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하이데거의 전통형이상학에 대한 비판과 형이상학적 물음의 전환>>
형이상학의 종말(극복)과 無/ 형이상학의 대상으로서의 무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존재자 대신 無, 존재자의 超出, 존재의 개방성, 현존재 자신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 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반페미니즘
1. 들어가는 말
2. {동물발생론}에서의 여성의 재생산과 질료적 역할
3. {정치학}에서의 여성의 본성과 사회적 지위
4. 맺음말
형이상학의 종말(극복)과 無/ 형이상학의 대상으로서의 무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존재자 대신 無, 존재자의 超出, 존재의 개방성, 현존재 자신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 이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반페미니즘
1. 들어가는 말
2. {동물발생론}에서의 여성의 재생산과 질료적 역할
3. {정치학}에서의 여성의 본성과 사회적 지위
4. 맺음말
본문내용
하지만 불완전(atelos)하다"(Pol.1260a11-14)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완전한 인간인 남자는 당연히 이성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여자와 아이도 비록 제한되었기는 하지만 분명히 이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단지 노예만이 이성을 갖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여자는 비록 노예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보다도 못하다. 여기서 아이가 '불완전'하다는 말은 단지 지금은 완성 혹은 궁극적 목적(telos)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이는 아직 성숙하지 못해 이성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지만, 나중에 완전히 성장하게 되면 충분히 이성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아이'는 남아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아는 성숙되거나 혹은 성숙되지 않거나 궁극적으로 남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완벽하게 이성적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는 '아이'보다도 못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이 이성을 가졌기는 하지만 '지배적이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포텐바흐(Fortenbaugh)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의 영혼의 부분들간의 권위가 결여된(lack ofauthority) 것을 언급한다고 한다. 여성은 남성과 같이 심사숙고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약하며 감정에 의해 쉽사리 압도될 수 있기 때문에 영혼의 욕구나 욕망에 대해 충분히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여성이 이성적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배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정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분명하다. {동물의 역사}에서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눈물을 흘리기 쉬우며 질투도 많고 낙담도 잘한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과도한 감정에 의해 이성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정적이라는 주장이 반드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이성적이라는 주장을 반증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자나 여자는 모두 이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지배적이지 못하다고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성은 감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일 수 있으며, 또한 남성도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성이 감정적이라고 해서 이성적이지 못하거나 또는 덜 이성적이라는 주장은 단순 논리적 사고이다. 가령 우리는 한편으로 남의 고통에 동참하여 함께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편으로 얼마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이성적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감정적이라고 해서 욕구나 욕망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아주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욕구를 잘 지배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가령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여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재산이나 자신의 삶을 사회복지 사업에 바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희생하고 공동체의 합리적 목적을 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 욕구에 지배되어 비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욕구를 중립적으로 말하고 있다. 욕구는 감각과 연합하여 작용할 수도 있고 이성과 연합하여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 욕구(episteme)와 이성적 욕구(bouleusis)를 구별하여 사용한다. 욕구도 이성적일 수도 있고 본능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욕구에 의해 통제되지 못한 상태가 반드시 비이성적 상태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욕구가 이성적이라면 통제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이 감정이나 욕구에 의해 압도당하기 때문에 이성이 지배적이지 못한다는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안에서 자체 모순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더욱이 여성이 더 감정적이라고 해서 덜 이성적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4. 맺음말
아리스토텔레스의 반페미니즘적 주장은 일차적으로 생물학적인 논의에 기초하여 다양한 성차별적인 논의를 전개하면서 형이상학적 원리를 도입하여 정당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적인 기준에 비추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물학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나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반페미니즘적 견해를 그의 보편적인 철학적 이론 체계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인지, 또는 그리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연관하여 보아야 할 것인지를 구별해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역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의 여성혐오적 전통에 비추어 약간 더 진전된 주장을 한다는 것만을 지적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는 그가 잠시라도 플라톤처럼 학문적인 관점에서 철저하게 여성에 대한 자신의 시대적 편견을 비판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당시의 그리스 사회의 통념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의식을 발견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형이상학적 원리에 맞취 적당한 선에서 재단하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그의 이론은 당시의 일반적 견해인 범생설이나 전생설보다는 훨씬 혁신적이며 진보적 견해일 수 있다. 또한 비록 그가 반페미니즘적인 주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철학적 이론 자체에 여성주의적 관점과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입장이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학문의 발전사적인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지나치게 반페미니즘의 원조로 몰아가는 경향에 대해 정확하게 재평가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람이 가장 먼저 반여성주의적 발언을 했느냐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철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서구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또한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이후의 중세, 근세, 현대를 거쳐 여성들의 삶을 규정짓는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이 대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완전한 인간인 남자는 당연히 이성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여자와 아이도 비록 제한되었기는 하지만 분명히 이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단지 노예만이 이성을 갖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여자는 비록 노예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보다도 못하다. 여기서 아이가 '불완전'하다는 말은 단지 지금은 완성 혹은 궁극적 목적(telos)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이는 아직 성숙하지 못해 이성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지만, 나중에 완전히 성장하게 되면 충분히 이성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아이'는 남아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아는 성숙되거나 혹은 성숙되지 않거나 궁극적으로 남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완벽하게 이성적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는 '아이'보다도 못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이 이성을 가졌기는 하지만 '지배적이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포텐바흐(Fortenbaugh)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의 영혼의 부분들간의 권위가 결여된(lack ofauthority) 것을 언급한다고 한다. 여성은 남성과 같이 심사숙고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약하며 감정에 의해 쉽사리 압도될 수 있기 때문에 영혼의 욕구나 욕망에 대해 충분히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여성이 이성적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배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정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분명하다. {동물의 역사}에서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눈물을 흘리기 쉬우며 질투도 많고 낙담도 잘한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과도한 감정에 의해 이성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정적이라는 주장이 반드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이성적이라는 주장을 반증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자나 여자는 모두 이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지배적이지 못하다고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성은 감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일 수 있으며, 또한 남성도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성이 감정적이라고 해서 이성적이지 못하거나 또는 덜 이성적이라는 주장은 단순 논리적 사고이다. 가령 우리는 한편으로 남의 고통에 동참하여 함께 괴로워하면서도 다른 편으로 얼마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이성적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감정적이라고 해서 욕구나 욕망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아주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욕구를 잘 지배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가령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여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재산이나 자신의 삶을 사회복지 사업에 바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개인의 이기적 욕구를 희생하고 공동체의 합리적 목적을 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 욕구에 지배되어 비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욕구를 중립적으로 말하고 있다. 욕구는 감각과 연합하여 작용할 수도 있고 이성과 연합하여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 욕구(episteme)와 이성적 욕구(bouleusis)를 구별하여 사용한다. 욕구도 이성적일 수도 있고 본능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욕구에 의해 통제되지 못한 상태가 반드시 비이성적 상태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욕구가 이성적이라면 통제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이 감정이나 욕구에 의해 압도당하기 때문에 이성이 지배적이지 못한다는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안에서 자체 모순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더욱이 여성이 더 감정적이라고 해서 덜 이성적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이다.
4. 맺음말
아리스토텔레스의 반페미니즘적 주장은 일차적으로 생물학적인 논의에 기초하여 다양한 성차별적인 논의를 전개하면서 형이상학적 원리를 도입하여 정당화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적인 기준에 비추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물학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나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반페미니즘적 견해를 그의 보편적인 철학적 이론 체계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인지, 또는 그리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연관하여 보아야 할 것인지를 구별해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역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의 여성혐오적 전통에 비추어 약간 더 진전된 주장을 한다는 것만을 지적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는 그가 잠시라도 플라톤처럼 학문적인 관점에서 철저하게 여성에 대한 자신의 시대적 편견을 비판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당시의 그리스 사회의 통념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의식을 발견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형이상학적 원리에 맞취 적당한 선에서 재단하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그의 이론은 당시의 일반적 견해인 범생설이나 전생설보다는 훨씬 혁신적이며 진보적 견해일 수 있다. 또한 비록 그가 반페미니즘적인 주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철학적 이론 자체에 여성주의적 관점과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입장이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학문의 발전사적인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지나치게 반페미니즘의 원조로 몰아가는 경향에 대해 정확하게 재평가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람이 가장 먼저 반여성주의적 발언을 했느냐는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철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서구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또한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이후의 중세, 근세, 현대를 거쳐 여성들의 삶을 규정짓는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이 대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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