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불교
2.기독교(개신교)
3.기독교(구교 또는 천주교)
4.유교
I. 왜 여성이 샤머니즘과 결부되고 있는가?
II. 유교․불교․기독교와 차별되는 무속의 제의적 기능
III. `복수의 메카니즘`을 승화시키는 불교의 법력
2.기독교(개신교)
3.기독교(구교 또는 천주교)
4.유교
I. 왜 여성이 샤머니즘과 결부되고 있는가?
II. 유교․불교․기독교와 차별되는 무속의 제의적 기능
III. `복수의 메카니즘`을 승화시키는 불교의 법력
본문내용
한국영화 속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무속을 깨우는 것에 대해 현대사회를 도피하기 위한 과거에 대한 미화의식일 뿐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잠재해있는 무속은 단지 과거에 대한 환상이 아니다. 오히려 점점 더 파편화 되어 가고 부조화로 신음하는 한국 현대사회에 대한 포용의 신명이다.
무속에 관해서 연구하는 가운데, 한국인 특유의 감정이라 불리는 [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풀이]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무속의례에 관해서 고찰하던 중, 어쩌면 한국인에게 [한-한풀이]는 의례의 장에서만이 아니라, 극히 실천적인 장에서도 나타나는 감정적 영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영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무속적 제의는 주로 기독교적 모더니티에 대한 엑소시즘으로 사용되지만 그 효용성은 늘 회의된다. 샤머니즘은 스펙터클로, 치유법으로 그리고 엑소시즘으로 사용되지만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기독교 혹은 불교적 힘에 의해 억압된다."
"한국 판타스틱 영화에는 유령을 쫓기 위해 불교와 유교의 의식이 등장한다. 가장 열등한 것은 생득적 여성 무당이고 가장 우월한 것은 학자이다. 불교는 그 사이에 위치한다."
"(…) 여자 무당이 행한 엑소시즘은 실패하는 반면, 남자 도사가 집행하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제의는 성공한다. (…) (이는) 조선시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불교와 유교가 공식 질서에서 승인된 반면 무속신앙은 억압되었다는 사실과, 여성 무당과 남성 법사 사이의 신분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민속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연구되어 온 한국 무속의 특성 중 하나가 남성보다는 여성이 무당이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수적으로도 여성이 압도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무당이라는 신분이 여성만의 독점적인 지위는 아니다. 남성이 무당이 되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다만 명칭상 남무를 '박수'라 하고 여성을 '무당'이라 하는데, 보편적으로 무당이라는 말로 통칭되는 것을 보면 여성이 무당으로서 보다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통계적 수치가 아니라, 그렇다면 '왜 남성보다 여성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는가?'에 있다.
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 바로 '복수(復讐)의 메카니즘'이다. 복수란 누군가에게 손해나 피해를 당한 사람이 그만큼의 손해나 피해를 되돌려주는, 비교적 대등한 관계로 행해지는 일종의 사회적 갈등의 해소이다. 그러나 현실이란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불화와 알력을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바로 이때 샤머니즘이 개입을 한다. 즉, 샤머니즘은 개인과 개인에 대한 원망이나 개인과 집단에 대한 한을 푸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최길성의 연구에 따르면 특히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복수의 메카니즘'은 유별난데가 있다. 즉, 산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물론 산 사람끼리의 원한 관계가 '복수의 메카니즘'에 의해서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생자(生者) 사이의 메카니즘은 지극히 약하다. 오히려 누군가에 대한 복수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직접 복수를 시도하기보다는 죽어서 한(恨)을 푸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특히 성격이 소극적이고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살아서는 적대자와 대등한 위치에 서 있기가 불가능하니까 원한에 대한 복수를 죽은 다음으로 미루는 구조이다. 따라서 살아생전에 복수하는 것보다는 죽어서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샤머니즘은 바로 이러한 메카니즘을 대행하거나 해결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무속에 관해서 연구하는 가운데, 한국인 특유의 감정이라 불리는 [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풀이]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무속의례에 관해서 고찰하던 중, 어쩌면 한국인에게 [한-한풀이]는 의례의 장에서만이 아니라, 극히 실천적인 장에서도 나타나는 감정적 영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영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무속적 제의는 주로 기독교적 모더니티에 대한 엑소시즘으로 사용되지만 그 효용성은 늘 회의된다. 샤머니즘은 스펙터클로, 치유법으로 그리고 엑소시즘으로 사용되지만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기독교 혹은 불교적 힘에 의해 억압된다."
"한국 판타스틱 영화에는 유령을 쫓기 위해 불교와 유교의 의식이 등장한다. 가장 열등한 것은 생득적 여성 무당이고 가장 우월한 것은 학자이다. 불교는 그 사이에 위치한다."
"(…) 여자 무당이 행한 엑소시즘은 실패하는 반면, 남자 도사가 집행하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제의는 성공한다. (…) (이는) 조선시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불교와 유교가 공식 질서에서 승인된 반면 무속신앙은 억압되었다는 사실과, 여성 무당과 남성 법사 사이의 신분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민속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연구되어 온 한국 무속의 특성 중 하나가 남성보다는 여성이 무당이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 수적으로도 여성이 압도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무당이라는 신분이 여성만의 독점적인 지위는 아니다. 남성이 무당이 되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다만 명칭상 남무를 '박수'라 하고 여성을 '무당'이라 하는데, 보편적으로 무당이라는 말로 통칭되는 것을 보면 여성이 무당으로서 보다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통계적 수치가 아니라, 그렇다면 '왜 남성보다 여성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는가?'에 있다.
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 바로 '복수(復讐)의 메카니즘'이다. 복수란 누군가에게 손해나 피해를 당한 사람이 그만큼의 손해나 피해를 되돌려주는, 비교적 대등한 관계로 행해지는 일종의 사회적 갈등의 해소이다. 그러나 현실이란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불화와 알력을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바로 이때 샤머니즘이 개입을 한다. 즉, 샤머니즘은 개인과 개인에 대한 원망이나 개인과 집단에 대한 한을 푸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최길성의 연구에 따르면 특히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복수의 메카니즘'은 유별난데가 있다. 즉, 산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물론 산 사람끼리의 원한 관계가 '복수의 메카니즘'에 의해서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생자(生者) 사이의 메카니즘은 지극히 약하다. 오히려 누군가에 대한 복수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직접 복수를 시도하기보다는 죽어서 한(恨)을 푸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특히 성격이 소극적이고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살아서는 적대자와 대등한 위치에 서 있기가 불가능하니까 원한에 대한 복수를 죽은 다음으로 미루는 구조이다. 따라서 살아생전에 복수하는 것보다는 죽어서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샤머니즘은 바로 이러한 메카니즘을 대행하거나 해결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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