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심훈의 생애와 사상
2. 소설의 배경
3. 충남 당진군 심훈 선생의 생가 ‘필경사
3. 결론
4. 부록
약력
2. 본론
1. 심훈의 생애와 사상
2. 소설의 배경
3. 충남 당진군 심훈 선생의 생가 ‘필경사
3. 결론
4. 부록
약력
본문내용
상황과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있어 기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 여러 가지 말씀 중에 기억이 가장 나는 부분은 학생들도 꼭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앞으로 농촌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당부하셨다.
3. 결론
소설과 영상으로 보이는 옛 모습의 자취는 거의 사라져 버렸을지는 몰라도 그 정신은 언제나 살아서 앞으로도 계속 전해질 것이다. 최용신 선생의 묘소에서도 그리고 심훈 선생의 ‘필경사' 에서도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의 영화를 위해 살았다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을 그 분들이 자신의 희생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선사해 주신 것은 아닐까?
문학기행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체험은, 소설과 영상만으로 알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사회생활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자신에게 다짐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많이 것을 익히고 배우고 생각하여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는 다짐을 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어떠한 소설을 읽을 때 문헌으로만이 아니라 이렇게 몸으로 배울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찾으러 다녀야겠다.
4. 약력
1901년 서울 흑석동 출생
1915년 교동보통학교 졸업,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1919년 3.1운동에 참가 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20년 상하이(上海)로 망명. 망명기간 중 베이징(北京)·상하이·난징(南京)에서 활동, 항저우(杭州)의 즈장(之江) 대학 입학
1923년 귀국 후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내세운 염군사(焰群社) 연극부 가담.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 조직
1924년 <동아일보>에 입사, 번안소설 '미인의 한'을 연재, 작가명 얻음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 역을 대역,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하다가 이탈.
1926년 <동아일보>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연재.
1927년 일본 영화 공부.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 각색, 감독(단성사 개봉)
1928년 <조선일보> 기자 입사
1930년 '동방의 애인' 연재
1931년 '불사조' 연재
1933년 '영원의 미소' 연재
1934년 '직녀성 연재'
1931년 조선일보사 사직 후 빈곤한 생활.
1932년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서 창작생활.
3. 결론
소설과 영상으로 보이는 옛 모습의 자취는 거의 사라져 버렸을지는 몰라도 그 정신은 언제나 살아서 앞으로도 계속 전해질 것이다. 최용신 선생의 묘소에서도 그리고 심훈 선생의 ‘필경사' 에서도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자신의 영화를 위해 살았다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을 그 분들이 자신의 희생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선사해 주신 것은 아닐까?
문학기행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체험은, 소설과 영상만으로 알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사회생활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자신에게 다짐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많이 것을 익히고 배우고 생각하여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여야 한다는 다짐을 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어떠한 소설을 읽을 때 문헌으로만이 아니라 이렇게 몸으로 배울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찾으러 다녀야겠다.
4. 약력
1901년 서울 흑석동 출생
1915년 교동보통학교 졸업,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1919년 3.1운동에 참가 후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
1920년 상하이(上海)로 망명. 망명기간 중 베이징(北京)·상하이·난징(南京)에서 활동, 항저우(杭州)의 즈장(之江) 대학 입학
1923년 귀국 후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내세운 염군사(焰群社) 연극부 가담.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 조직
1924년 <동아일보>에 입사, 번안소설 '미인의 한'을 연재, 작가명 얻음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 역을 대역,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하다가 이탈.
1926년 <동아일보>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 연재.
1927년 일본 영화 공부.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 각색, 감독(단성사 개봉)
1928년 <조선일보> 기자 입사
1930년 '동방의 애인' 연재
1931년 '불사조' 연재
1933년 '영원의 미소' 연재
1934년 '직녀성 연재'
1931년 조선일보사 사직 후 빈곤한 생활.
1932년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서 창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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