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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사람들 가운데 4%만이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에 출석한다는 보고는 우리가 되새겨 봐야 할 말이다. 이와같이 예수 영접에 신빙성이 없는 것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죄에 대한 자복이나 죄를 떠나거나 하는 구체적 회개의 자세가 없이 영접으로 건너 뛰었기 때문이다.
여덟째로, 영접으로 전도지를 끝내지 않고 영접 이후에 일어난 변화된 몇 가지 사항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간단히 확인해 주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영접 기도로서 끝을 내는 것이 전도지로서 담백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여러 내용을 덧붙이는 것은 부록처럼 보인다. 이제 갓 영접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해서 신앙 생활을 시작하도록까지 도와주는 것은 아주 좋아 보이지만, 새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꼭 전도지에 그 내용을 삽입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간다. 이것은 전도지에 기록하지 않고도 전도자들의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인다. 오히려 제4원리 이후의 여러 내용이 첨가된 것은 간단하고 담백하게 끝낼 수 있는 전도지 내용을 두 배나 길게 해서 전도지를 지루하고 복잡하게 느끼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덟째로, 영접으로 전도지를 끝내지 않고 영접 이후에 일어난 변화된 몇 가지 사항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간단히 확인해 주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영접 기도로서 끝을 내는 것이 전도지로서 담백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여러 내용을 덧붙이는 것은 부록처럼 보인다. 이제 갓 영접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해서 신앙 생활을 시작하도록까지 도와주는 것은 아주 좋아 보이지만, 새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꼭 전도지에 그 내용을 삽입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간다. 이것은 전도지에 기록하지 않고도 전도자들의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인다. 오히려 제4원리 이후의 여러 내용이 첨가된 것은 간단하고 담백하게 끝낼 수 있는 전도지 내용을 두 배나 길게 해서 전도지를 지루하고 복잡하게 느끼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