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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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라크전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이라크는?

2. 이라크 전쟁 일지

3. 이라크전의 이모저모

4. TV3사 이라크전 보도 분석, `...전쟁분위기 과대포장`

5. 전세계서 이라크전 항의 시위 (2003.04.11)


6. [이라크戰] `2차대전의 정신적 외상 재발 우려`

7.[바그다드 함락, 그 이후] 이라크전 인적 피해 참상

본문내용

70여명은 최근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인디언 부족들 사무실에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선배 피스티와 일병의 추모식과 장례식에 쓸 수 있도록 각 부족들의 깃발이나 휘장을 보내줄 것을 호소했다. 유럽 이주민들에게 조상들을 살육 당하고, 땅마저 빼앗긴 채 살아온 아메리카 인디언들. 그들의 자손들은 유럽 이주민 후손들이 일으킨 또 다른 전쟁에서 죽어간 피스티와 일병을 ‘전사(戰士)’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라크 소년 알리압바스
연합군 공습으로 일가친척 사망 “의사가 꿈인데” 두 팔 잃고 ‘몸부림’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어요. 저는 전쟁이 무서웠어요. 미군들은 왜 우리처럼 가난한 집에도 폭격을 한 것인가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시내 킨디병원에 입원해 있는 올해 12세 소년 알리 압바스는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하기 직전 미·영 연합군의 공습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임신 5개월째이던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그리고 숙모와 사촌 3명 등 7명의 친척이 목숨을 잃었다. 잃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가슴까지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두 팔은 온 데 간 데 없이 날아가 버렸다.
가족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가 폭격을 맞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알리는 이웃 주민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까맣게 타버린 토르소 같은 몸통 조각 하나뿐이었다. 전쟁은 그의 몸뿐 아니라 인생 전체를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졸지에 천애의 고아가 돼버린 알리는 그 와중에도 “제발 내 두 팔을 돌려줄 수 없느냐”고 울부짖고 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장래 의사가 되고 싶은데 두 팔이 없어졌다”며 “의사 선생님들이 두 팔을 만들어주시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몸부림친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알리의 처참한 모습과 가엾은 사정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해지면서 지구촌 곳곳에선 알리 돕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언론사에는 알리를 위한 성금이 답지하고 있고, 선진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모아지고 있다.
친(親)·반(反) 사담 후세인이라크 종교 지도자 2명
인도적 구호·지원 위해 귀국 다른 성직자들이 흉기로 찔러 살해
지난 4월 10일 이라크 중부 시아파의 성지인 나자프의 한 이슬람 사원에선 그 동안 친(親)후세인 입장에서 사원을 관리해온 성직자와 영국에서 귀국한 반(反)후세인 종교지도자 등 2명이 함께 피살됐다.
집권 수니파에 맞서온 이라크 시아파의 양대 가문 중 한 곳의 후손인 압둘 알 코에이(사진)는 10년 간의 런던 망명생활을 마치고, 최근 미군과 함께 귀국해 시아파 주민들에게 미군과 협력할 것을 촉구해왔으며, 이날 사원을 관리해온 성직자인 하이데르 알 카다르를 만나러 갔었다.
그러나 일부 다른 성직자들이 두 사람에게 비난과 욕설을 퍼부었고, 이에 위협감을 느낀 알 코에이가 권총을 꺼내 발사하자 분격한 성직자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모두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알 코에이는 시아파 종교지도자였던 아버지 아야툴라 알 코에이가 1992년 가택 연금상태에서 사망하자 런던으로 망명해 ‘알 코에이 재단’을 이끌어왔고, 미국은 수니파인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홀대를 당해온 시아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친미·친영파인 그를 귀국시켰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시아파이면서 이란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라크이슬람혁명회의(SCIRI)의 지도자 모하메드 하킴(Hakim)의 강력한 견제를 받아왔다. 미국이 친(親)이란 성향의 하킴 대신 알 코에이를 중용하기 위해 귀국시키면서 하킴의 추종자들로부터 노골적인 불만의 대상이 됐었다.
알 코에이의 가족과 친척, 추종자들은 이에 대해 “인도적 구호와 지원을 위해 귀국한 종교지도자를 암살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그의 유지를 받들어 계속 일해 나가겠다고 밝혀 또 다른 충돌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알 코에이의 형제들은 현재 이란에 살고 있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후세인 정권에 의해 피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
미국 NBC 방송 특파원데이비드 블룸
전황 생방송으로 과로 누적 혈액 응고돼 색전증으로 숨져
미국 NBC방송의 아침 뉴스프로 ‘투데이’의 앵커인 데이비드 블룸(39)은 지난 4월 6일 미군 제3보병사단 병사들과 함께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바그다드 남쪽 40㎞ 지점에서 폐 색전증(肺 塞栓症)으로 숨졌다. 종군기자를 자원해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사막의 전장(戰場)을 누비다가 연이은 전황(戰況) 생방송에 따른 과로 누적으로 혈액이 응고되면서 폐동맥이 막혀버렸던 것.
한 지방방송 날씨뉴스 캐스터에서 NBC방송의 유명 앵커로 성장하기까지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블룸은 사망 하루 전 아내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보냈었다. “만약 당신과 아이들이나 내 형제들이 나의 마지막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그가 사랑하던 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갔다’고 말하리라고 굳게 믿소.”
그렇다고 해서 블룸이 오로지 자신의 가족만 사랑한 이기적 인물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생활했던 미군들은 블룸이 사망하기 얼마 전 갑자기 한 병사에게 자신이 꼭 휴대하고 다니던 위성전화를 건넸던 일화를 기억하고 있다. 이등병인 그 병사는 덕분에 임신 중인 부인과 부모에게 실로 수 주 만에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얼마 후 블룸은 부모와 아내, 아홉 살짜리 쌍둥이 딸 둘과 동생인 딸 하나를 두고 갔다.
(윤희영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hyyoon@chosun.com)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세계 지도자들과 유엔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강행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연일 반전시위를 했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의 생각보다 짧은 시간안에 끝났다. 하지만 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증오는 또다른 증오를 낳고 전쟁은 또다른 전쟁을 낳지는 않을까?
이제 부시는 이라크전을 끝내고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냈다.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전을 바다건너 불구경하듯이 tv와 미디어를 통해 관람했다(?) 우리에게 전쟁이 닥쳤을때도 우리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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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0.31
  • 저작시기200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29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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