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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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2 장(98∼108년)

제 3 장

제 4 장(180∼248)

제 5 장(248∼85)

제 6 장(285∼313년)

제 7 장(305∼24)

제 8 장

제 9 장(300∼500년)

제 10 장(311∼62)

제 11 장(360∼63년)

제 12 장(363∼84)

제 13 장(365∼98)

제 14 장(398∼408년)

제 15 장(408∼10년)

본문내용

서의 전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기독교 정통파 집단의 최종적인 승리와 이교의 멸망이었다. 이단종파들의 집회는 금지되었고, 그 지도자들은 무거운 벌금형에 처해졌으며, 그들을 신봉하는 자들은 점차 취업 자격을 상실하고 유언장의 작성 등이 금지되었다. 테오도시우스는 그 본거지이자 아성이 되어 왔던 콘스탄티노플에서 아리우스파를 철저히 박멸함으로써 그의 열성을 증거하였다. 여러 지방에서 모든 이교 신전들과 성지의 강탈과 파괴, 그리고 이교도들의 모든 집회와 의식, 제사 등이 금지되었다. 기독교는 1세기도 못되어 로마 제국을 최종적으로 정복했다.
제 14 장(398∼408년)
테오도시우스가 사망한(395년) 후, 고트족은 그해 겨울이 가기전에 반란을 일으켰다. 야만족으로 구성된 보충부대들이 각각 반기를 들고 오랫동안 품어온 적대적 의도를 과감하게 밝히고 나섰던 것이다. 이에 스틸리코가 침략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나섰지만 고트족은 콘스탄티노플의 대신들과 비밀협상을 벌여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스틸리코는 내전을 우려한 나머지 적의 요구에 따라 아르카디우스의 영역에서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트족의 지도자인 알라리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포위, 공략했던 도시들의 합법적인 행정관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그는 서로마 제국을 침략했으나 스틸리코에게 패해 결국 강화조약을 비준한 후 다시 포강을 건너 돌아갔다.
이탈리아가 고트족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뻐하고 있는 동안에 상 다뉴브 지역에서는 또 다른 이민족의 침입이 이루어졌다. 당시 로마 제국은 매우 나약하고 피폐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다뉴브 지역의 요새를 복구하거나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들은 로마에서 180마일 떨어진 피렌체까지 진격해 왔다. 이에 스틸리코는 연합군을 이끌고 와 포위망을 형성하여 이들을 물리치고 투항한 왕을 참수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명망과 운명을 걸었던 스틸리코는 자기가 폴렌티아에서, 베로나에서, 그리고 피렌체의 성 밖에서 여러 차례 그 자신이 징벌했던 야만족들에게 이탈리아를 팔아먹었다는 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는 헤라클리아누스 장군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스틸리코의 진정한 죄는 그의 자부심과 권력에 있었다. 동족의 피를 흘리기를 주저한 명예로운 태도가 결과적으로 비열한 정적들의 승리를 도와주었던 셈이었다.
제 15 장(408∼10년)
스틸리코가 죽자 알라리크가 거느린 고트족은 다시 침입해 왔다. 그리고 그는 단 한차례의 접전도 없이 서로마 황제의 난공불락의 거처를 둘러싸고 있는 늪 지대의 가장자리까지 진격해갔다. 로마의 수도는 619년 동안 한번도 외적의 침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에 대부분의 귀족들은 사치와 낭비로 재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풍요 속에서도 빈궁했고 부화방탕한 가운데 무위도식했다.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수많은 일꾼과 가내노예들이 처벌이 두려워 일했으며, 또한 수많은 기술자와 상인들이 돈벌이라는 강력한 충동에 따라 일했다.
고트족은 로마 시를 포위, 봉쇄하고 인근 지방과의 모든 교통을 차단하는 한편 로마의 가장 확실하고 풍부한 생활필수품 공급로인 티베리스 강의 항행을 엄중히 봉쇄했다. 불운한 로마 시는 점차 물자 부족으로 고생하다가 마침내 끔찍한 기아를 겪게 되었다. 시민들의 불평소리와 기아에 대한 공포심이 원로원의 자존심을 눌렀다. 그들은 새 황제를 앉히자는 제안을 경청하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고트족 정복자는 로마 시 시장인 아탈루스에게 황제의 옷을 입히도록 요구했다. 새 황제는 즉시 그의 보호자를 서로마 제국 총사령관으로 인정했다.
알라리크와 경쟁관계에 있던 사루스는 황궁에 들어가 3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라벤나 성문 밖으로 돌격해 나와 고트족 대군을 기습하여 분쇄하였다. 그는 황제의 허락을 받아 그의 정적을 모욕하기 위해서 전령을 보내 죄인인 알라리크를 로마 황제와의 친선과 동맹으로부터 영원히 배제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 라벤나 궁정의 죄와 어리석음 때문에 로마 시는 세 번째로 참화를 입었다. 고트족 왕은 이제는 약탈과 복수의 욕망을 숨기지 않은 채 군대를 이끌고 로마 성벽 앞에 나타났다. 이들에게 가담한 노예나 하인들에 의해서 살라리아문이 열렸고, 시민들은 난데없는 고트족의 나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이렇게 해서 인류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교화시켰던 제국의 수도는 로마 건국 1,163년 만에 게르마니아와 스키타이의 흉포한 부족들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4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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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1.20
  • 저작시기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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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3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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