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소장(前後所將)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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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전후소장(前後所將) 사리

본문내용

1)에 의상은 신라로 돌아
와 장안 2년 임인(702)에 죽으니 나이 78세였다."
그렇다면 지엄과 함께 선율사가 있는 곳에서 재를 올리고, 천궁의 불아를 청하던
일은 신유(661)에서 무진(668)까지의 7,8년 사이가 될 것이다. 본조 고종이 강화도로
들어간 임진(1232)에 천궁의 7일 기한이 다 되었다고 의심한 것은 잘못된 것이니, 도
리천의 1주야는 인간세계의 1백세에 해당하는데, 의상이 처음 당나라에 들어갔던 신유
(661)에서부터 계산하여 본조 고종 임진(1232)까지는 693년-571년, 다음의 730년도 60
9년-이다. 고종의 경자(1240)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7백년이 차며, 7일 기한이 되는 것
이다. 개경에 환도하던 지원 7년 경오(1270)까지는 730년이니, 만약 천제의 말처럼 7
일 후에 천궁으로 돌아갔다고 하면 심감선사가 환도할 때 가져다 바친 것은 아마 진짜
불아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해 봄, 왕은 환도하기 전에 대궐안 제종(諸宗)의 유명한 중들을 모아 불아와
사리를 빌어 구하기에 정성과 성심을 다했지만, 하나도 얻지 못했으니 7일 기한이 되
어 하늘로 올라간 듯하다. 지원 21년 갑신(1284)에 국청사의 금탑을 보수했다. 이에
충렬왕은 장목왕후와 함께 묘각사에 행차하여 신도들을 모아 경하하고 찬미했다. 끝나
자 심감이 바친 불아와 낙산의 수정 염주와 여의주를 군신과 여러 신도들이 모두 함께
경배한 뒤에 금탑 안에 넣었다.
나도 또한 이 모임에 참여하여 이른바 불아라고 하는 것을 친히 보았는데 그 길
이는 3치 가량 되고, 사리는 없었다. 무극(일연의 제자)이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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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2.11.11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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