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분단국의 통일사례
우선 전세계적으로 분단된 국가가 통일된 사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체제 하에서 분단 대립해 오던 오스트리아, 독일, 베트남, 예멘은 통일을 성취하였다. 이 나라들의 통일 경험은 아직 분단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시사 받을 점이 많이 있으며, 통일 후의 문제점들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여기에서 오스트리아, 독일, 예멘, 베트남의 통일사례의 통일과정, 특징, 통일이후의 사회의 문제점과 분단국의 통일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우선 전세계적으로 분단된 국가가 통일된 사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체제 하에서 분단 대립해 오던 오스트리아, 독일, 베트남, 예멘은 통일을 성취하였다. 이 나라들의 통일 경험은 아직 분단 상태를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시사 받을 점이 많이 있으며, 통일 후의 문제점들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여기에서 오스트리아, 독일, 예멘, 베트남의 통일사례의 통일과정, 특징, 통일이후의 사회의 문제점과 분단국의 통일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본문내용
인의 대통령 평의회에 의해 통치되도록 구성되었다. 5명중 3명은 북예멘출신 으로 북쪽이 과반수를 확보,주도권을 행사한다.물론 대통령도 북예멘의 대통령이 승계하였다. 동시에 평의회 부의장은 부통령으로 보하게 되었고 이 부통령은 남예멘 출신으로 배정되었다.
수상은 남예멘의 대통령이 맡았고 39명의 내각중 20명이 북예멘 출신으로 충당되었다. 통일예멘의 의회 도 북예멘 의원 1백 59명과 남예멘의원 1백 11명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한 케이스 31명으로 구성하였다.
이와같은 통일예멘의 권력구조 배분은 두 정부 지도자들이 양측의 전반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비례 배분 한 것으로 보인다. 북예멘이 통일 정부를 주도하되 남예멘도 무시 못할 견제세력의 직위를 보장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체제에 있어서는 북예멘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흡수통합했다는 특색을 나타냈다. 정치는 복수정당제도로 재편되었고 경제는 사유권 인정과 자유시장경제에 바탕했다.
다만 외교노선에 있어서는 남북예멘이 함께 아랍국가로서 원칙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던 비동맹 중립 노선을 고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북예멘이 서방의 원조에 의존해 있었는데 반해 남예멘은 소련에 기대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통일예멘의 외교노선은 자유진영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
4. 자유선택 통일 유형
동서독의 통일방식은 남북예멘의 통합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분단 당사자들이 자유시장경제와 공산체제로 대결되어 있었다는 데서는 예멘과 독일이 같다. 그러나 남북예멘은 서로 타협을 통해 통일정부의 권력 지분에 있어서 3대2의 비율로 나누어 가졌는데 반해, 동서독의 통일은 동독이 서독으로 완전 흡수 통합 되었다.
동서독의 통일은 월맹과 월남의 통일과도 다른 점이 많다. 베트남과 독일은 이데올로기로 상호 분단되어 있었다는 데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쪽이 다른 한편에 의해 흡수통합되었다는 데서도 유사성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독일과 베트남의 통합방식은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다. 베트남 통일은 베트남 국민 의 자유의사와는 상관없이 공산당의 폭력혁명 전략전술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행된 것이다. 여기에 반해 독일통일은 공산당이나 권력기관의 강요와는 상관없이 독일국민의 자유의사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동독주민들이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을 투표를 통해 스스로 선택하고 나섰던 덧이다.
독일의 통일방식은 동독의 서독편입 형태였지만 서독의 강압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동독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동독인들의 서독편입 연유는 동독공산당체제의 탄압과 빈곤 그리고 서독의 자유민주 발전과 경제성장에 바탕했다. 동독의 서독편입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통일후에도 서독의 기본 이념과 체제를 그대로 견지하게 되었다. 정치에 있어서는 자유민주체제요 경제에서는 시장경제원리 를 받든다. 외교에 있어서도 통일독일은 친서방 노선을 변함없이 답습하고 있으며 군사동맹체제 또한 서방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자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앞에서 비교 평가해 본 4개의 통일유형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이들 4개 유형중에는 바람직한 통일방식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바람직한 통일유형으로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룩한 통일,그리고 분단지역 주민 의 자유의사를 반영한 통일이 그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중립화 통일,예멘의 비례대표 통일, 독일의 자유 선택 통일이 그에 속한다.
이 3개국 통일 유형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통합장식은 독일케이스로 평가된다. 독일통일은 소속주민들 의 자유의사에 따른 통합이라는 데서 그렇고 자유 민주이념에 바탕한 만족화합의 통일이었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
19세기 독일 이상주의 철학의 대가였던 게오르규 헤겔은 인류의 역사발전 목표를 자유신장에 있다고 하였다. 인류 역사란 자유의 확산을 위해 부단히 전개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동독 공산동재체제를 해체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서독으로 흡수통합한 독일의 통일유형은 역사발전 법칙에도 순응하는 수순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남예멘의 북예멘으로의 통합도 그렇고 오스트리아의 자유체제로의 통일독립정부 수립도 똑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개국 통일 중 바람직 하지 못한 유형은 베트남방식이다. 베트남 통일은 국민의 자유의사를 유린한 채 폭력으로 통합한 유형이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은 베트남 민족에게 자유신장의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요 그들을 탄압 과 빈곤의 늪으로 몰아 넣었다. 이것은 역사발전의 순리를 거역한 통일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수상은 남예멘의 대통령이 맡았고 39명의 내각중 20명이 북예멘 출신으로 충당되었다. 통일예멘의 의회 도 북예멘 의원 1백 59명과 남예멘의원 1백 11명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한 케이스 31명으로 구성하였다.
이와같은 통일예멘의 권력구조 배분은 두 정부 지도자들이 양측의 전반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비례 배분 한 것으로 보인다. 북예멘이 통일 정부를 주도하되 남예멘도 무시 못할 견제세력의 직위를 보장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체제에 있어서는 북예멘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를 흡수통합했다는 특색을 나타냈다. 정치는 복수정당제도로 재편되었고 경제는 사유권 인정과 자유시장경제에 바탕했다.
다만 외교노선에 있어서는 남북예멘이 함께 아랍국가로서 원칙적으로 추구하고 있었던 비동맹 중립 노선을 고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북예멘이 서방의 원조에 의존해 있었는데 반해 남예멘은 소련에 기대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통일예멘의 외교노선은 자유진영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
4. 자유선택 통일 유형
동서독의 통일방식은 남북예멘의 통합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분단 당사자들이 자유시장경제와 공산체제로 대결되어 있었다는 데서는 예멘과 독일이 같다. 그러나 남북예멘은 서로 타협을 통해 통일정부의 권력 지분에 있어서 3대2의 비율로 나누어 가졌는데 반해, 동서독의 통일은 동독이 서독으로 완전 흡수 통합 되었다.
동서독의 통일은 월맹과 월남의 통일과도 다른 점이 많다. 베트남과 독일은 이데올로기로 상호 분단되어 있었다는 데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쪽이 다른 한편에 의해 흡수통합되었다는 데서도 유사성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독일과 베트남의 통합방식은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다. 베트남 통일은 베트남 국민 의 자유의사와는 상관없이 공산당의 폭력혁명 전략전술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행된 것이다. 여기에 반해 독일통일은 공산당이나 권력기관의 강요와는 상관없이 독일국민의 자유의사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동독주민들이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을 투표를 통해 스스로 선택하고 나섰던 덧이다.
독일의 통일방식은 동독의 서독편입 형태였지만 서독의 강압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동독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동독인들의 서독편입 연유는 동독공산당체제의 탄압과 빈곤 그리고 서독의 자유민주 발전과 경제성장에 바탕했다. 동독의 서독편입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통일후에도 서독의 기본 이념과 체제를 그대로 견지하게 되었다. 정치에 있어서는 자유민주체제요 경제에서는 시장경제원리 를 받든다. 외교에 있어서도 통일독일은 친서방 노선을 변함없이 답습하고 있으며 군사동맹체제 또한 서방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자격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앞에서 비교 평가해 본 4개의 통일유형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이들 4개 유형중에는 바람직한 통일방식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바람직한 통일유형으로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룩한 통일,그리고 분단지역 주민 의 자유의사를 반영한 통일이 그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중립화 통일,예멘의 비례대표 통일, 독일의 자유 선택 통일이 그에 속한다.
이 3개국 통일 유형중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통합장식은 독일케이스로 평가된다. 독일통일은 소속주민들 의 자유의사에 따른 통합이라는 데서 그렇고 자유 민주이념에 바탕한 만족화합의 통일이었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
19세기 독일 이상주의 철학의 대가였던 게오르규 헤겔은 인류의 역사발전 목표를 자유신장에 있다고 하였다. 인류 역사란 자유의 확산을 위해 부단히 전개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동독 공산동재체제를 해체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서독으로 흡수통합한 독일의 통일유형은 역사발전 법칙에도 순응하는 수순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남예멘의 북예멘으로의 통합도 그렇고 오스트리아의 자유체제로의 통일독립정부 수립도 똑같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개국 통일 중 바람직 하지 못한 유형은 베트남방식이다. 베트남 통일은 국민의 자유의사를 유린한 채 폭력으로 통합한 유형이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은 베트남 민족에게 자유신장의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요 그들을 탄압 과 빈곤의 늪으로 몰아 넣었다. 이것은 역사발전의 순리를 거역한 통일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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