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교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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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V. 개신교 유럽선교의 기원

VI. 영국과 미국 개신교 선교의 기원

본문내용

의 설교는 물론 자연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한번 니콜라이가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모든 이들에게,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에도 선포되었다는믿음을 보게된다. Wittenberg "Opinion"전에 그리고 니콜라이 후에 대 예나 신학자인(the great jena theologian) 요한 게르하드 (Johann Gerhard: 1582-1637)는 또한 모든 나라가 오래전에 복음을 접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공했다: 고대 멕시코인들은 에디오피아인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수용했고, 이름모를 선교사가 브라질, 페루, 브라만으로 갔으며, 다른 곳도 수세기 전에 복음화 되었음이 틀림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종교는 기독교적 요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등등.(cf Warneck 1906:28-31). 만일 이러한 나라들이 한 때에 복음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교도라면 한가지 설명밖에 있을 수 없다--그들의 부주의함이나 배은망덕이라고.. 여전히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은 따라서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두 번째 기회가 제공되어서는 안됐다.
이 주제는 (1663년과 1664년에) 귀족 Justinian von Welz(1621-1666)에 의해 출판된 세가지 소책자에서 Ursinus의 선교 연루에 대한 열렬한 변명의 반박에서 부분적으로 유명해졌다. Welz는 "Great Commission"이 계속해서 무제한의 가치를 갖는다고 믿었고 그 시대의 루터교회의 지역주의를 심하게 비난했다. 그는 은둔자의 직무(office)를 재소개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특별히 선교를 위해서였다. 그러한 은자 선교사들은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이어야 했고 "예수를 좋아하는 사회"(Jesus-Loving-Society)의 찬조아래 보내져야만 했다. 그러나 Welz는 그의 시대를 앞서 있었고 그가 지지했던 것들의 대부분은 독일 루터교 정세에 경건주의가 급격히 증가했던 일세기가 지나서야 실현되었다.
우르시누스의 Welz의 제안에 대한 반박은 위에서 약술된 선교를 정통파(orthodoxy)가 해석한 모든 특징들을 실제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교도 개종의 방해물들은 이겨낼 수가 없었고 그 일은 불가능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모든 열방에게 계시하셨다; "Great Commission"은 단지 사도들의 것이었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돌리는 것은 우리 역할(part)에 대한 억측이었다. 더군다나 이교도 국가들은 대부분이 그 안에 인간답지도 않은 미개인들이기 때문에 복음에 둔감했다; 기독교 지배자들은 어떤 치욕이나 악덕도 반드시 심판받음을 주시해야 한다; 등등. Welz의 "Jesus-Loving-Society"에 관한 한은 그러한 중개는 명백하게 비기독교적이고 하나님과 우리 구주를 대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어떤 협력자들도 너그럽게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각 사람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의 문을 주의하는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 기독교가 부흥하는 황금시대가 도래하기를 꿈꾸는 것은 위험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신뢰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보호해주신 것을 감사하자. 그들은 구원받기 위해 두려움과 떨림으로 일할 것이며 조용히 자신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의 시대에 루터교회는 Welz의 이상을 평가하고 적용할 만한 아무런 기관이 없었다. 그의 선교사 지원을 위한 호소는 소 귀에 경읽기였다. 그의 확신의 열정에 못이겨 그는 1666년남아메리카의 수리남으로 떠났고, 같은해에 그는 거기서 죽었다. 정통의 비타협에 희생***( sacrifice to orthodox intransigence)과도 같이.. 그의 선교 사역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토의) A) 종교개혁시대의 카톨릭과 루터파와 칼빈파의 선교관과 재침례파의 선교관을 비교 하여 문제점을 밝히고 오늘의 선교 상황의 성경적 대책은 무엇인가를 논하라 !
Q) 카톨릭이 식민지 확장식의 선교방법을 택하였다면 개신교회의 양파는 그들시대 의 주어진 교회를 개혁하는 것을 주요한 일로 여기고 수도원 선교운동의 맥을 잇 지 못함으로 겨우 랩란드인을 스웨덴루터교가 복음화시키는데 그칠 정도로 미미한 소극적 선교활동을 진행했으며 지상명령에 대한 제한된 개념이해와 교회와 국가 합력으로 가능한 소극적인 선교관을 소유했다. 이에 반하여 재침례파는 교회와 국 가간의 절대분리와 지상명령에 대한 적극적인 선교관을 가지고 실지로 적용하여 유럽전역을 선교영역으로 삼고 선교하였다.
종교개혁기의 문제점은 자기중심적 선교관에 있다하겠다. 각 종파마다 실리와 주장에 일치하는 선교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이런 선교관의 문제점은 아직도 성령 충만을 욕심충만으로 채우는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 잘 배어나온다 하겠다.
오늘의 선교현실은 58억의 인구중에 2/3가 밀집되어있고 24,000여 종족가운데 12,000여 미전도족속 대부분이 거주하는 10/40창이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하고 선 교사들이 가장 적게 활동하고 있는 피선교지인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종교개혁기의 카톨릭교회처럼 또는 19세기의 서구교회처럼 식 민주의적 선교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성경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 게 미전도종족입양이라는 새로운 방법의 대책을 제시하신다.
종래의 국가중심의 선교방법도 탈피해야하고 가나안을 정복할 때의 이스라엘 백 성들이 지파별로 이방족속의 땅을 취한 것 처럼 모든교회들이 자기 실리 중심과 교리중심의 선교관을 지양하고 협력선교를 지향하며 족속별로 합리적인 분할을 하 여 미전도족속을 입양한다면 중복투자를 피하고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가장 지혜 로운 헌신방법이 될 것이다.
선교는 재침례파와 같은 열정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물론 재침례파가 열정만 가졌다는 말은 아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기전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파송하고 정보 를 수집하고 철저히 준비하고 그렇게하고도 마침내는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방법으 로 여리고성을 점령한 것 처럼 선교는 신비하고 기이한 하나님의 사역임을 깨달아 철저한 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결론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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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7페이지
  • 등록일2002.10.21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7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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