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써케지안족 선교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1. 선교지 개요

2. 써케지안족(Circassian of Turkey)

본문내용

자유농민(tlfaquat'l), 그리고 노예(pshit'l)로 분류되는데 군주는 모든 부와 마을 대외적인 관계를 관리한다. 자유민은 농부나 목동 또는 작은 공장에서 일을 했다. 노예는 보통 전쟁의 포로였는데 종이나 일군으로서 군주와 귀족에게 봉사했다. 현재 이 제도는 족보를 말할때만 의미를 지닌다.
확장된 가족은 써케지안 사회구조의 가장 일반적인 단위이다. 틀랍크(tlapq)의 구성원은 같은 남자 조상으로부터 내려오고 공통의 이름을 받는다. 결혼은 애정이나 쌍방의 관심에 바탕을 두고 신랑신부가 30대 초반일때에 한다. 많은 집안일에 대해 권한은 아내에게 있지만 논쟁이 있을 때 최종 결정은 남편에게 달려있다.
사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국을 처음 방문하려고 러시아로 여행하고 있는데 이는 써케지안 사회에 새로운 역동성을 일으키고 있다.
법정기관/재판 처벌
매스컴(라디오/TV/신문/영화/비디오/레코드)
써케지안 토착어로 된 신문이나 방송은 전혀 없다.
그러나 터키어로는 5개의 국제 방송국을 통해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FEBA, High Adventure, IBRA(현재 러시아로부터 방송), TWR, ECR이탈리아. 매주 12시간을 터키어로 , 그외의 몇 시간은 아제르바이잔어와 쿠르만지어로 방송된다.
5. 종교
종교현황
써케지안을 비롯한 대부분의 터키인은 명목상일지라도 모두 회교도이다. 경찰이나 과격한 회교도로부터의 위협, 가족에게 가해질 압력에 대한 두려움등으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한 개념
써케제안들 사이에 기적이나 마법에 대한 믿음은 일반적이다.
용서에 대한 개념
행동양식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
구속, 비유, 다리역활
6. 기독교 상황
6세기에서 12세기 사이 비잔틴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가 소개되기는 했지만 써케지안은 지난 3-4백년간 수니파 이슬람교였다. 그러나 그들의 구전과 종교의식에는 많은 이교도 유물과 일부 동방정교의 양식이 발견된다. 정통 중동 회교 다수에게 이들은 자유롭게 비쳤고 종종 핍박을 당했다.
터키의 동부 써케지안은 그들과 함께 거주하고 일하는 기독교 노동자가 필요하다. 많은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민족적인 정체성을 찾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기도가 우선이다.
성경
토착어 성경 : 전혀 없음(신약 성경 번역 진행중)
써케시안 토착어와 통용되는 언어로는 아직 완성된 성경번역본은 없으나 몇해전 성경 일부의 카세트 테잎이 유입되었다.
터키어: 터키어 신약이 번역판으로 1988/89년에 출간되었다. 둘 다 인기가 있으며, 매년 25,000부씩 보급되고 있다.
아디그헤(Adyghe) : 일부(1977)
카바르디안어(Kabardian) : 일부(1991)
기독교 라디오 방송 : 없음
카셋트 테잎: 있음
비디오 자료 : 없음
Priority Ranking : 2
교회 형태
전반적 교회 개척 활동 없음
반응도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아르메니아인 테러리스트나 여화와의 증인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다. 기독교인에 대한 허위 보도가 신문에 떠들썩하게 실리고 나아가 국민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회교도의 잘못된 인식이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종교적 변화에 대한 개방 정도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깊다.
터키인은 회교와의 오랜친교와 유럽의 "기독교"국가들과의 치열한 전쟁으로 터키에서는 기독교의 회심이 거의 반역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기독교인은 인종적, 종교적 배경 때문에 종종 2등 시민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종종 고립되어 있으며 가족과 친구의 압력을 두려워하고 다른 기독교인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은 그리스도께 나아온 후 심각한 정체감의 위기를 경험한다. 신앙을 버리기도 하고 비기독교인과 결혼함으로써 타협하기도 하며 용기를 잃은 신자들 간의 관계가 깨어지기도 한다.
호응도가 높은 사역
복음화된 상황
아직 알려진 기독교인은 없다.
동부 써케지안 중에서 (베다니 미전도 종족 자료),
- 복음을 들어본 인구 : 57,000 (23%)
써케지안에게 복음화한 인구: 17,300 (7%)
외부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들은 인구: 39,700 (16%)
-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인구: 190,800 (77%)
사역하는 단체들
없음
7. 선교를 위한 접근방법
현 그리스도인의 사역
현재의 필요들
터키의 동부 써케지안은 그들과 함께 거주하고 일하는 기독교 노동자가 필요하다. 많은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국가적인 정체성을 찾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기도가 우선이다. 현재 터키에 파견된 외국인 선교사들은 너무 한곳에 터키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협력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들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때 신자들 가운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를 저해할 수도 있다. 1990년에 터키 지도자들의 민족 자문위원회가 세워졌다.
선교에 대한 정부의 태도, 사회 인식
헌법과 사법부는 눈에 띄이게 세속적이며, 표면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대다수의 정치가와 경찰 그리고 확산되고 있는 회교 근본주의 운동은 기독교적인 어떤 것에도 호전적인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소수 기독교인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도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정치적인 불안정과 혼란으로 폭력이 난무했고 많은 아르메니아인이 강제로 추방당했다.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지원 아래 조국을 찾기 위해 투쟁했으나 이에 적의를 품은 터키는 대량 학살과 추방을 통해 사실상 아르메니아인을 제거해버렸다. 이로 인해 당시 약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죽었다.
1988년에 많은 기독교인이 체포되어 고통을 겪고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고소는 법정에서 기각되었고, 피고들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많은 법정 소송을 통해 종교의 자유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 모든 종교가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구제 사역
비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교육, 연구, 사업, 관광 비자로 사역하고 있다.
종족 프로파일
터어키 Circassian 족
중동 . 아프리카 (목화골드)
1997년 12월 6일
장 순 현 목사

키워드

  • 가격2,3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2.10.22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771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