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동양에서의 자연관
자연과 건축과의 관계
쿠로카와 키쇼(黑川 紀章)의 공생이론에 대하여
(참고)
자연의 몇 가지 교훈 및 의미
자연과 건축과의 관계
쿠로카와 키쇼(黑川 紀章)의 공생이론에 대하여
(참고)
자연의 몇 가지 교훈 및 의미
본문내용
의 모순이나 대립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부정(否定)행위가 필연적으로 동반되며, 이를 위해서는 절충적인 중간영역의 존재가 필요하게 된다. 즉 중간영역을 통하여 여과된 각각의 모순과 대립이 새로운 창조를 창출하며, 이 같은 면에서는 이른바 변증법적 지양(止揚)의 개념과도 그 맥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3),4)항의 경우는 두 관계 체계가 기본적으로는 우호 내지는 상호보족 관계를 보이고 있는 경우의 공생적 관계를 의미하며, 기본적으로는 상호에 대한 성역화 및 그것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이 전제되고 있다. 앞의 경우와는 달리 상호간의 적극적인 모순 해결 과정보다는 기존의 성역을 인정한 채 상호보조와 상호인정에 의한 공통항을 확산시키는데 집중되며, 이 같은 면에서 이른바 벡터(vector)적 合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관계 체계가 대립적이던 우호적이던 간에 공생이라 함은 궁극적으로는 그 두 개별 관계에서는 창조될 수 없는 새로운 창조를 지향하고 있으며, 결국 이 같은 새로운 창조 내지는 그 행위자체가 공생으로 귀결되게 된다. 또한 이 같은 공생은 궁극적으로는 5)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자연 생명계라는 본질적 차원에서의 순응관계, 즉 각자의 공생화 된 창조체계에 근거한 순리적 자리매김으로 환원되게 된다.
물론 두 관계 체계의 상태가 대립이던 존중상태이던 간에, 결국은 상호에 대한 최대한의 이해와 긍정이 전제되고 있으며, 새로운 창조를 향한 의지가 존재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대립 혹은 모순 관계에서의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상호존중이나 이해 상태에서보다는 더욱 적극적인 이해와 행위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위의 두 경우가 모두 긍적적 공생이라는 성격이 내재하고 있기는 하나, 특히 앞의 경우를 보다 적극적인 공생의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같은 면에서 볼 때, 결국 공생이론이란 대극적인 상황을 매개 내지는 절충하는 중간영역에 의한 새로운 창조행위, 즉 적극적 공생과 기존의 성역화에 대한 존중에 의한 공통항의 확산에 따른 새로운 창조행위, 즉 긍정적 공생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로 재분류 가능하며, 이 같은 새로운 공생관계가 궁극적으로는 천부적으로 부여받고 부여하는 거대한 생명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매김하는 이른바 생명의 재창조로 귀결되는 것으로 이해 가능하다.
(참고)
자연의 몇 가지 교훈 및 의미
1 공생
2. 조화
인간들은 좀체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숙명적인 피라미드의 기준에 따라 그들의 공존상태를 배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정상에 이르고자하며 다른 사람을 밀어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하늘이 주는 비와 햇살, 미몽의 상쾌함, 하늘의 축복과 사나운 뇌우를 공평하게 받으며 각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초원의 꽃들처럼 사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언제야 인간들이 자연의 이 같은 훌륭한 본보기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3. 본질로서의 자연
산을 깎아 다듬은 돌로 화가 난 시체나 스테이크를 만들어 내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콘스탄틴 브랑쿠시)
반면에 3),4)항의 경우는 두 관계 체계가 기본적으로는 우호 내지는 상호보족 관계를 보이고 있는 경우의 공생적 관계를 의미하며, 기본적으로는 상호에 대한 성역화 및 그것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이 전제되고 있다. 앞의 경우와는 달리 상호간의 적극적인 모순 해결 과정보다는 기존의 성역을 인정한 채 상호보조와 상호인정에 의한 공통항을 확산시키는데 집중되며, 이 같은 면에서 이른바 벡터(vector)적 合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 관계 체계가 대립적이던 우호적이던 간에 공생이라 함은 궁극적으로는 그 두 개별 관계에서는 창조될 수 없는 새로운 창조를 지향하고 있으며, 결국 이 같은 새로운 창조 내지는 그 행위자체가 공생으로 귀결되게 된다. 또한 이 같은 공생은 궁극적으로는 5)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자연 생명계라는 본질적 차원에서의 순응관계, 즉 각자의 공생화 된 창조체계에 근거한 순리적 자리매김으로 환원되게 된다.
물론 두 관계 체계의 상태가 대립이던 존중상태이던 간에, 결국은 상호에 대한 최대한의 이해와 긍정이 전제되고 있으며, 새로운 창조를 향한 의지가 존재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대립 혹은 모순 관계에서의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상호존중이나 이해 상태에서보다는 더욱 적극적인 이해와 행위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위의 두 경우가 모두 긍적적 공생이라는 성격이 내재하고 있기는 하나, 특히 앞의 경우를 보다 적극적인 공생의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같은 면에서 볼 때, 결국 공생이론이란 대극적인 상황을 매개 내지는 절충하는 중간영역에 의한 새로운 창조행위, 즉 적극적 공생과 기존의 성역화에 대한 존중에 의한 공통항의 확산에 따른 새로운 창조행위, 즉 긍정적 공생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로 재분류 가능하며, 이 같은 새로운 공생관계가 궁극적으로는 천부적으로 부여받고 부여하는 거대한 생명계 속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매김하는 이른바 생명의 재창조로 귀결되는 것으로 이해 가능하다.
(참고)
자연의 몇 가지 교훈 및 의미
1 공생
2. 조화
인간들은 좀체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숙명적인 피라미드의 기준에 따라 그들의 공존상태를 배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정상에 이르고자하며 다른 사람을 밀어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하늘이 주는 비와 햇살, 미몽의 상쾌함, 하늘의 축복과 사나운 뇌우를 공평하게 받으며 각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초원의 꽃들처럼 사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언제야 인간들이 자연의 이 같은 훌륭한 본보기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3. 본질로서의 자연
산을 깎아 다듬은 돌로 화가 난 시체나 스테이크를 만들어 내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콘스탄틴 브랑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