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는 말
Ⅰ. 사회복지와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배경
1. 사회복지의 개념
2. 예수의 생애
3. 시대적 배경
1) 정치적 배경
2) 사회, 경제적 배경
Ⅱ. 예수님의 사역 속에 나타난 사회복지
1. 빈민 구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회복지
1) 가난의 개념
2) 부의 비판
3) 가난한 자 예수와 가난한 자 구제
4) 소득재분배론
2. 병자 치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회복지
3. 인권 회복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회복지
Ⅲ. 사회복지 운동가로서의 예수
Ⅳ. 나가는 말
Ⅰ. 사회복지와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배경
1. 사회복지의 개념
2. 예수의 생애
3. 시대적 배경
1) 정치적 배경
2) 사회, 경제적 배경
Ⅱ. 예수님의 사역 속에 나타난 사회복지
1. 빈민 구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회복지
1) 가난의 개념
2) 부의 비판
3) 가난한 자 예수와 가난한 자 구제
4) 소득재분배론
2. 병자 치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회복지
3. 인권 회복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회복지
Ⅲ. 사회복지 운동가로서의 예수
Ⅳ. 나가는 말
본문내용
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배계층의 불의와 부정, 위선과 교만, 민중을 억압하는 악법등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회복지 강연은 언제나 생명을 건 모험과 긴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민중의 인권회복을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길만이 참 복지사회로 가는 여정임을 알았기에 사회정의를 말했고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Ⅳ. 나가는 말
예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병고치고 구제하기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인간을 소외계층으로 보셨다.
마9:13
그래서 병든 자와 죄인에게만 자신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비록 자신이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이 가난한 자임을 고백하고 인정해야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본질적이고 최우선적이셨다. 한국교회는 이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과 성육신의 자세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의 경건은 부패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 곧 고아와 과부들을 볼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목회에는 그 지역사회에서의 가난한 자들,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만일에 우리들의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는 성경적인 기준에서 대단히 미흡하다. 교회헌금의 거의가 교회 자체 유지를 위해 쓰여지고 교회 밖의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동족을 위해 사용되어 지는 몫이 너무나 적다. 헌금을 내게 할 때는 성경적으로 내게 하고 쓸 때는 성경적으로 쓰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IMF의 상황에서 총회가 각 개교회에 권면한 「모든 교회의 재정 중 십분의 일은 구제비로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은 그러한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사회복지운동가로 찾아 오셨다. 그의 행적이 기록된 복음서에는 현대적 사회복지 개념 및 전통적 사회복지 개념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사회복지운동가로서의 생애와 사회복지의 성취를 위해 노력했던 분이시다. 그가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인 자들을 가난한 자들, 눈먼 자, 절름발이, 불구자, 나병환자, 굶주리는 자, 우는 자, 죄인, 창녀, 세리, 귀신 들린 자, 박해받는 자, 억울한 자, 묶인 자, 무거운 짐 진자, 율법을 모르는 천한 족속, 군중, 보잘 것 없는 자, 맨 끝에 앉은 자, 어린이,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이었다. 오늘의 용어로는 하류계급, 피압박자들이라 부를 수 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자리에서, 병든 자리에서, 인간이 눌린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나사렛 회당에서 사회복지운동가로서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19절을 선언한 예수님이 다시 부활한다면 똑같은 선언을 모든 억눌린 자들에게 할 것이다.
우리는 입술로 말하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을 삶과 행동에 옮기는 것에는 아주 인색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교회가 열리지 않고 폐쇄적일수록 하나님의 백성답게 누리는 삶이 되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욱 곁길로 가는 것을 보는 방조자가 될 뿐이다. 이 땅에 사회복지운동가로 오신 예수의 삶이 그러하셨듯 교회는 더욱 낮아진 모습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 누구든지 먼저 된 자이길 원하고 섬김과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이 세대 속에서 교회는 참된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는 한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진실된 모습으로 세상을 감동시켜야 한다.
Ⅳ. 나가는 말
예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병고치고 구제하기 위해서만 오신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인간을 소외계층으로 보셨다.
마9:13
그래서 병든 자와 죄인에게만 자신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비록 자신이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이 가난한 자임을 고백하고 인정해야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본질적이고 최우선적이셨다. 한국교회는 이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과 성육신의 자세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의 경건은 부패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 곧 고아와 과부들을 볼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목회에는 그 지역사회에서의 가난한 자들,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만일에 우리들의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는 성경적인 기준에서 대단히 미흡하다. 교회헌금의 거의가 교회 자체 유지를 위해 쓰여지고 교회 밖의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동족을 위해 사용되어 지는 몫이 너무나 적다. 헌금을 내게 할 때는 성경적으로 내게 하고 쓸 때는 성경적으로 쓰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IMF의 상황에서 총회가 각 개교회에 권면한 「모든 교회의 재정 중 십분의 일은 구제비로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은 그러한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사회복지운동가로 찾아 오셨다. 그의 행적이 기록된 복음서에는 현대적 사회복지 개념 및 전통적 사회복지 개념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사회복지운동가로서의 생애와 사회복지의 성취를 위해 노력했던 분이시다. 그가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인 자들을 가난한 자들, 눈먼 자, 절름발이, 불구자, 나병환자, 굶주리는 자, 우는 자, 죄인, 창녀, 세리, 귀신 들린 자, 박해받는 자, 억울한 자, 묶인 자, 무거운 짐 진자, 율법을 모르는 천한 족속, 군중, 보잘 것 없는 자, 맨 끝에 앉은 자, 어린이,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이었다. 오늘의 용어로는 하류계급, 피압박자들이라 부를 수 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자리에서, 병든 자리에서, 인간이 눌린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다. 나사렛 회당에서 사회복지운동가로서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19절을 선언한 예수님이 다시 부활한다면 똑같은 선언을 모든 억눌린 자들에게 할 것이다.
우리는 입술로 말하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을 삶과 행동에 옮기는 것에는 아주 인색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교회가 열리지 않고 폐쇄적일수록 하나님의 백성답게 누리는 삶이 되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욱 곁길로 가는 것을 보는 방조자가 될 뿐이다. 이 땅에 사회복지운동가로 오신 예수의 삶이 그러하셨듯 교회는 더욱 낮아진 모습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 누구든지 먼저 된 자이길 원하고 섬김과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이 세대 속에서 교회는 참된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는 한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진실된 모습으로 세상을 감동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