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등불 도산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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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족의 등불 도산 안창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서론

Ⅱ.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의 생애와 업적
가. 출생과 성장
나. 독립협회와 공립협회 활동
다. 신민회 활동
라. 대한인 국민회와 흥사단 활동
마. 임시 정부와 국민 대표회 활동
바. 대 독립당 운동과 한국 독립당 활동 그리고 순국

Ⅲ. 시대적 배경 - 일제 강점기

Ⅳ. 도산안창호 평가하기

Ⅴ. 참고 자료
가.『대한 청년의 용단력과 인내력』
나. [청년에게 호소함] - 인격 완성·단결 훈련에 대하여
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론
라. 도산어록

Ⅵ.결론

본문내용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공부하지 아니 하는가.
<흥사단 단우에게>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대한 사회의 주인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 그 민족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심이 있는 이가 주인이요, 책임심이 없는 이는 여객입니다 ....진정한 주인에게는 비관도 없고 낙관도 없고 제 일인 고로 오직 어찌하면 우리 민족 사회를 건질까 하는 책임심뿐입니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에서>
▶대한 사람이 대한 사람의 말을 믿고, 대한 사람의 글을 믿는 날에야 대한 사람은 대한 사람의 얼굴을 반가와하고 대한 사람은 대한 사람으로 더불어 합동하기를 즐거워할 것이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에서>
▶낙심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에서>
▶내게도 한 옳음이 있으면 남에게도 한 옳음이 있는 것을 인정하여서 남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해서 그를 미워하는 편협한 일을 아니하면 세상에는 화평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서로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비록 의견은 서로서로 다르더라도 우정과 존경에는 변함이 없음이 문명 국민의 본색일 것이다.
<흥사단 단우에게>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려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 못 되는 것이 다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요 그놈이 죽일 놈이요, 저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고 가만히 앉아 계시오?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흥사단 단우에게>
▶힘은 건전한 인격과 공고한 단결에서 난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그러므로 인격 훈련과 단결 훈련 이 두 가지를 청년 제군에게 간절히 요구하는 바이다.
<동지에게 주는 글에서>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고 나는 믿소.
<동지에게 주는 글에서>
▶우리는 자유의 인민이니 결코 노예적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를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각자의 양심과 이성 뿐이라야 할 것입니다. 결코 어느 개인이나 어떤 단체에 맹종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동지에게 주는 글에서>
▶저는 민족의 죄인이올시다. 이 민족이 저를 이렇게 위해 주는데 저는 민족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올시다.
<평소의 말씀 중에서>
▶나는 최후로 국가제일의 민족지상의 이념에서 내 나라를 부하게 하고 내 민족을 흥하게 함에는 민족자본주의를 주장하며, 최근 사회혁명사상에는 민족평등, 정치평등, 경제평등, 교육평등 이상 4대 평등인 대공주의를 적극 주장합니다.
<1935년 9월 20일>
Ⅵ. 결론
지금까지 도산의 업적과 그의 생애 그리고 시대적 상황, 도산이 남긴 책과 어록등을 살펴보았다. 그의 생애나 사상보다 그의 책과 어록에 더 초점을 맞춘이유는 그사람의 생애를 살피는것도 그사람을 알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그사람의 책이나 말등도 그의 인품을 나타낼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범부로서의 나는 비상함과 뛰어남을 가지고 민족의 등불이 된 도산 안창호. 그가 민족의 나침반으로 남아있고 민족의 지도자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의 삶의 위대함과 바른길을 걸었던 의지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의 행복한 개인으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어두운 시대에 촛불처럼 어둠을 밝힌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도산 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이번 레포트는 그의 생애와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면서 그분들의 높은 뜻을 기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도산연보
1878.11.9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도롱섬에서 안흥국의 3남으로 출생
1884 평안남도 대동강면 국수당으로 이거
1889 부친 안흥국 별세
1890 평양 남부산면 노남리로 이거, 서당에서 교육
1892 김현진의 문하에서 한학 수학, 필대은과 교류
1895 밀러학당 보통부 입학, 기독교 장로교 입교
1897 밀러학당 졸업
1898 독립협회 가입, 관서지부 창립 발기, 평양 쾌재정에서 연설
1899 평안남도 강서군 점진학교 설립, 황무지 개간 산업
1902 이혜련과 결혼, 1차 도미
1903 샌프란시스코에서 상항한인친목회 조직, 회장 피선
1905 공립협회 창립, 초대 회장 피선, 공립신보 발간
1907 동경을 거쳐 귀국,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 조직
1908 평양 대성학교, 마산동 자기회사, 태극서관 등 설립
1909 청년학우회 조직, 안중근 의거로 피체, 2개월 만에 석방
1910.4 국외 망명, 중국 청도에서 독립운동가 회의 개최
1911 블라디보스톡, 북만주 밀산에서 한인촌 및 무관학교 설립, 미국 으로 돌아감
1912 재미 한인을 망라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조직, 회장 피선
1913 흥사단 창립
1917 북미실업주식회사 설립, 멕시코 순방
1919 대한인국민회 전체 대표자회의 소집, 중앙 총회장 명의로 결의 안, 포고문 발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국무총 리서리 취임, 연통제 실시, 독립신문 발간 등
1920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 조직
1921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발기
1922 국내에 수양동우회와 동우구락부 발족 지시
1923 국민대표회의 개최, 부의장이 됨, 대독립단 결성을 주장, 이상촌 건설 계획 수립
1924 만주 지역 답사, 남경에 동명학원 설립
1925 미주 동포사회 순방, 통일 역설
1926 중국으로 돌아옴, 만주 길림성 일대에서 이상촌 건설 추진
1927 길림에서 대독립당 결성을 위한 민중 연설 중 중국 경찰에 피체 20여일만에 석방
1930 상해에서 한국독립당 결성
1931 윤봉길 의거로 피체, 국내 압송, 4년간 형무소에서 복역
1935 대전형무소에서 가출옥, 지방순회, 평남 대보산 송태산장에 은거
1937 동우회 사건으로 피체, 서대문형무소 수감, 지병으로 보석
1938.3.10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서거,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
1962 건국 공로훈장 추서
1973 도산공원으로 이장
  • 가격3,000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04.07.11
  • 저작시기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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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6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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