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I absolve you all. Amen!
Salieri는 관객인 우리들에게 마치 고해 성사의 신부처럼 우리의 죄를 사해 주겠노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Salieri의 죄에 대한 고백을 들은 것이 아니라 Salieri를 통해 우리의 죄를 고백한 것이 되어버렸다. Amadeus의 2장에서 우리는 Salieri의 죄를 들어주는 고해 신부의 역할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Salieri의 고뇌하는 모습과 범죄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차츰 신부의 역할에서 Salieri의 범죄에 동참한 공법자의 역할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Salieri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Amadeus라는 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알게 될 것이다. 관객인 우리는 미래의 Salieri인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에게 현실의 인습과 규칙 속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강압적인 형식의 틀을 깨고 열정과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 욕망사이에서 자신의 재능과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Salieri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Peter Shaffer는 Amadeus를 통해 신의 똑같은 사랑과 능력을 부여받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인습의 덫에 걸려 그 능력을 파괴함으로써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모순적인 태도를 조소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간은 제각기 잘하는 것이 한 가지씩 있다. 그 재능을 발견하고 얼마나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그 분야에 있어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적인 소질을 보이는 아이를 법조계 공부를 시킨다거나, 컴퓨터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에게 컴퓨터 대신 두꺼운 의학 서적을 갖다 준다면 지금의 유명한 젊은 바이올린리스트나 대규모의 컴퓨터 회사 경영자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성공인, 유명인의 이야기는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너무 현실의 틀 에 집착하여 그 속에 마비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보통 사람들 모두 신의 Amadeus이다. 신으로부터 각자의 고유한 재능을 부여받았고, 그 재능을 살려 특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선택권도 받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선택권을 포기하고 현실 속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인습과 권력구조에 자신의 삶과 재능을 죽이고 있다. 우리는 쉽게 현실의 틀 속에 동화되고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 틀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열정과 자유를 마음껏 펼치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법칙 속에 우리의 재능과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 발전 가능성마저 파괴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삶만이 인생의 성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인생의 성공이란 하루를 살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자신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사회의 부분으로써 예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모두는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의 노력여하에 따라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기만의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역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을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틀 속에 가두어 놓고, 집착함으로써 삶을 낭비하고 있다. 우리 삶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아닌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과 삶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다 더 가꾸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태도야말로 자기 삶을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Salieri는 관객인 우리들에게 마치 고해 성사의 신부처럼 우리의 죄를 사해 주겠노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Salieri의 죄에 대한 고백을 들은 것이 아니라 Salieri를 통해 우리의 죄를 고백한 것이 되어버렸다. Amadeus의 2장에서 우리는 Salieri의 죄를 들어주는 고해 신부의 역할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Salieri의 고뇌하는 모습과 범죄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차츰 신부의 역할에서 Salieri의 범죄에 동참한 공법자의 역할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Salieri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Amadeus라는 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알게 될 것이다. 관객인 우리는 미래의 Salieri인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에게 현실의 인습과 규칙 속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강압적인 형식의 틀을 깨고 열정과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 욕망사이에서 자신의 재능과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Salieri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Peter Shaffer는 Amadeus를 통해 신의 똑같은 사랑과 능력을 부여받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인습의 덫에 걸려 그 능력을 파괴함으로써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모순적인 태도를 조소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간은 제각기 잘하는 것이 한 가지씩 있다. 그 재능을 발견하고 얼마나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그 분야에 있어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적인 소질을 보이는 아이를 법조계 공부를 시킨다거나, 컴퓨터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에게 컴퓨터 대신 두꺼운 의학 서적을 갖다 준다면 지금의 유명한 젊은 바이올린리스트나 대규모의 컴퓨터 회사 경영자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성공인, 유명인의 이야기는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너무 현실의 틀 에 집착하여 그 속에 마비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보통 사람들 모두 신의 Amadeus이다. 신으로부터 각자의 고유한 재능을 부여받았고, 그 재능을 살려 특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선택권도 받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선택권을 포기하고 현실 속에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인습과 권력구조에 자신의 삶과 재능을 죽이고 있다. 우리는 쉽게 현실의 틀 속에 동화되고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 틀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열정과 자유를 마음껏 펼치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법칙 속에 우리의 재능과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 발전 가능성마저 파괴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삶만이 인생의 성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인생의 성공이란 하루를 살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자신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사회의 부분으로써 예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모두는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의 노력여하에 따라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기만의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역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을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인 틀 속에 가두어 놓고, 집착함으로써 삶을 낭비하고 있다. 우리 삶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아닌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과 삶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다 더 가꾸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태도야말로 자기 삶을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