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돌무지무덤
2.256 널무덤 청동기 인듯..
-고인돌 변천과정
-남방식
-북방식
-탁자식
-바둑판식
-위석식
-묘석식 (묘표식)
-굴석식
-경사식
-탑파식
3.고조선의 무덤
-후기 청동기 시대의 강상무덤, 누상무덤
2.256 널무덤 청동기 인듯..
-고인돌 변천과정
-남방식
-북방식
-탁자식
-바둑판식
-위석식
-묘석식 (묘표식)
-굴석식
-경사식
-탑파식
3.고조선의 무덤
-후기 청동기 시대의 강상무덤, 누상무덤
본문내용
地) 등지에서 볼 수 있다.
탑파식
탑파식 고인돌은 커다란 덮개돌이 위아래 이층으로 겹쳐있는 고인돌을 말하는데, 개석식 고인돌과 바둑판식 고인돌이 복합되면서 만들어진 형식으로, 불교(佛敎) 석탑(石塔)의 기원(基源)이 되었다. 보통 윗층 덮개돌과 아랫층 덮개돌로 구분되며, 아래 덮개돌이 위 덮개돌의 한쪽 귀퉁이에 물려있어 약간 기울어져 있거나, 또는 아래 덮개돌이 두쪽으로 깨어져있으며, 또는 아예 위아래 덮개돌이 서로의 간격을 두고 나란하게 늘어져, 2기의 덮개돌로 여기기도 한다. 이같은 이층구조는 경기(京畿) 용인(龍仁) 상리(上里, 上下里) 고인돌을 통하여 보면, 원래 탁자식 고인돌의 윗 덮개돌과 그 아래에 깔린 넙적하고 길다란 판석 굄돌 2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덮개돌이 무덤방에서 벗겨져 옆으로 밀려져있거나, 두조각으로 깨어진 덮개돌이 복합되면서, 경기(京畿) 안산(安山) 일동(一洞, 옛 始興 楊上里에서 移轉) 고인돌처럼 이층 구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바둑판식 고인돌의 아래 받침돌들이 윗 덮개돌만큼 커진 고인돌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특히 경북(慶北) 선산(善山) 도리사(桃李寺)에서는 가파른 산비탈에 커다란 덮개돌 아래에 매우 커다란 4개의 알꼴 받침돌이 고여진 고인돌이 있으며, 인도(印度) 남부 데칸고원의 상카라파람(Sankaraparam)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인돌이 발견된다. 이같은 탑파식 고인돌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북도 등 주로 중부 내륙지방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http://gochang.chonbuk.kr/dolmen/sub01/page01_03_10.html
3.고조선의 무덤
후기 청동기 시대의 강상무덤, 누상무덤
초기 고조선 시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순장제도가 있었다. 이는 요동반도 남단의 여대시(旅大市)에서 조사된 강상무덤과 누상무덤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순장은 인간의 의식과 관계되는 것으로 즉 죽어서도 살아서와 같은 생활을 누린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평소 거느리던 사람들을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다. 이로써 당시에는 지배계급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순장을 당할 정도로 장악 당한 피지배계급이 현실에 널리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신적 지배가 강한 고대 사회의 성격이 이해된다.
강상무덤은 기원전 8-7세기 정도의 것으로 추정하는 데 둥근 언덕 위에 돌을 쌓아서 동서길이 28m 남북너비 20m정도 되는 무덤 구역을 만들고 그 안에 20여 개의구덩이를 만든 다음 돌을 쌓은 돌무지 무덤이다. 무덤 구역 안의 바닥에는 돌줄에 의하여 구획이 지어졌으며 무덤 주인이 묻혔던 돌곽을 중심으로 순장된 사람들의 구덩이들은 모두 돌 곽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다.
이 무덤에는 순장 당한 백 수십 명 분의 사람 뼈와 함께 수많은 껴묻거리들이 묻혀 있었다. 불타 없어지고 녹아 버리고 도굴 당했지만 강상 무덤에서는 6자루의 비파형 단검을 비롯한 26개의 청동기와 질그릇, 여성용 머리핀, 팔지, 장신구 등 867점의 유물이 남아있었다.
이 무덤의 주인은 당시로서는 막대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자였을 것이며 순장당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일에 종사했던 듯하다. 비파형 단검, 활촉, 곤봉대가리 등 무기를 껴묻은 구덩이가 있는 가 하면 도끼, 끌, 장신구들을 만드는 데 쓰인 거푸집을 껴묻은 것도 있고, 실뽑기에 쓰인 가락바퀴를 묻은 곳도 있다. 비파형 단검을 묻은 구덩이들 가운데서 중심 돌곽 서쪽으로 약 3.5m의 간격으로 놓인 두 개의 무덤 구덩이들은 바닥에 판돌을 깔고 돌관과 일직선상에 놓인 위치로 보아 무사나 가족들이 묻혔던 것 같다.
강상무덤보다 좀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누상무덤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복판에 놓인 돌곽 들에 각기 2명 분의 사람뼈가 있고 나머지 무덤 구덩이들에는 2-3명 으로부터 15명 분에 이르는 순장 당한 사람뼈가 있다. 이 무덤에서는 단검과 함께 마구류, 수레부속품, 방패, 활촉, 도끼, 끌, 장식품등 160여 점의 청동기가 나왔다.
강상, 누상무덤은 요동 반도 남단이라는 고조선의 주변 지역에 위치하며 이로보아 고조선의 중심지역에는 휠씬 더 강한 권력과 부를 소유한 자들이 적잖이 존재하였으리라 추측된다. 강상, 누상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제품을 보면 당시에 청동제조 기술이 발달하고 가공기술이 더욱 전문화되어 생산력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 달하였고 많은 토지, 노예, 생산도구를 소유한 계급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http://daejin1.daejin.or.kr/home/hslee/gangsang-1.htm
<<250 강상 돌덧널 무덤(강상 석곽묘) >>
연대는 BC 8 - 7 세기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랴오닝성 뤼따시 깐징쯔구(요동성 여대시 감정자구) 허우무청역 북쪽 400m 지점의 언덕 위에 있다. 묘역은 동서 28, 남북 20의 장방형인데, 3개의 묘역으로 나뉘어 있다. 23개의 무덤 구덩이가 있는데, 7호 무덤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7호 무덤은 장방형의 큰 판돌을 잘 다듬어 바닦에 깔고 한 가운데에는 널을 올려 놓기 위한 턱을 만들었다. 나머지 무덤은 바닦에 자갈을 작은 판돌을 깔았을 뿐이다.
이 유적에서는 무기, 치레 거리를 비롯한 청동기, 석기, 질그릇 등 20여 종 87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유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파형 단검인데, 주된 특징은 검몸과 검자루 및 검자루 맞추개를 따로 만들어 조립하여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형식은 고조선 지역의 특징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깡상 무덤의 비파형 단검 문화는 이보다 앞선 시기인 수앙황(쌍방) 유적이나 얼따오허쯔(이도하자) 유적의 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문화이다.
질그릇은 모두 바탕흙에 모래를 섞은 갈색 그릇이다. 이 가운데 키가 낮고 겹아구리가 넓은 단지는 미송리식 단지의 고유한 입술 모양의 덧붙이가 있다. 이처럼 청동기 이후 가장 앞섰던 고조선 문화는 그 주변의 후진국이던 부여, 고구려 등이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http://my.dreamwiz.com/jabcho89/ko-data/cocept/kht-text/201/tt-2050.htm
탑파식
탑파식 고인돌은 커다란 덮개돌이 위아래 이층으로 겹쳐있는 고인돌을 말하는데, 개석식 고인돌과 바둑판식 고인돌이 복합되면서 만들어진 형식으로, 불교(佛敎) 석탑(石塔)의 기원(基源)이 되었다. 보통 윗층 덮개돌과 아랫층 덮개돌로 구분되며, 아래 덮개돌이 위 덮개돌의 한쪽 귀퉁이에 물려있어 약간 기울어져 있거나, 또는 아래 덮개돌이 두쪽으로 깨어져있으며, 또는 아예 위아래 덮개돌이 서로의 간격을 두고 나란하게 늘어져, 2기의 덮개돌로 여기기도 한다. 이같은 이층구조는 경기(京畿) 용인(龍仁) 상리(上里, 上下里) 고인돌을 통하여 보면, 원래 탁자식 고인돌의 윗 덮개돌과 그 아래에 깔린 넙적하고 길다란 판석 굄돌 2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덮개돌이 무덤방에서 벗겨져 옆으로 밀려져있거나, 두조각으로 깨어진 덮개돌이 복합되면서, 경기(京畿) 안산(安山) 일동(一洞, 옛 始興 楊上里에서 移轉) 고인돌처럼 이층 구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바둑판식 고인돌의 아래 받침돌들이 윗 덮개돌만큼 커진 고인돌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특히 경북(慶北) 선산(善山) 도리사(桃李寺)에서는 가파른 산비탈에 커다란 덮개돌 아래에 매우 커다란 4개의 알꼴 받침돌이 고여진 고인돌이 있으며, 인도(印度) 남부 데칸고원의 상카라파람(Sankaraparam)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인돌이 발견된다. 이같은 탑파식 고인돌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북도 등 주로 중부 내륙지방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http://gochang.chonbuk.kr/dolmen/sub01/page01_03_10.html
3.고조선의 무덤
후기 청동기 시대의 강상무덤, 누상무덤
초기 고조선 시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순장제도가 있었다. 이는 요동반도 남단의 여대시(旅大市)에서 조사된 강상무덤과 누상무덤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순장은 인간의 의식과 관계되는 것으로 즉 죽어서도 살아서와 같은 생활을 누린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평소 거느리던 사람들을 함께 장사지내는 것이다. 이로써 당시에는 지배계급에게 완전히 예속되어 순장을 당할 정도로 장악 당한 피지배계급이 현실에 널리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신적 지배가 강한 고대 사회의 성격이 이해된다.
강상무덤은 기원전 8-7세기 정도의 것으로 추정하는 데 둥근 언덕 위에 돌을 쌓아서 동서길이 28m 남북너비 20m정도 되는 무덤 구역을 만들고 그 안에 20여 개의구덩이를 만든 다음 돌을 쌓은 돌무지 무덤이다. 무덤 구역 안의 바닥에는 돌줄에 의하여 구획이 지어졌으며 무덤 주인이 묻혔던 돌곽을 중심으로 순장된 사람들의 구덩이들은 모두 돌 곽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다.
이 무덤에는 순장 당한 백 수십 명 분의 사람 뼈와 함께 수많은 껴묻거리들이 묻혀 있었다. 불타 없어지고 녹아 버리고 도굴 당했지만 강상 무덤에서는 6자루의 비파형 단검을 비롯한 26개의 청동기와 질그릇, 여성용 머리핀, 팔지, 장신구 등 867점의 유물이 남아있었다.
이 무덤의 주인은 당시로서는 막대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자였을 것이며 순장당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일에 종사했던 듯하다. 비파형 단검, 활촉, 곤봉대가리 등 무기를 껴묻은 구덩이가 있는 가 하면 도끼, 끌, 장신구들을 만드는 데 쓰인 거푸집을 껴묻은 것도 있고, 실뽑기에 쓰인 가락바퀴를 묻은 곳도 있다. 비파형 단검을 묻은 구덩이들 가운데서 중심 돌곽 서쪽으로 약 3.5m의 간격으로 놓인 두 개의 무덤 구덩이들은 바닥에 판돌을 깔고 돌관과 일직선상에 놓인 위치로 보아 무사나 가족들이 묻혔던 것 같다.
강상무덤보다 좀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누상무덤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복판에 놓인 돌곽 들에 각기 2명 분의 사람뼈가 있고 나머지 무덤 구덩이들에는 2-3명 으로부터 15명 분에 이르는 순장 당한 사람뼈가 있다. 이 무덤에서는 단검과 함께 마구류, 수레부속품, 방패, 활촉, 도끼, 끌, 장식품등 160여 점의 청동기가 나왔다.
강상, 누상무덤은 요동 반도 남단이라는 고조선의 주변 지역에 위치하며 이로보아 고조선의 중심지역에는 휠씬 더 강한 권력과 부를 소유한 자들이 적잖이 존재하였으리라 추측된다. 강상, 누상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제품을 보면 당시에 청동제조 기술이 발달하고 가공기술이 더욱 전문화되어 생산력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 달하였고 많은 토지, 노예, 생산도구를 소유한 계급이 존재하였을 것이다.
http://daejin1.daejin.or.kr/home/hslee/gangsang-1.htm
<<250 강상 돌덧널 무덤(강상 석곽묘) >>
연대는 BC 8 - 7 세기로 추정되는 이 무덤은 랴오닝성 뤼따시 깐징쯔구(요동성 여대시 감정자구) 허우무청역 북쪽 400m 지점의 언덕 위에 있다. 묘역은 동서 28, 남북 20의 장방형인데, 3개의 묘역으로 나뉘어 있다. 23개의 무덤 구덩이가 있는데, 7호 무덤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7호 무덤은 장방형의 큰 판돌을 잘 다듬어 바닦에 깔고 한 가운데에는 널을 올려 놓기 위한 턱을 만들었다. 나머지 무덤은 바닦에 자갈을 작은 판돌을 깔았을 뿐이다.
이 유적에서는 무기, 치레 거리를 비롯한 청동기, 석기, 질그릇 등 20여 종 87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유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파형 단검인데, 주된 특징은 검몸과 검자루 및 검자루 맞추개를 따로 만들어 조립하여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형식은 고조선 지역의 특징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깡상 무덤의 비파형 단검 문화는 이보다 앞선 시기인 수앙황(쌍방) 유적이나 얼따오허쯔(이도하자) 유적의 문화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문화이다.
질그릇은 모두 바탕흙에 모래를 섞은 갈색 그릇이다. 이 가운데 키가 낮고 겹아구리가 넓은 단지는 미송리식 단지의 고유한 입술 모양의 덧붙이가 있다. 이처럼 청동기 이후 가장 앞섰던 고조선 문화는 그 주변의 후진국이던 부여, 고구려 등이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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