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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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람직한 것을 그는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점에서 부족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복하려면 덕 있는 친구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많은 수의 친구를 만들것인가 또는 너무 많은 것도 아주 없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일까? 공리는 목적으로 사귄 친구들에 대해서는 이 말이 맞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게게 신세를 갚는다는 것은 힘든일이요, 인생이란 그렇게 길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친구의 경우는 어떨까? 그것은 될 수로 많은 친구를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 함께 지내기에 알맞은 친구를 가지는 것이 좋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썩 좋은 친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친구를 더욱 필요로 하는 것은 순경에서인가, 역경에서인가? 사실 순경에 있을 때 친구가 있으면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도 있거니와 또한 자신의 행복을 그들이 기뻐한다는 즐거운 생각도 생기게 한다. 그러나 역경에 있을 때도 친구가 함께 서러워 해 줌으로써 슬픔이 경감이 된다. 따라서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면 친구들은 함께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우애란 짝을 짓는 것이고, 그때 친구에 대한 관계가 바로 자신에 대한 관계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생활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와 친구의 존재의식이 생긴다.
제10권
다음은 쾌락에 관한 것으로 쾌락은 인간의 본성과 가장 밀접하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은 선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쾌락은 아주 나쁜 것이라고 한다. 쾌락에 관한 여러 의견 중 에우독소스는 쾌락이 곧 선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성적인 것이나 비이성적인 모든 것이 쾌락을 목표 삼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물에 대하여 좋은 것, 만물이 목적으로 삼는 것이 바로 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떤 선이든지 옳은 행위나 절제 있는 행위에 쾌락이 가해지면, 그것을 더욱 바람직하게 되게 하며, 또 오직 선에 의해서만 선이 증대된다고 한다. 하지만 플라톤은 쾌락이 선이 아니라고 했는데, 즐거운 생활은 지혜가 있을 때 더 바람직한 것인데, 이와 같이 합해진 것이 더 좋은 것이라면 쾌락은 선이 아니라고 한다. 선이란 것이 거기에 다른 무엇이 덧붙여짐으로써 더욱 바람직하게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고통을 악으로써 피하고, 쾌락을 선으로서 선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양자는 서로 대립한다. 또, 쾌락이 하나의 질(質)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하나의 선이 아닌 것은 아니다. 덕 있는 활동도 질이 아니고, 행복도 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은 분명한 것이지만, 이에 반해 쾌락에는 과도의 차가 있기 때문에 분명치 않은 것이라고 한다.
쾌락이 무엇이고 어떤 종류의 것인가에 대해서 무엇을 본다는 것은 어느 순간에서나 완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쾌락도 이런 성질의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쾌락이란 하나의 전체이고 어느 때를 막론하고 어떤 쾌락이 좀더 오래 계속된다고 해서 그 형상이 완성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감성에 있어서 각기 거기 대응하는 쾌락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감성이 최선의 상태에 있는 동시에 최선의 대상에 대해서 활동할 때에 두드러지게 쾌락이 생긴다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그리고 쾌락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종류가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은 여러 가지 다른 것에 의하여 완전한 것이 된다.
이제까지 온갖 덕·친애·쾌락에 대해 말했으니 남은 것은 행복의 본성을 개설하는 것이다.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일의 궁극 목적이니 말이다. 행복은 그 자체에 있어서 바람직한 것들에 속하고, 다른 어떤 것 때문에 바람직한 것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아야만 한다. 행복은 아무 것도 결여되지 않고 오히려 자족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 자체가 바람직한 행동이란 그 활동 이외에는 아무것도 희구되지 않는 활동이다. 그리고 유덕한 행동이 이러한 성질의 것이라 생각한다. 고귀하고 좋은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생활은 덕 있는 생활이라 생각된다. 행복이란 것이 덕을 따른 활동이라면, 당연히 그것은 최고의 덕을 따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최고의 덕은 우리의 본성에 있는 최선의 부분의 덕이 아닐 수 없다. 고유한 덕을 따른 활동은 완전하고, 이활동은 관조적인 것이다. 첫째로, 이 활동이 최선의 활동이고 둘째로 그것은 가장 연속적이다. 그리고 행복에는 쾌락이 섞여 있다고 생각되지만, 덕을 통한 활동 가운데 철학적 예지의 활동이 가장 즐거운 것이다. 하여간 애지(愛智) 곧 철학은 그 순수성과 견실성(堅實性)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쾌락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성을 따른 생활이 가장 좋고 즐겁다. 이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되게 하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생활이 가장 행복한 생활이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덕을 따른 생활은 제 2차적으로 행복하다. 그런 덕을 따른 활동은 인간의 형편에 어울린다. 덕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은 계약이라든가 봉사라든가 온갖 행동 그리고 정념에 관련하여 우리들 각자의 의무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성품의 덕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정념과 결부되어 있다. 실천지도 역시 성품의 덕과 결부되어 있다. 윤리적인 덕은 실천지와 합치되고 정의와 관련을 가지는 까닭에 그것은 우리의 복합적 본성에 속한다. 그리고 복합적이 덕은 인간적이지만 이에 반해 이성의 덕은 독립적인 것이다.
여러 가지 덕, 그리고 우애, 쾌락을 윤곽적으로 다루었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실천적인 일들에 있어서의 궁극 목적은 여려 가지 일을 두루 살피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덕을 소유하며 활동시키려고 해야하며, 혹은 선하게 되는 다른 길이 있는가 살펴서 시도해 보아야 한다.그리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종의 이성과 올바른 명령에 따른 생활을 해야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은 인간성에 관한 철학을 완성시키기 위한 국제(國制)에 관해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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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4.07.28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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