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요 정당과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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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일 주요 정당과 통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위하여 서독정부는 ’90년 5월5일 본에서 제1차[2+4회담](동.서독 및 미.영.불.소)을 시작으로 네차례에 걸쳐 동회담을 주관, 통일독일의 NATO회원국 잔류문제, 전승 4대국의 독일 및 베를린에 대한 권한종식문제 등을 논의토록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90년 9월13일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4차 회담에서 "통독관련 최종 합의에 관한 조약"을 성사 시키시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같은 여러가지 정황을 역사.정치적으로 볼때 동.서독 통합조약 체결의 의미는 통독과정에서의 형식적 기능을 훨씬 초월한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대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세계 역사상 그토록 상반된 체제를 갖고있던 양국이 과도기도 거의 거치지 않고 통합된 전례가 없었기 떠문이다.
한마디로 이 [2+4 회담]의 성사로 인한 조약체결은 독일통일의 외형적 최종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르샤바 조약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에서 서독과 폴란드 수상 간에 조약이 서명되었다. 두 나라는 이 조약 제1조에서 1945년 8월의 포츠담 회담에서 결정된 대로 오데르-나이쎄 강 선이 폴란드의 서부 국경선임을 인정하였다. 브란트 수상은 폴란드 방문 중 2차대전 중에 희생된 유태인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어 과거를 반성하는 서독의 새로운 의지를 보여주었다.
@동서독 기본조약
서독은 '1민족 2국가론'에 의거해 동독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대사가 아닌 상주 대표를 교환하고자 했다. 동독은 '2민족 2국가론'을 내세우면서 서독이 동독을 법적으로 승인해야 하고, 동서독 관계가 독립국가간의 관계와 같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서독은 국제법상으로 동독을 승인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었다. 1972년 10월말 동독은 지금까지의 강경한 입장에서 후퇴하여 정식 승인이니 애사교환이니 하는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하였다. 1972년 12월 21일 동독의 바르와 서독의 콜은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간 관계의 기본에 관한 조약" (기본조약)에 서명하였다. 이 조약으로 동서독은 분단된지 23년만에 동등권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에 접어들었다.
@ 프라하 조약
서독은 소련 및 폴란드와 조약을 체결하고 동독과도 기본조약을 체결하여 동서독간은 물론이거니와 전유럽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제 브란트 수상은 체코슬로바키아와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양국간의 관계에 있어서 걸림돌이 된 것은 1933년의 뮌헨 협정으로 독일에 귀속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쥬데텐 지방 문제였다. 1973년 12월 11일 프라하 조약이 두 나라 수상에 의해 서명되었다. 조약 제1조에서 뮌헨 협정은 무효로 간주되었다. 서독은 이 조약으로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관계를 개선함은 물론이고 헝가리 및 불가리아와도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브란트 수상은 그가 추진하는 새로운 동방정책의 주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제 서독은 소련 및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 증진은 물론이고 동독과도 폭넓은 교류가 가능하며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키워드

독일,   통일,   정당,   정치
  • 가격1,3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4.11.29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6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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