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서론
II. 시대적 상황
1. 19세기 초 독일의 정치적 상황
2. 대학 개혁의 사회적 배경
3. 19세기 초 독일의 지적 특징
4. 베를린 아카데미와 독일 대학
III. 베를린대학의 설립
1. 설립 배경
2. 빌헬름 홈볼트
3. 베를린 대학 설립 이후 독일 대학의 성격
4. 독일 대학 초기의 특징
5. 1820년대 이후 독일대학
IV. 독일에서 대학 개혁이 성공한 요인
1. 대학 내부구조의 우수성
2. 독일대학들 간의 경쟁
3. 교수의 임용조건의 변화
4. 경력취득을 위한 교육과정의 대두
V. 과학연구의 제도적 정착
1. 대학 내의 실험실 제도
2. 독일과학의 발전 - 제도적인 기반
3. 과학 발달로 인한 독일 산업의 발전
VI. 결론
II. 시대적 상황
1. 19세기 초 독일의 정치적 상황
2. 대학 개혁의 사회적 배경
3. 19세기 초 독일의 지적 특징
4. 베를린 아카데미와 독일 대학
III. 베를린대학의 설립
1. 설립 배경
2. 빌헬름 홈볼트
3. 베를린 대학 설립 이후 독일 대학의 성격
4. 독일 대학 초기의 특징
5. 1820년대 이후 독일대학
IV. 독일에서 대학 개혁이 성공한 요인
1. 대학 내부구조의 우수성
2. 독일대학들 간의 경쟁
3. 교수의 임용조건의 변화
4. 경력취득을 위한 교육과정의 대두
V. 과학연구의 제도적 정착
1. 대학 내의 실험실 제도
2. 독일과학의 발전 - 제도적인 기반
3. 과학 발달로 인한 독일 산업의 발전
VI. 결론
본문내용
따라 학위를 받기 위한 4-5년간의 연구과정이 연구자로서의 일자리에 대한 준비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이러한 경력이 교수의 선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과학연구 자체가 정규의 경력이 되었으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연구실이나 실험실을 중심으로 과학자 조직들이 발달하게 되었다.
V. 과학연구의 제도적 정착
1. 대학 내의 실험실 제도
교수에게 있어서 연구가 가장 중요하였으며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것을 위한 훈련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과학연구를 위한 훈련은 직접 실험실에서, 그리고 학생들을 직접 연구에 참여시킴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되었다. 이것은 교수로 하여금 장래의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고 대학으로 하여금 과학연구를 위한 실험실과 설비들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런 움직임의 결과로 19세기 중엽쯤 되면 독일대학의 몇몇 실험실들이 그 분야의 세계적 중심지가 되었다. 기쓴(Giessen)대학의 리비히의 유기화학실험실이나 베를린의 뮐러의 실험실은 대표적 예들이다. 19세기 말이 되면 몇몇 독일교수들의 실험실은 아주 유명해져서 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하게 되었으며 이들 유학생들이 바로 다음 세대에 그 분야의 지도적 과학자들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00년경의 중요한 생리학자들 중에서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의 루드비히(Carl F.W.Ludwig 1816-1895)의 제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드물었으며, 심리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역시 라이프치히 대학의 분트(Wilhelm Wundt, 1832-1920)의 지도를 받았던 학생들이었다.
과학자들의 활동 무대는 이제 대학의 실험실이었으며, 이 실험실들은 많은 수의 연구생들을 교육시키고 이들로 하여금 같은 곳에서 교육받은 학자들 사이의 인간적 관계에 바탕을 둔 긴밀한 상호교류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몇 가지 선택된 문제들에 보다 잘 조직된 연구노력이 집중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1825년에서 1870년 사이에 독일대학에서 과학연구자라는 전문직과 과학연구실험실의 제도적 장치가 생겨났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경험과학은 어떤 실용적 가치를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대학 내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는 방법으로서의 우수성을 보이면 족했다. 대학이 경쟁적 체계의 일부였기 때문에 이 같은 우수성을 지닌 경험과학연구를 중요시 여기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실험적 과학연구는 사회의 일반적인 문화적, 정치적 여건과는 상관없이 대학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2. 독일과학의 발전 - 제도적인 기반
대학개혁 운동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독일대학은 세계최초로 연구중심의 대학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또한 경력이나 연구 업적이 중요시되는 상황 속에서 과학자들은 그 실용성의 여부에 상관없이 과학 그 자체의 연구에 힘쓸 수 있는 기반이 자리 잡히면서 독일과학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상당히 많은 분야에 있어서 독일은 세계과학의 중심지로서 인정받게 된다. 또한 이후 알트호프의 교육개혁을 통하여 많은 실업계학과와 공과대학들이 부흥하게 되면서 독일은 과학 분야와 기술 분야 모두에 있어서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3. 과학 발달로 인한 독일 산업의 발전
영국보다 100년이 뒤진 1860년대에 이르면 독일에서도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된다. 리비히와 호프만등의 연구실에서 배출한 과학자들이 산업계에 폭넓게 진출하면서 연구와 기업 활동 사이에 긴밀한 유대관계가 성립되면서 점차 경제활동의 기반이 성립되었다. 그 상승효과로 인하여 독일의 산업은 급속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말에는 화학 산업이 번영을 이루는데 1886-1900년 사이 독일의 염료특허는 948건인데 비해 영국은 겨우 86건에 불과하였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이러한 성공은 기술의 목표, 상품의 규격, 특허취급, 과학기술과 공업 교육체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지원과 관료제도 아래에서 효율성 있게 추진한 예이다. 그러나 독일이 과학기술과 공업 전반에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게 된 것은 근대 대학제도와 실험연구실제도를 통한 과학의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발전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VI. 결론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의 대학 개혁은 당시 독일이 처한 시대적 상황의 해결책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봉건적 잔재 속에서 낙후된 독일 사회를 통합하려는 국민적 정서와 지식인들의 의지가 문화 국가 건설에 대한 염원으로 나타났고, 교육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대학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된 학문 연구 여건 속에서 19세기의 독일 과학은 꽃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대학 제도는 유럽의 많은 대학들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원 설치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이렇게 과학이 제도권 속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부터, 이전의 프랑스와 영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과학 발전이 가능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에 부응하는 제도도 지속적으로 생겨나 과학 발전을 보조해왔다. 현대 사회가 수많은 법과 제도로 얽혀 있는 조직 사회인 것처럼 과학 연구 또한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는 훌륭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례를 베를린 대학 성립을 중심으로 독일 대학 제도와 독일 과학 발전의 긴밀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은 미국일변도의 대학 제도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효용성과 실제적 성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의 독일 대학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학문 자체의 탐구와 순수 학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비롯되어야 장기적인 학문의 발전과 국가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문헌
《과학사신론》(김영식임경순, 다산출판사, 1999년)
《사회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사회》(이관수, 한샘출판사, 1995년)
《과학 기술의 흥망》(Arimoto Tateo, 한국경제신문사, 1997년)
《독일이야기 1,2》(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 거름, 2000년)
V. 과학연구의 제도적 정착
1. 대학 내의 실험실 제도
교수에게 있어서 연구가 가장 중요하였으며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것을 위한 훈련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과학연구를 위한 훈련은 직접 실험실에서, 그리고 학생들을 직접 연구에 참여시킴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되었다. 이것은 교수로 하여금 장래의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했고 대학으로 하여금 과학연구를 위한 실험실과 설비들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런 움직임의 결과로 19세기 중엽쯤 되면 독일대학의 몇몇 실험실들이 그 분야의 세계적 중심지가 되었다. 기쓴(Giessen)대학의 리비히의 유기화학실험실이나 베를린의 뮐러의 실험실은 대표적 예들이다. 19세기 말이 되면 몇몇 독일교수들의 실험실은 아주 유명해져서 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하게 되었으며 이들 유학생들이 바로 다음 세대에 그 분야의 지도적 과학자들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00년경의 중요한 생리학자들 중에서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의 루드비히(Carl F.W.Ludwig 1816-1895)의 제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드물었으며, 심리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역시 라이프치히 대학의 분트(Wilhelm Wundt, 1832-1920)의 지도를 받았던 학생들이었다.
과학자들의 활동 무대는 이제 대학의 실험실이었으며, 이 실험실들은 많은 수의 연구생들을 교육시키고 이들로 하여금 같은 곳에서 교육받은 학자들 사이의 인간적 관계에 바탕을 둔 긴밀한 상호교류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몇 가지 선택된 문제들에 보다 잘 조직된 연구노력이 집중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1825년에서 1870년 사이에 독일대학에서 과학연구자라는 전문직과 과학연구실험실의 제도적 장치가 생겨났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경험과학은 어떤 실용적 가치를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대학 내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는 방법으로서의 우수성을 보이면 족했다. 대학이 경쟁적 체계의 일부였기 때문에 이 같은 우수성을 지닌 경험과학연구를 중요시 여기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실험적 과학연구는 사회의 일반적인 문화적, 정치적 여건과는 상관없이 대학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2. 독일과학의 발전 - 제도적인 기반
대학개혁 운동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독일대학은 세계최초로 연구중심의 대학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또한 경력이나 연구 업적이 중요시되는 상황 속에서 과학자들은 그 실용성의 여부에 상관없이 과학 그 자체의 연구에 힘쓸 수 있는 기반이 자리 잡히면서 독일과학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상당히 많은 분야에 있어서 독일은 세계과학의 중심지로서 인정받게 된다. 또한 이후 알트호프의 교육개혁을 통하여 많은 실업계학과와 공과대학들이 부흥하게 되면서 독일은 과학 분야와 기술 분야 모두에 있어서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3. 과학 발달로 인한 독일 산업의 발전
영국보다 100년이 뒤진 1860년대에 이르면 독일에서도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된다. 리비히와 호프만등의 연구실에서 배출한 과학자들이 산업계에 폭넓게 진출하면서 연구와 기업 활동 사이에 긴밀한 유대관계가 성립되면서 점차 경제활동의 기반이 성립되었다. 그 상승효과로 인하여 독일의 산업은 급속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말에는 화학 산업이 번영을 이루는데 1886-1900년 사이 독일의 염료특허는 948건인데 비해 영국은 겨우 86건에 불과하였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이러한 성공은 기술의 목표, 상품의 규격, 특허취급, 과학기술과 공업 교육체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지원과 관료제도 아래에서 효율성 있게 추진한 예이다. 그러나 독일이 과학기술과 공업 전반에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게 된 것은 근대 대학제도와 실험연구실제도를 통한 과학의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발전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VI. 결론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의 대학 개혁은 당시 독일이 처한 시대적 상황의 해결책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봉건적 잔재 속에서 낙후된 독일 사회를 통합하려는 국민적 정서와 지식인들의 의지가 문화 국가 건설에 대한 염원으로 나타났고, 교육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대학 개혁이 이루어지게 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된 학문 연구 여건 속에서 19세기의 독일 과학은 꽃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대학 제도는 유럽의 많은 대학들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원 설치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이렇게 과학이 제도권 속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부터, 이전의 프랑스와 영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과학 발전이 가능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에 부응하는 제도도 지속적으로 생겨나 과학 발전을 보조해왔다. 현대 사회가 수많은 법과 제도로 얽혀 있는 조직 사회인 것처럼 과학 연구 또한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는 훌륭한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례를 베를린 대학 성립을 중심으로 독일 대학 제도와 독일 과학 발전의 긴밀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은 미국일변도의 대학 제도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효용성과 실제적 성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의 독일 대학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학문 자체의 탐구와 순수 학문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비롯되어야 장기적인 학문의 발전과 국가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문헌
《과학사신론》(김영식임경순, 다산출판사, 1999년)
《사회 속의 과학, 과학 속의 사회》(이관수, 한샘출판사, 1995년)
《과학 기술의 흥망》(Arimoto Tateo, 한국경제신문사, 1997년)
《독일이야기 1,2》(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 거름,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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