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념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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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의는 현실로의 국가법률의 제도로는 정당하지 못하고 오
히려 부정당한 것이 된다. 진실한 선의 실현은 우리에게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
이다. 우리는 최선의 정의를 추구할 뿐이다.
그리고 최선의 정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그 문제는 제한 있는 테두리 안에서 되
도록 진정한 선, 절대적 정의에 접근하려는 의욕으로 인도된다. 그런데 그 절
대적 정의에의 접근은 국가와 같은 큰 영역에서 보다는 가정/결혼과 같은 작은
영역에서 더 쉽게 가능하다.
이 가능한 최선의 정의는 진정으로 정당한 것 즉 절대적 정의를 망각하지 않고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현실을 은폐하거나 그것에서 눈을 돌리거나 하
지 않고 실존하는 현사태를 똑바로 인식하면서 또한 그 현실 속에서 진정의 정
의에 되도록 가까이 나아가려고 애쓰는 데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사
적 현실에 순응하려는 요청은 도덕적 용기부족이나, 되는 대로 살고자 하는 부
절제나 가장 반항이 적은 노선을 따르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로 도덕적인 요구에 서 있는 현실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극히 적은 일이라도
진정으로 최대한의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애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그 절대적 정의를 알고 또한 사랑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정의와 현실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것이다. 한 제
도가 비록 상대적인 정의밖에 못가졌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무질서와 무정부보다
는 낫다고 보는 점에서이다. 이러한 보수주의의 예는 사도 바울의 국가에 대한
태도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바울은 로마제국이 대단히 불완전한 정의를 소유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나님의 한 명령이요 선을 위하여 봉사하는 하나님의 그
릇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바울의 보수주의는 그가 보낸
편지인 빌레몬서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바울의 보수주의는 변경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마음의 괴로움을 전혀 느끼지 아니하고 묵종하는 것이 아니며 외
부에서 보면 부정당한 제도의 묵인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는 진정으로 정당한
것에 대한 뜨거운 정열이 불타고 있는 그런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두 가지 다른 면 즉, 신적
창조의 질서의 절대적 정의와 현재적인 현실로 인하여 부과되는 필연적인 변형
이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정의의 실현은 현실은 회피함
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고 고려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며,
반대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의의 추상적 공리는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이름
으로 예언적인 정열을 가지고 선포되었다고 할지라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 14장 정의와 성서의 계시
우리들의 정의의 이론은 본래부터 계시의 신앙의 입장위에 서 있다. 그러나 우
리들은 그 출발점을 계시의 기록 그 자체에서 구해서는 안된다. 이는 하나님의
의가 성경의 중심 주제이기는 하나,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의 뜻은 우리가 말하
는 정의의 뜻과는 훨씬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활동, 즉, 율법없이 이해되어야 하고, 공덕이나 요구권에는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아니하면 안되는 바 하나님의 활동을 뜻하였다. 이 활동은 하
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이 세계에 순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본
질상 새로운 세계에 속해 있다. 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 곧 사랑의 자유로운 은
총은 신약성서 복음의 본질이며, 각 사회의 가기 다른 정의의 의무는 이 하나님
의 나라 질서위에 기초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로 하여금 부과된 의무를 수행
하도록 하는 가장 깊은 동기는 그리스도께서 자유롭게 주신바 사랑이다.
구약성서에는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엄한 법률제도를 볼 수 있
으며 더욱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있어서는 신의 명의하에 주어진 정의에 대한 요
구가 인류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절박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구약에 있어서의 신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의 계시의 한 예비적 단계
이다. 이것은 두가지 것 만을 요구한다. 즉,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것,
그리고 인간의 질서는 창조의 원초적 질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의 근본적 요청으로 해서 구약성서의 인격적 윤리와 질서의 윤리가 생긴다.
제 15장 정의와 사랑
정의는 사랑과는 대립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사랑은
사람을 가리지 아니한다.(마5:44)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자만이
아니라 가치를 못가진 자까지 사랑하신다. 이 사랑은 특히 신약에서 증거된 사
랑이다. 이는 죄있는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계시되었다. 이 사랑은 친구의 가치를 보고 사랑하는 우애 도 아니며,
혈육관계로 인하여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도 아니다. 이
사랑의 원천은 자연적이 아니고 초자연적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신앙으로만
이해되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모름지
기 이 사랑을 향하여, 또 이 사랑을 바라보고 마음이 열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는 전혀 이와는 다른 사물이다. 정의는 타자에게 마땅히 차지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돌릴 뿐이다. 정의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제도속에서 보고 다루
기 때문에 합리적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정의를 초월하여 있다. 그러나 정의
는 제도 자체내에서는 숭고하며 이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왜그런가 하면, 사
랑은 제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사랑과 비
교하여 볼때 가치가 더 낮은 것, 있으나 마나 한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 제도 속에 살고 있는한, 정의와 사랑은 없어서는 안될 요건이
다. 이것은 사랑의 사람이 제도의 세계에서 행동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때는 그
사랑을 정의로 변경시키지 아니하면 아니되는 사실에서 명시된다.
정의는 항상 사랑의 선행조건이다. 사랑의 진정한 선물은 정의가 이미 다 행
해진 데서만 시작된다. 왜 그런가하면, 사랑은 정의를 넘어서 있으나, 정의를
반드시 통하여, 정의를 반드시 완수하면서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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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22
  • 저작시기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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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07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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