긴 공간을 채워주고 여전히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그 장애물이 강력해서 우회하더라도 결국 물은 정해진 방향대로 흐르고 만다. 이 점에서 그는 맹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도 동원한다. 이상과 같이 살펴볼 때 그는 궁극적으로 낙관주의자이다.
그의 이러한 낙관적 기대는 성취 될 수 있을까? 그의 낙관론이 전적이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우주적인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느님의 자비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의 기대는 철저히 신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의 근저에는 언제나 이러한 하느님을 향한 신앙심이 바탕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단순한 이상가가 아닌 실천가로써의 그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 신학도들에게 많은 도전과 목회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 정립을 요청한다.
무엇이 온전히 하느님을 섬기는 길인가?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과 세상이 우리의 그리스도인에게 요청하고 있는 궁극적 실천의 과제는 무엇이겠는가? 지금도 그는 우리를 향해 묻고 있다.
기존의 신학적 입장에서 몇몇 가지 인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음을 뒤로 한체, 우리는 그의 우주적이고 주체적이며 인간적이고 평화적인 그의 사상 속에서 이 사회의 변혁의 주체로서 거듭남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가 인류에게 보여준 것처럼, 함석헌의 윤리 또한 희생과 상생의 도를 자신의 투쟁적인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함석헌은 평화운동을 결국 간디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평화운동도 평화로써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Ⅲ. 나아가는 말
기독교 사상 측면에서 함석헌의 윤리사상은 초기 무교회 신앙의 신앙적 가치들을 그대로 가지고 이를 퀘이커와 만남을 통해 그 성숙함을 성취시켰으며, 삶의 양태, 행동으로서 무교회에서 느꼈던 문제의식을 실천해 나가는 발전의 과정으로 삼았다. 즉 무교회 신앙의 특징인 '하느님의 직접 체험', '비형식적이고 비제도적인 예배'가 퀘이커 안에서도 계속 계승될 수 있었고, 또 무교회의 신앙의 실천적인 측면의 부족함이 퀘이커의 평화운동에서 채울 수 있었다. 퀘이커의 신학과의 만남을 통해 함석헌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은 계승, 발전하면서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무교회와 퀘이커 사이에서 그 자신의 기독교 사상과 신앙이 단절된 것이 아닌 연속성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함석헌의 윤리 사상을 크게 가름지어 볼때 기독교사상과 동양사상으로 가름지을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의 윤리 사상은 이 두 사상이 상호교류하며, 상호깊이를 더해 가면서 자신의 창조적인 사상으로 발현되어 나간 것이다. 그의 사상의 깊고 넓은 맛은 이러한 깊은 만남의 결과이다. 그렇기때문에 그의 종교사상 이해는 이 두 사상의 이해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동양과 한국의 사상은 나, 우리, 전체의 연속성과 일원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어는 '나'가 우리로 해소되거나 생략되는 경향이 있고 나와 남의 일치와 동화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의 통전성과 일원성을 드러내고 집단적인 우리의식은 강화되지만 개성과 나의식이 약화되고 객관적인 남의식, 엄정한 공공성에 이르기 어렵다. '남'과 '공공성'이 '나'와 '우리' 속에 편입되고 굴절되기 쉽다. 나의식과 남의식과 공공성이 약하면 건전한 민주사회를 이룰 수 없다. 이러한 점이 함석헌의 윤리사상 근저에 자리잡아 전체의 흐름을 조율한다.
서구언어와 문화에서는 '나'가 두드러지고 지배한다. 나의식과 남의식과 공공성의식이 민주사회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구의 문화와 사상에서는 나와 남의 갈등과 대립이 전제되므로 나와 남의 통전과 일치에 이르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동체적인 민주사회, 하나되는 지구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동양사상의 기초 위에 함석헌은 자신만의 독특한 씨알사상을 이룩한다. 씨알사상은 스스로 함과 생각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치열하게 나의 식을 강조하고, '나'의 부정과 비움, '남'의 스스로 함을 말함으로써 '남'을 '남'으로 보는 객관적인 남의식, 전체의 공공성에 이른다. 또한 '나'와 '남'을 '한'(전체) 속에 일치시키고 통전시키는 생명이해를 통해 공동체적인 삶의 기초와 원리를 닦아 내고 있다. 씨알사상은 생태학적인 통전성에 기초해서 개성(스스로 함)과 전체(공공성)를 창조적으로 결합한다. 씨알사상은 건강한 민주사회와 지구공동체를 위한 꿈과 실천적 지침을 담고 있다.
씨알을 향한 함석헌의 비젼은 평화사상으로 초점되어 진다. 모든 사상들이 그의 평화사상에서 융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그의 평화사상은 반정치, 반폭력, 반국가로 이어졌다. 그는 한 번도 그런 용어를 쓰지 않았으나 결국 무정부주의(Anarchism)에 도달했다. 이것은 정부란 도덕성이 없고 폭력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단정한 것과 직결된다. 그는 역사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그의 생애를 통해서 자국이나 침략 외세 하에서 그리고 공산주의사회나 민주주의 체제를 두루 겪으면서 국가라는 이름 밑에 도사린 폭력성을 몸으로 체험해왔다. 그러므로 그의 평화론과 반국가주의는 그의 생을 통한 실험의 결론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그가 귀착한 것은 자연주의라 하겠다. 그는 노자의 사상을 '건드리지 말라'로 집약하기도 한다. 그는 참 우주, 역사, 자연, 신을 하나로 묶는데 그것을 일관하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하면 '뜻'이다. 이 뜻이 실현되는 것이 바로 평화이다. 그 '뜻대로' 안에서 신과 인간, 자연과 역사가 이원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하나로 조화. 통합되는데 평화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것은 새삼 만들어나갈 현실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이다. 이 원래적인 길을 가로막는 것이 결국 반평화세력인데 그것이 바로 인위성이다. 이 인위성을 폭력으로 강제하는 것이 정부이다. 그러므로 그의 평화를 위한 투쟁은 결국 반평화적인 것을 제거해서 세상이 제 본래의 길을 가게 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노장의 주장대로 흐르는 물길을 가로막지 않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 물은 방향성을 확실히 갖고 있다. 그것은 아래(골짜기)로 가는 것이다. 이것을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밀어붙이거나 그게 안되면 그 장애물에 의해 생긴 공간을 채워주고 여전히 아래로 흐르는 것이다. 그 장애물이 강력해서 우회하더라도 결국 물은 정해진 방향대로 흐르고 만다. 이 점에서 그는 맹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도 동원한다. 이상과 같이 살펴볼 때 그는 궁극적으로 낙관주의자이다.
그의 이러한 낙관적 기대는 성취 될 수 있을까? 그의 낙관론이 전적이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우주적인 생명의 근원으로서 하느님의 자비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의 기대는 철저히 신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상의 근저에는 언제나 이러한 하느님을 향한 신앙심이 바탕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단순한 이상가가 아닌 실천가로써의 그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 신학도들에게 많은 도전과 목회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 정립을 요청한다.
무엇이 온전히 하느님을 섬기는 길인가?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과 세상이 우리의 그리스도인에게 요청하고 있는 궁극적 실천의 과제는 무엇이겠는가? 지금도 그는 우리를 향해 묻고 있다.
기존의 신학적 입장에서 몇몇 가지 인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음을 뒤로 한체, 우리는 그의 우주적이고 주체적이며 인간적이고 평화적인 그의 사상 속에서 이 사회의 변혁의 주체로서 거듭남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가 인류에게 보여준 것처럼, 함석헌의 윤리 또한 희생과 상생의 도를 자신의 투쟁적인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