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1.들뢰즈 <가따리>이론
본론
1.몇 가지 개념에 대한 재검토: `욕망`, `배치`, `미시정치학`
1)욕망
2)배치(agencement), 그리고 배치의 미시정치학
2.왜 미시파시즘이 문제인가
결론
1.들뢰즈 <가따리>이론
본론
1.몇 가지 개념에 대한 재검토: `욕망`, `배치`, `미시정치학`
1)욕망
2)배치(agencement), 그리고 배치의 미시정치학
2.왜 미시파시즘이 문제인가
결론
본문내용
라 증식, 병치, 분기에 의해 증대'시키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미시적 수준에서 이러한 코뮤니즘으로 직접 이행하라는 것은, 단번에 유토피아적 기획을 완성하라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 가따리는 "기원, 본성, 초월성으로 소급해 들어가는 모든 형태의 유토피아적 향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라고 말한다. 오히려, 조직적으로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권력의 기호가 아닌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체집단은 하나의 고정된 집단 유형이 아니며, 언제라도 예속집단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들뢰즈, 가따리는 이후에는 주체집단과 예속집단이라는 집단 범주보다는 배치 개념을 선호한다. 문제는 어떠한 관계를 구성해 나갈 것인가라는 배치의 문제이며, 이 때 배치는 완전한 적대의 소멸이라는 궁극목적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거시 권력의 지주(支柱)이자 구체적 효과로서 집단 속에서 발아하는 모든 파시즘적 권력과 투쟁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성과 형식적 합의를 강조하면서 활동가와 대중, 남성과 여성, 장년층과 청년층 등 관계의 다양한 수위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입장들 및 관점들간의 충돌과 모순을 은폐, 억압하고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독특한 상황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다수자의 권력을 분석하고 또 그러한 권력과 투쟁하면서 지배적 전통의 위계나 분리차별을 침식시킬 수 있는 전혀 다른 유형의 배치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리고 권위를 획득하는 미시 파시즘 그리고 '진보진영'내로 끊임없이 이식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권력형태들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요구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노동으로부터 욕망을 단절시키고 내핍과 희생을 강요하는 자본의 금욕주의적 논리를 그대로 자신의 운동과 조직 속에 답습하고 있는 한에서, 활동가 집단이 "금기나 의례를 통해 리더쉽, 자기 동일시, 암시효과, 거부, 희생양 등 집단을 자기 자신 속으로 폐쇄해버리게 하는 현상들"을 작동시키면서 규율과 훈육의 메커니즘에 기초한 예속집단의 배치를 재생산하는 한에서, 변혁 주체를 자임하는 남성이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남근지배자로 스스로를 확립하는 한에서, 미시파시즘을 끊임없이 발견, 분석하고 이에 대항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매 순간 관계 구성의 매 국면마다 부르주아적 권력의 주체성 양식과 단절하고 새로운 주체성 양식을 창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결론
1.나오며...
지금까지 들뢰즈, 가따리의 저작을 정치적이고 윤리적으로 독해하고자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욕망, 배치, 미시정치학, 미시파시즘의 개념들을 우리의 이론적 현실적 지형에 개방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미시파시즘에 대한 투쟁이 자본주의, 가부장주의, 국가주의와 발본적으로 단절하는 새로운 주체성 양식을 창조하는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는 단번의 구조 혁명으로 완수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권력 효과에 대한 매 번의 구체적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원한 개량주의'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당장 미시적 층위에서 '부르주아적 주체성 양식을 즉각 폐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통상적 의미의 개량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주체성 양식을 창조하는 문제는 단번에 주체들간의 조화로운 삶에 의한 자율적 공간의 창조로 귀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시즘의 문제는 비대칭적 권력관계 혹은 힘의 불균형 속에서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시파시즘의 문제설정은 소수자화의 관점과 연계된다. 이 때 소수자라는 것은 수적으로 소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피지배의 관계에서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억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는 상대적으로 더 큰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작은 양뿐만 아니라 더 큰 양도 그것과의 관계에서 소수자라고 말해지는 상태나 표준의 결정을 의미한다. 다수성이 지배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 아동, 동물, 식물, 분자는 소수자이다." 또한 소수자화라는 것은 지금까지 백인, 성인, 남성 등 모든 다수자의 편에서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특권으로 유지되어 왔던 모든 권력의 형태를 의문시하고, 소수자의 편에 섦으로써 지배의 효과를 전복하고 기존의 권력관계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非)파시스트적 삶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소수자화(devenir-minoritaire)와, "모든 소수자화의 열쇠"가 되는 여성화(devenir-femme)는 반드시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파시즘은 타인에 대한 권력 행사와 지배를 욕망하는 보스(boss) 파시즘, 모든 사안을 '조직 보존 논리' 혹은 '조직력 강화'의 논리에 따라 걸러내면서 다양한 욕망을 억제하는 조직 파시즘, 연령, 성, 능력에 따라 위계를 나누고 이 위계에 불변의 권위를 부여하는 위계주의, 권위주의, 능력주의 등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지만, 이 모든 것은 종종 '남근지배체제'와 착종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태도로부터 파시즘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작업은 지배적 다수에게 부여되어 왔던 모든 특권을 의문시하고 전복하는 행동과 함께 가야하며, 이 전복의 대상에 가부장주의, 남성우월주의와 성차별주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남성들이 일상적 관계의 수위에서 소수자들의 희생과 예속을 대가로 자신이 누리는 지배적 특권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 지배 효과의 수혜자나 공모자로서 가담하기를 계속한다면, 그 남성들은 다수자로서의 자신의 남성우월주의적 관점을 자신이 주변으로 은연중에 투사할 것이며, 그 경우, 그는 권력의 파시즘적 극의 일부로서 작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펠릭스 가따리, 윤수종 편, [제도적 실천과 정치],
이진경, [공간-기계와 공간적 신체: 공간 기계 이론의 몇 가지 기초
네그리 & 하트, {디오니소스의 노동 1}, 이원영 역, 갈무리
가따리, [저는 아이디어 도둑입니다],
그렇다면, 미시적 수준에서 이러한 코뮤니즘으로 직접 이행하라는 것은, 단번에 유토피아적 기획을 완성하라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 가따리는 "기원, 본성, 초월성으로 소급해 들어가는 모든 형태의 유토피아적 향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라고 말한다. 오히려, 조직적으로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권력의 기호가 아닌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체집단은 하나의 고정된 집단 유형이 아니며, 언제라도 예속집단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들뢰즈, 가따리는 이후에는 주체집단과 예속집단이라는 집단 범주보다는 배치 개념을 선호한다. 문제는 어떠한 관계를 구성해 나갈 것인가라는 배치의 문제이며, 이 때 배치는 완전한 적대의 소멸이라는 궁극목적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거시 권력의 지주(支柱)이자 구체적 효과로서 집단 속에서 발아하는 모든 파시즘적 권력과 투쟁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성과 형식적 합의를 강조하면서 활동가와 대중, 남성과 여성, 장년층과 청년층 등 관계의 다양한 수위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입장들 및 관점들간의 충돌과 모순을 은폐, 억압하고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독특한 상황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다수자의 권력을 분석하고 또 그러한 권력과 투쟁하면서 지배적 전통의 위계나 분리차별을 침식시킬 수 있는 전혀 다른 유형의 배치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리고 권위를 획득하는 미시 파시즘 그리고 '진보진영'내로 끊임없이 이식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권력형태들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요구하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노동으로부터 욕망을 단절시키고 내핍과 희생을 강요하는 자본의 금욕주의적 논리를 그대로 자신의 운동과 조직 속에 답습하고 있는 한에서, 활동가 집단이 "금기나 의례를 통해 리더쉽, 자기 동일시, 암시효과, 거부, 희생양 등 집단을 자기 자신 속으로 폐쇄해버리게 하는 현상들"을 작동시키면서 규율과 훈육의 메커니즘에 기초한 예속집단의 배치를 재생산하는 한에서, 변혁 주체를 자임하는 남성이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남근지배자로 스스로를 확립하는 한에서, 미시파시즘을 끊임없이 발견, 분석하고 이에 대항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매 순간 관계 구성의 매 국면마다 부르주아적 권력의 주체성 양식과 단절하고 새로운 주체성 양식을 창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결론
1.나오며...
지금까지 들뢰즈, 가따리의 저작을 정치적이고 윤리적으로 독해하고자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욕망, 배치, 미시정치학, 미시파시즘의 개념들을 우리의 이론적 현실적 지형에 개방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미시파시즘에 대한 투쟁이 자본주의, 가부장주의, 국가주의와 발본적으로 단절하는 새로운 주체성 양식을 창조하는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는 단번의 구조 혁명으로 완수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권력 효과에 대한 매 번의 구체적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원한 개량주의'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당장 미시적 층위에서 '부르주아적 주체성 양식을 즉각 폐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통상적 의미의 개량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주체성 양식을 창조하는 문제는 단번에 주체들간의 조화로운 삶에 의한 자율적 공간의 창조로 귀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파시즘의 문제는 비대칭적 권력관계 혹은 힘의 불균형 속에서 다수자가 소수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시파시즘의 문제설정은 소수자화의 관점과 연계된다. 이 때 소수자라는 것은 수적으로 소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피지배의 관계에서 권력으로부터 배제되고 억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는 상대적으로 더 큰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작은 양뿐만 아니라 더 큰 양도 그것과의 관계에서 소수자라고 말해지는 상태나 표준의 결정을 의미한다. 다수성이 지배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 아동, 동물, 식물, 분자는 소수자이다." 또한 소수자화라는 것은 지금까지 백인, 성인, 남성 등 모든 다수자의 편에서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특권으로 유지되어 왔던 모든 권력의 형태를 의문시하고, 소수자의 편에 섦으로써 지배의 효과를 전복하고 기존의 권력관계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非)파시스트적 삶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소수자화(devenir-minoritaire)와, "모든 소수자화의 열쇠"가 되는 여성화(devenir-femme)는 반드시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파시즘은 타인에 대한 권력 행사와 지배를 욕망하는 보스(boss) 파시즘, 모든 사안을 '조직 보존 논리' 혹은 '조직력 강화'의 논리에 따라 걸러내면서 다양한 욕망을 억제하는 조직 파시즘, 연령, 성, 능력에 따라 위계를 나누고 이 위계에 불변의 권위를 부여하는 위계주의, 권위주의, 능력주의 등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지만, 이 모든 것은 종종 '남근지배체제'와 착종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태도로부터 파시즘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작업은 지배적 다수에게 부여되어 왔던 모든 특권을 의문시하고 전복하는 행동과 함께 가야하며, 이 전복의 대상에 가부장주의, 남성우월주의와 성차별주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남성들이 일상적 관계의 수위에서 소수자들의 희생과 예속을 대가로 자신이 누리는 지배적 특권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 지배 효과의 수혜자나 공모자로서 가담하기를 계속한다면, 그 남성들은 다수자로서의 자신의 남성우월주의적 관점을 자신이 주변으로 은연중에 투사할 것이며, 그 경우, 그는 권력의 파시즘적 극의 일부로서 작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펠릭스 가따리, 윤수종 편, [제도적 실천과 정치],
이진경, [공간-기계와 공간적 신체: 공간 기계 이론의 몇 가지 기초
네그리 & 하트, {디오니소스의 노동 1}, 이원영 역, 갈무리
가따리, [저는 아이디어 도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