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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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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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람의 절묘한 용기인 것이다.
심지어 때때로 이러한 불꽃의 실이 가늘어지기도 하지만....
영속적 갱신되는 인간의 절묘하며 정교한 빛은 꺼지지 않는다.
거대한 도시의 불빛들은 꺼진다. 그리고 모든 외형에 끔찍한 어둠이 있다.
그러나 인류가 시작된 이후로 항상 신을 인지하는 고결한 인간의 의식이 빛을 밝혀왔다.
때때로 암흑의 시대에서처럼 작지만 최고로 고결한 신을 인지하는 완벽한 불꽃이든 때때로 인간의 "식별"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섬광이든 빛은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빛은 마지막 날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인간의 빛이 인간의 의식으로 발을 들여놓고 그 의식이 본질적으로 신을 인지하는 인간의 빛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신인지는 증가, 감소하며, 다른 오일로부터 자라난다.
인간은 기이한 기관이다. 인간 속에는 인지의 빛이 자라게 하기 위해. 수천 개의 다른 필수적 오일을 가진다.
하지만 분명히 고갈될 때까지 끌어들이고, 새로운 유정을 고갈시키면서 꺼져가는 빛에 어려움의 시기를 겪는다.
로마시대가 그러하였다. 거대한 옛 이교도 인지의 불은 점차적으로 꺼져갔다. 그것의 원천은 바닥을 드러냈고 예수가 새로운 불의 깜빡임을 시작하였다.
오늘날 기독교의 긴 불빛은 흘러나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새로운 자원에서 얻어야한다.
붕괴를 기다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 "내가 세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을 고치는 건 내 몫이 아니다. 시간과 사건이 무언가를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시간과 사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인간은 큰 붕괴 후에 이전보다 더 나빠진다. 혁명의 전율로부터 도주한 러시아 인들의 대부분은 인간으로서는 소멸되었다. 진정한 인간적인 고관들은 사라졌다. 남아있는 모든 인간들은 폭락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이봐! 난 살았어..더 많은 소시지를 먹을 수가 있다."
붕괴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대재앙의 공포 동안에 인간의 고결이나 자긍의 빛은 관련된 여성이나 남성의 혼에서 빠져 나온다. 고통스러운 인간적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산물만이 남는다.
특히 인간이 그들의 정신을 깨어있게 하고 꺼지지 않게 불 밝히는 신념, 용기가 없는 회의의 시기에 붕괴의 커다란 위험이 있다.
그 후 수치스러움 삶의 거대한 울적함만 남는다..
비천한 의식의, 영원히 동물적 인간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가혹한 운명을 가진다. 사유의 모험에서 계속 움직여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다.
그는 사유의 모험가이고 그것이 그의 운명이다.
그가 스스로 집을 지어 그의 인지, 영혼 속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되는 순간 혼란스러워지고 감당하기 버거워 그 집을 허물어 버린다.
인간은 현재 집에 갇힌 존재이다. 인간의 의식은 오늘날 너무 작고 너무 타이트해서 본연적으로 행동하고 살수 없게 한다. 우리의 지배적 아이디어는 북극성이 아니라 우리를 졸라매는 목 주변의 맷돌이다. 오래된 현판과 같다.
그것이 우리운명의 일부이다. 생각하는 존재로써 인간은 삶의 어떤 개념으로부터 신을 찾도록 운명되어져있다
보이지 않는 신이 인식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삶은 항상 어떤 아이디어 이상이므로 신과 삶에 대해 인간적 개념으로부터 보게되므로, 우리가 풀어야할 문제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내버려둔 이 신과 우리의 삶으로부터 배제해 온 이러한 삶은 결국에는 우리에게서 돌아서서 우리를 아프게 한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어떤 것도 그것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무시한 미지의 신이 가혹하게 망각의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가혹하게 처벌할 때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부터 배제한 삶이 우리에게 우리 혈관에 독과 광기로 변할 때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가지가 있다.
영원히 존재하는 불꽃이 있는, 빛을 밝히는 또 다른 광선이 있는 그 곳 깊은 곳 들어가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에너지의 중심의 기둥에 저 멀리 있는 맥박치는 사고 속으로 고난의 모험을 감행해야한다.
우리는 우리 내부 담대한 정신과 무모한 진정한 정열사이에서 새로운 싹을 트게 해야한다. 신 인식과 삶 인식에 새로운 싹이 트인다.
그리고 이 싹은 팽창하고 성장할 것이며 커다란 나무에 꽃을 피울 것이다.
인식의 모든 다른 인간 나무처럼 죽어라.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큰 걸음으로 걷고 있다. 우리는 밤과 낮으로 산다.
나무는 천천히 자라 커다란 키가 된다. 그리고 빨리 먼지로 떨어진다.
긴 생명의 날들이 각자에게 있다. 그리고 아주 어둡고 넓은 죽음의 공간이 있다.
난 살고 그리고 죽는다. 난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나로부터 무엇이 발생하든 살고 그리고 죽는다. 난 삶이고 죽음이다. 난 역시 기쁘다. 신은 영생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 아이디어는 나의 것이며 사라진다. 모든 것 인간 ,인간의 인지, 인간의 신념, 인간의 감성,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은 무쇠로 변할 것이다. 불변의 무쇠가 오늘날에 너무나 많다.
우리는 결국에는 나무가 죽는 것을 안다. 때문에 우리가 씨앗을 뿌리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할까? 허! 그것은 나로서는 거만한 비겁함일 것이다. 난 조그만 싹과 연약한 묘목을 좋아한다. 난 연약한 어린 나무와 첫 과일, 첫 과일의 떨어짐, 과일의 떨어짐을 좋아한다. 난 웅장한 커다란 나무를 좋아한다. 그리고 난 결국에 아주 마지막엔 그 커다란 나무가 속이 빌 것이며 한쪽으로 쓰러질 것이고 조그만 개미들이 그 사이로 다닐 것이라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마치 유령이 다시 부식토로 돌아가는 것같이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소생하는 만물의 순환인 것이다. 왜냐면 일정한 용기는 심지어 상함으로부터 영생을 아끼는 것이다.
인간은 삶과 신에 대한 신개념을 놓고 싸운다. 인간이 봄에 씨를 뿌리기 위해 싸우는 것처럼 왜냐면 우리는 수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수확 후 새로운 겨울이 다시 온다는 것을 안다면 문제는 어떻게 될까? 이것은 단지 계절적인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씨를 뿌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 씨를 뿌리기 위해 당신은 상당한 양의 씨앗과 땅을 죽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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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4.10.26
  • 저작시기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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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7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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