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민족주의자와 친일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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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광수-민족주의자와 친일의 두 얼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서 론

본 론
1. 시대배경과 당대의 문학사1
2.이광수의 기본적 사상
3.이광수의 작품 경향 및 문학사적 업적과 의의
4. 이광수의 대표작 『무정』
5. 이광수의 사상적 배경과 민족·친일론
6. 이광수의 친일행각
7. 친일성향의 소설(『무명(無名)』중심)

결 론

이광수연보

참고문헌

본문내용

시 귀환(12월).
⊙1919년(28세) : <조선청년독립단 선언서>를 집필(1월). 상해로 망명(2월). 안창호를 처음 만남(4월).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후의 《독립신문》)의 책임자가 됨(8월).
⊙1920년(29세) : 흥사단에 입단(1월).
⊙1921년(30세) : 귀국(3월). 허영숙과 정식으로 결혼(5월).
⊙1922년(31세) : 수양동맹회를 창립(2월).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5월).
⊙1923년(32세) : <가실>을 《동아일보》에 발표(2월). 선도자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다가 총독부의 간섭으로 중단당함(3월-7월). 동아일보사에 입사(5월). <허생전>을 발표(《동아일보》 12월-1924년 3월).
⊙1924년(33세) : 북경으로 가서 안창호를 만남(4월). 새로 창간된 《조선문단》을 주재함(10월). <재생>을 발표(《동아일보》 11월-1925년 9월)
⊙1925년(34세) : 척추 카리에스로 한쪽 갈빗대를 도려내는 대수술 받음(3월). <춘향전>을 《동아일보》에 발표(9월-1926년 1월).
⊙1926년(35세) : 수양동맹회와 동우구락부를 합쳐 수양동위회를 발족시킴(1월). 수양동우회 기관지 《동광》을 창간(5월). <마의태자>를 발표(《동아일보》 5월-1927년 1월).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취임(11월).
⊙1927년(36세) : 아들 봉근 출생(5월).
⊙1928년(37세) : <단종애사>를 발표(《동아일보》 11월-1929년 12월).
⊙1929년(38세) : 왼쪽 신장을 제거하는 대수술 받음(5월). 아들 영근 출생(9월). 수양동위외의 명칭을 동우회로 바꿈(11월).
⊙1930년(39세) :《동아일보》에 <혁명가의 아내>(1월-2월), <사랑의 다각형>(3월-10월), <삼봉이네 집>(11월-1931년 4월)등을 발표, 이 세 편을 합쳐 <군상(群像)>3부작이라 함.
⊙1931년(40세) : 《동아일보》에 <이순신>을 발표(6월-1932년4월).
⊙1932년(41세) : <흙>을 발표(4월-1933년 7월). 안창호가 상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옴(6월).
⊙1933년(42세) : 《동아일보》를 떠나 《조선일보》의 부사장으로 취임(8월). 딸 정런 출생(9월). 《조선일보》에 <유정>을 발표(10월-12월)
⊙1934년(43세) : 봉근이 갑자기 패혈증으로 사망(2월). 《조선일보》 부사장직을 사임(5월). 자하문 밖 홍지동에 산장을 지음(8월).
⊙1935년(44세) : 딸 정화 출생(1월). 안창호가 가출옥으로 석방(2월). 《조선일보》의 편집고문이 됨(4월). 1934년 2월에 시작했다 중단했던 <그 여자의 일생>을 계속 집필하여 완결(《조선일보》 4월-9월), <이차돈의 사(死)>를 《조선일보》에 발표(9월-1936년 4월)
⊙1936년(45세) : <애욕의 피안>을 《조선일보》에 발표(5월-12월). 수필집 <인생이 향기>를 출간(6월). <그의 자서전>을 발표(《조선일보》 12월-1937년 5월).
⊙1937년(46세) : 동우회사건으로 동지들과 함께 검거됨(6월). 병보석 되어 경성의전병원에 입원(12월).
⊙1938년(47세) : 동우회사건으로 함께 검거되었던 안창호가 병보석 중 경성제대병원에서 사망(3월). 퇴원하여 홍지동 산장으로 감(7월). 전작 <사랑> 상권 간행(10월).
⊙1939년(48세) : <무명>을 발표(《문장》1월). 황군 위문작가단의 결성에 참여(3월). <사랑> 하권 완성(4월). <육장기>를 발표(《문장》 9월).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의 회장 선임(10월). 동우회 사건 제 1 심 공판에서 전원무죄 선고(12월). 조선문인협회 회장직 사임(12월).
⊙1940년(49세) :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창씨개명(2월). <춘원시가집>을 간행(2월). 전작장편 <세조대왕>을 출간(7월). 동우회 사건 제 2 심 공판에서 5년 징역을 선고받음(8월). 조선총독부로부터 저적의 재검열을 받은 결과 <무정>, <흙> 등 여러 편이 발매금지됨(10월).
⊙1941년(50세) :《신시대》에 친일소설 <그들의 사랑>(1월-3월), <봄의 노래>(9월-1942년 7월)등을 발표하였으나 모두 미완성으로 그침. 동우회사건 제 3 심 공판에서 무죄 선고받음(11월).
⊙1942년(51세) : <원효대사>를 발표(《매일신보》 3월-10월). 동경서 열린 제 1 회 대동아 문학자대회에 참가(11월). 동경에 가서 조선인의 학생 지원을 권고하는 연설을 함(12월).
⊙1944년(53세) : 사릉에 가서 박정호와 함께 농사 짓기 시작(4월). 중국 남경에서 열린 제 3 회 대동아 문학자 대회에 참가(8월).
⊙1945년(54세) : 사릉에서 해방 맞음(8월).
⊙1946년(55세) : 광동중학의 영어 및 작문교사로 초빙되어 봉선사로 감(9월).
⊙1947년(56세) : 사릉으로 돌아와 <도산 안창호>를 쓰기 시작함(1월). <도산 안창호> 출간(5월). <꿈> 출간(6월). <나-소년편> 출간(12월).
⊙1948년(57세) : <돌베개> 출간(6월). <나-스무살 고개> 출간(10월). 사릉을 떠나 효자동 집으로 돌아옴(11월). <나의 고백> 출간(12월)
⊙1949년(58세) : 반민특위에 체포됨(2월). 병보석으로 풀려남(3월). 불기소 처분 받음(8월).
⊙1950년(59세) : 《태양신문》에 <서울>을 연재하다 중단당함(1월). <사랑의 동명왕> 출간(5월). 병이 깊어진 상태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게 연행됨(7월). 10월 25일 자강도 강계군 만포면 고개리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임.
참고문헌
박종국. 1996. 『친일작품론』. 서울 : 평화출판사
한규선 외. 1999. 『한국정치사상의 비교연구』. 서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윤명내 외. 1981. 『한국 현대소설 작품론』. 서울 : 문장사
이중오. 2000. 『이광수를 위한 변명』. 서울 : 중앙 M&B
이동하. 1992. 『이광수 : 무정의 빛, 친일의 아들』. 서울 : 동아일보사
김윤식. 1986. 『이광수 문학과 삶』. 서울 : 한길사
송명희. 1997. 『이광수의 민족주의와 페미니즘』.
이광수. 단기 4281년. 『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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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0.01
  • 저작시기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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