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가?
2. [기술담론의 허구(The Technological Bluff)]를 읽기 위한 예비 작업
3. [기술담론의 허구]
2. [기술담론의 허구(The Technological Bluff)]를 읽기 위한 예비 작업
3. [기술담론의 허구]
본문내용
통제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지성을 후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일종의 최면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따라서 엘룰이 이러한 기계 예술을 다이버전이라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5)완전한 머저리 같은 짓들(ultimate idiocies)
엘룰이 언급하는 마지막 다이버전은 디즈니랜드와 같은 오락 공원, 그리고 대중 우상(idol)이다. 우상은 마이클 잭슨과 같은 스타들의 종교(religion of the star)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을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따돌리는 다이버전들이다.
3.6.4. 비단 장갑 속의 테러리즘(Terrorism in the velvet glove of technology)
3.6.3절의 다이버전은 기술담론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나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따돌리는 것인데 반해 이 절에서 말하는 테러리즘(terrorism)은 기술담론이 인간을 기술에 대해 거역할 수 없이 의존(dependence)하고 복종(subjugation)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담론은 엘룰 식으로 말하면 테러리스트인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테러리즘을 행사하는가? 그것은 바로 내일의 사회에 대한 멋진 그림(a picture of tomorrow's society)을 그림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테러리즘은 비단장갑을 끼고 교묘하게 우리를 공격하고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테러리즘의 대리자들인가? 엘룰은 정치권력(political power)과 기술자들, 기술구조(technicians and technostructure)를 먼저 언급한다. 둘째로, 엘룰이 언급하는 그룹은 바로 지성인들(intellectuals:주로 교사, 교수들)과 교회(church)이다.
엘룰은 교회가 이 네 그룹 중에서 가장 문제(worst of all)라고 지적한다. 물론 엘룰이 교회의 예로 든 것은 WCC과 카톨릭이다. 엘룰은 교회가 빈곤과 낙태와 제 3세계의 문제,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기술사회에 대해서는 순응주의자(conformist)가 되어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오히려 기술사회의 모든 것들을 더 빨리 받아들이려고 안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영(critical spirit)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가? 그것은 교회가 현대적이지 못하고(not being modern) 뒤떨어졌다(not being up to date)는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엘룰은 꼬집는다. 교회에게는 동시대의 사람들(contemporaries)과 접촉하는 것이 하나님(God)과 접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사회(society)가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Word)보다 더욱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기술담론의 테러리즘의 희생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이것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엘룰은 교회는 '비단 장갑 속에 있는 기술담론의 테러리즘(Terrorism in the velvet glove of technology)'이라는 이 내용을 녹음하여 들려주는 카세트(cassette)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This ensures that they will not be judged) 이라고 엘룰은 선언한다.
3.7. 결언(last word)
엘룰은 현대 기술사회는 새로운 인간성(Humanity)을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인간성을 기술체제에 통합시켜 버리는 거대한 계획(great design)은 소리 없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3중의 패널구조로 되어 있다.
1)중앙에 있는 패널은 과학과 기술이 원활한 기능(smooth function)을 할 수 있는 조건들에 완벽하게 적응된 인간성(humanity perfectly adapted to the requirements)이다. 2)왼쪽에 있는 패널은 과학과 기술의 경이(marvels)와 점차 증가하는 삶의 기회들( ever-growing opportunities of our life)에 현혹당해버린 인간성(fascinated humanity)이다. 3)오른쪽에 있는 패널은 게임들, 온갖 오락물들, 기계 도구들 등에 의해 본질적인 관심을 잃어버린 인간성(diverted humanity)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술체제 속에서 사람들은 네가지 의무에 복종하게 되어 있다 1)정확한 시간에 열심히 일하는 것(work well)이다. 2)집합적인 문제(collective matters)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즉, 정치가는 정치만 하고 교회는 평안만을 나눠주고 의사는 환자만을 돌본다. 3)좋은 소비자(good consumer)가 되는 것이다. 4) 마지막으로는 대중매체(media)가 선전하는 의견대로 따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엘룰은 최종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정말로 폐쇄된 상황인가(Is this a closed situation)? 출구는 없단 말인가(Is there no way out)? 그렇다. 하지만, 엘룰은 자신은 예언(prediction)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둔다. 자신은 지금 예언이 아니라 경고(warning)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엘룰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다(we are free)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보여야 한다(we must show our freedom by recognizing our nonfreedom). 하지만, 이것은 철학적이거나 이론적인 마음의 문제(a philosophical or theoretical matter of the mind)가 더 이상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바로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는 기술체제에 의해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가? 엘룰은 우리가 계속해서 기계를 지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있고 2000년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그 체제 안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5)완전한 머저리 같은 짓들(ultimate idiocies)
엘룰이 언급하는 마지막 다이버전은 디즈니랜드와 같은 오락 공원, 그리고 대중 우상(idol)이다. 우상은 마이클 잭슨과 같은 스타들의 종교(religion of the star)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을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따돌리는 다이버전들이다.
3.6.4. 비단 장갑 속의 테러리즘(Terrorism in the velvet glove of technology)
3.6.3절의 다이버전은 기술담론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나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따돌리는 것인데 반해 이 절에서 말하는 테러리즘(terrorism)은 기술담론이 인간을 기술에 대해 거역할 수 없이 의존(dependence)하고 복종(subjugation)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담론은 엘룰 식으로 말하면 테러리스트인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테러리즘을 행사하는가? 그것은 바로 내일의 사회에 대한 멋진 그림(a picture of tomorrow's society)을 그림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테러리즘은 비단장갑을 끼고 교묘하게 우리를 공격하고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테러리즘의 대리자들인가? 엘룰은 정치권력(political power)과 기술자들, 기술구조(technicians and technostructure)를 먼저 언급한다. 둘째로, 엘룰이 언급하는 그룹은 바로 지성인들(intellectuals:주로 교사, 교수들)과 교회(church)이다.
엘룰은 교회가 이 네 그룹 중에서 가장 문제(worst of all)라고 지적한다. 물론 엘룰이 교회의 예로 든 것은 WCC과 카톨릭이다. 엘룰은 교회가 빈곤과 낙태와 제 3세계의 문제,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기술사회에 대해서는 순응주의자(conformist)가 되어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오히려 기술사회의 모든 것들을 더 빨리 받아들이려고 안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영(critical spirit)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가? 그것은 교회가 현대적이지 못하고(not being modern) 뒤떨어졌다(not being up to date)는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엘룰은 꼬집는다. 교회에게는 동시대의 사람들(contemporaries)과 접촉하는 것이 하나님(God)과 접촉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사회(society)가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Word)보다 더욱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기술담론의 테러리즘의 희생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이것을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엘룰은 교회는 '비단 장갑 속에 있는 기술담론의 테러리즘(Terrorism in the velvet glove of technology)'이라는 이 내용을 녹음하여 들려주는 카세트(cassette)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This ensures that they will not be judged) 이라고 엘룰은 선언한다.
3.7. 결언(last word)
엘룰은 현대 기술사회는 새로운 인간성(Humanity)을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인간성을 기술체제에 통합시켜 버리는 거대한 계획(great design)은 소리 없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3중의 패널구조로 되어 있다.
1)중앙에 있는 패널은 과학과 기술이 원활한 기능(smooth function)을 할 수 있는 조건들에 완벽하게 적응된 인간성(humanity perfectly adapted to the requirements)이다. 2)왼쪽에 있는 패널은 과학과 기술의 경이(marvels)와 점차 증가하는 삶의 기회들( ever-growing opportunities of our life)에 현혹당해버린 인간성(fascinated humanity)이다. 3)오른쪽에 있는 패널은 게임들, 온갖 오락물들, 기계 도구들 등에 의해 본질적인 관심을 잃어버린 인간성(diverted humanity)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술체제 속에서 사람들은 네가지 의무에 복종하게 되어 있다 1)정확한 시간에 열심히 일하는 것(work well)이다. 2)집합적인 문제(collective matters)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즉, 정치가는 정치만 하고 교회는 평안만을 나눠주고 의사는 환자만을 돌본다. 3)좋은 소비자(good consumer)가 되는 것이다. 4) 마지막으로는 대중매체(media)가 선전하는 의견대로 따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엘룰은 최종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정말로 폐쇄된 상황인가(Is this a closed situation)? 출구는 없단 말인가(Is there no way out)? 그렇다. 하지만, 엘룰은 자신은 예언(prediction)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둔다. 자신은 지금 예언이 아니라 경고(warning)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엘룰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롭다(we are free)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보여야 한다(we must show our freedom by recognizing our nonfreedom). 하지만, 이것은 철학적이거나 이론적인 마음의 문제(a philosophical or theoretical matter of the mind)가 더 이상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바로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는 기술체제에 의해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가? 엘룰은 우리가 계속해서 기계를 지배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계획할 수 있고 2000년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그 체제 안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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