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 이호빈 목사의 성서이해: 아가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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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아가서 연구사

III. 이용도 목사의 아가서 이해와 신비주의

IV. 우원의 성서이해: 아가서를 중심으로

V. 맺는 말

본문내용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 앞에 앉아 있는 사실 자체를 기적으로 보면서 그 기적 사건을 실존적 상황의 범주에서 이해한다:
여러분! 그 당시 유대 사회의 빈곤을 보면 남을 수가 있습니까? 남는 것이 있으면 주머니에 뒀다가 다음에 먹어야지. "여기 남았어요"하고 내 놀 수가 있습니까? 이 들판이 천국이 아니 고 어디가 천국입니까? 하늘나라가 아니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호빈, "슬기로운 종의 모습", 『끝날의 징조와 사는 길』, (우원기념사업회 편, 1992), 188.
비록 우원이 수도원적 생활을 동경하고 강원도 흘리산에 선돌교회와 농민복음학원을 세웠지만 그것은 현실도피적인 수도원주의에서 기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중앙신학교를 세워 평신도교육에 앞장섰으며, 현실교회의 교파주의와 맹종적 교리절대화에 강도 높은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교회일치 운동과 평신도운동, 초교파주의는 그가 초현실주의자로 남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김흡영 교수는 우원을 "아래서 보는 신학운동"가로 보면서 그가 실천적 목회자요, 엘리트 학자보다는 평신도 및 농민신앙운동을 앞세운 교회지도자로 간주한다. 김흡영, "`예수의 미련한 것으로' 한국 평신도 신학의 과제: 우원의 평신도신학 운동의 의의", 『우원』 제 1 집, 58.
이 점에서 볼 때 십자가의 형틀을 지고 죽음으로 그리스도와 합일을 이루고자 했던 지나친 열정주의자인 이용도와는 구별되며, 우원의 성서이해 역시 예수중심의 합리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변선환은 우원과 이용도의 신비주의 사상을 일원화하는 경향이 있다. 참조. 변선환, "샤론의 꽃 예수-우원 이호빈 목사 추모설교-", 『끝날의 징조와 사는 길』, 600. 안병무 박사 역시 우원의 성서해석을 "비문자주의" "자연주의" 등으로 정의하면서 "꽃을 볼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심령"을 역설한 우원을 종교학적 범주에서 신비주의에 속한다고 말한다. 안병무, "우원의 신학적 조명" 『우원』 제 1 집, 30. 윤춘병 감독 또한 "고난의 예수와 신비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십자가의 피만이 절대요건"이라는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가 우원에게 전수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 예로 우원의 "피, 불, 연기"라는 설교를 든다. 윤춘병, "우원 이호빈 목사의 신앙과 사상", 『우원』 제 1 집, 33-34. 그러나 필자는 우원이 이용도의 신비주의사상을 어느 정도 수용했을 지라도 그 자신을 신비주의자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원의 일기나 설교문은 이용도의 그것과 판이한 분위기를 견지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다분히 이성적이며 동시에 예수중심적인 보편적 구원론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원을 신비주의자로 분리한다면 기독교인 모두가 거의 신비주의자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토대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자 한다. 아가서 강의에 나타난 우원의 성서이해는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첫째로, 우원은 배타적 성서해석을 거부하며, 성서해석의 자유함과 책임성을 강조한다.
김흡영은 이를 우원의 "예수적 혁신주의, 예수중심적 보편주의 또는 개방주의"라고 평가한다. 김흡영, "우원의 평신도신학 운동의 의의", 58.
그는 청중에게 자신이 아가서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고 있음에 대한 이해를 우선 촉구한다. 동시에 설교자나 청중이 모두 자유함으로 만날 것을 강조한다. 우원의 자유함과 탈교리적 신학의 현실적용은 그의 부활에 대한 신학적 소신에도 나타난다. 그는 당시 주변의 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화장법을 따르면서 매장법과 부활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국토면적이 좁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매장법은 더이상 장려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믿고 모친을 화장하였으며, 자신 역시 화장을 원했던 것이다. 이는 부활이 육신 그대로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믿지 않은 그의 신학의 결정체였다. 이 점에서 볼 때 그는 위대한 신학자요 실천적 목회자였다.
허도, "빛으로 산 사람 우원", 26-28.
둘째로, 우원의 성서이해는 실존적이었다.
"실존적 해석의 전제는 `해석자 자신의 삶과의 관계가 직접적으로나 혹은 간접적으로나 간에 본문에 표현된 주제에 관계된다.'" R. Bultmann, "The Problem of Hermeneutics", Essays, trans. by J. C. G. Greig, (London SCM Press, Ltd., 1955), 238. 『염필형, 설교신학: 복음·상황·해석』 (성광문화사, 1987), 172에서 인용. 설교에 있어서 실존주의적 추구에 대한 그의 견해를 참고하라. 상게서, 169-178.
언제나 그의 설교는 자신이 겪은 삶의 결정체였다. 그러기에 그의 설교에는 가식이 없으며 교리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냉철한 이성과, 수준급 이상인 학문의 경지에서, 오직 예수중심의 메시지를 소신있게 전달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성서를 해석할 때마다 성서와 자신의 삶을 분리시키지 않고 생생한 일치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그의 성서이해는 다분히 실존적이다. 철저히 인간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우원의 설교는 어지까지나 예수진리의 부분적 계시임을 직시하고 있음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비교. 아가서 2:9). 이러한 실존주의적 경향은 그로 하여금 그의 설교에서 한국적인 상황과 우리민족의 애환을 자유자재로 인용하게 하였던 것이다.
세째로, 우원의 성서이해는 미래향적이었다. 우원은 성서해석이 과거의 전통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아가서 강의를 전통적인 해석학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이었다. 불의한 현실에서 과감히 떠나는 용기를 강조한 우원은 미래의 신학을 견지한다(비교. 아가서 1:6).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닌 주님과의 만남을 위한 순례의 행진이야말로 현실의 부조리와 불의를 직시하게 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게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우원은 자신의 목회사역을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하는 일이란 백년 후쯤 가서야 가부(可否)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니 당장에 잘되고 못 되는 일의 결과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옳은 길인줄로 믿고, 있는 힘을 기울이는 것 뿐이다.
상게서,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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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02.08
  • 저작시기2003.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0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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