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서론
■ 본론 < 1 >
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Ⅱ. 조선시대 여자가 결혼한다는 것
Ⅲ. 칠거지악은 빈 말? - 조선시대의 이혼 -
Ⅳ. 이혼, 소박 그리고 그 뒤...
■ 본론 < 2 > 논문 외에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
Ⅰ. 조선시대 역경 속 역동적 인생의 여인들
Ⅱ. 조선시대 재혼금지법의 탈출구 - 보쌈 -
Ⅲ. 남자에게 질 수 없다. - 악처열전 -
■ 결론
■ 본론 < 1 >
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Ⅱ. 조선시대 여자가 결혼한다는 것
Ⅲ. 칠거지악은 빈 말? - 조선시대의 이혼 -
Ⅳ. 이혼, 소박 그리고 그 뒤...
■ 본론 < 2 > 논문 외에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
Ⅰ. 조선시대 역경 속 역동적 인생의 여인들
Ⅱ. 조선시대 재혼금지법의 탈출구 - 보쌈 -
Ⅲ. 남자에게 질 수 없다. - 악처열전 -
■ 결론
본문내용
물론 재혼 금지 포고 이후 제작된 문화 유씨(文化 柳氏) 족보에도 재혼 관련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일반화되어 있던 '재혼'이 성리학이 토착화되기 시작한 16세기 이후 '금기'와 '위법'이 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재혼'은 '재가금지법'의 비상구로 보쌈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약탈혼의 일종인 보쌈은 일반형인 '과부 보쌈'이외에도, 총각과 처녀 보쌈도 있었다. 과부 보쌈은 '합의'와 '강제'의 방식 가운데서 양자택일되었다. 명문가의 청상과부를 탈법행위나 사회적 물의 없이 재혼시키기 위해 또는 '정력 왕성한' 권력가가 첩실을 들이기 위해 보쌈이 이용됐다. 물론 여성의 역할은 지극히 수동적이라는 문제점을 노출시킨다. 재혼 결정권과 지아비 선택권이 모두 시아버지와 장래 남편으로서의 '남성'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합의 보쌈은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강탈과 추적 행사를 통해 안전하게 '재혼' 행사를 진행한다. 관가의 묵인과 추적 행사를 통한 보쌈 사실의 선전으로 음모의 주범이 '위로'의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강제 보쌈도 행정 관청의 묵인 속에 진행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국대전> 예전(禮典) 혼인(婚姻)조에 혼기 단속과 결혼 지원을 명문화하고 있던 시대에, 노총각이나 홀아비의 보쌈은 탈법의 의미가 아닌 행정 책임자의 '짐 덜기'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숙종은 오랜 가뭄의 원인이 음양의 교합을 방해하여 천지조화를 깨트린 혼기 어긴 남녀에 있다며, 3개월 안에 20세 이상의 여성과 25세 이상의 남성을 모두 혼인시킬 것을 명한 일도 있었다. 약탈혼의 전형이었던 강제 보쌈의 형식은 '보부상' 보쌈에서도 나타난다. 전국을 떠도는 장돌뱅이가 현지처 조달 방식 선택한 보부상 보쌈은 장터 이동 시, 현지처를 버리고 감으로써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고종 32년에 보부상의 과부 보쌈 금지령을 선포했을 정도이다.
또한 광해군 때 유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보면 총각보쌈 이야기가 등장한다. 권세 가문의 과부가 성욕을 채우기 위해 나이 어리고 귀여운 유생을 납치해 하룻밤을 보낸 뒤 제거하거나, 과부가 될 팔자를 지닌 처자의 액땜용으로 '하루살이 남편'을 보쌈 했다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재가금지법'과 '보쌈'은 성별을 막론하고 피지배 계급 모두를 '양반 남성 권력'에 자발적으로 종속되게 만드는 문화적 코드의 하나였다.
Ⅲ. 남자에게 질 수 없다. - 악처열전 -
1. 평생 근심, 악처
우리 민족은 북방 기마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여자들의 목소리가 꽤 컸던 편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아들딸이 부모 유산을 똑같이 분배받았고, 제사도 아들딸이 돌아가며 윤회봉사로 모셨으며, 대개는 남자들이 여자 쪽 집에 장가들어 살았으니 여자의 입김이 센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여자들을 중문 밖을 못 나가게 안방에 꼭꼭 가둬놓고서는, <삼강행실도>나 삼종지의 등 갖가지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세뇌교육을 시켜놓았다.
-성호이익: "우리 나라는 여자의 권리가 너무 세서 집안의 법도가 서지 못한다."
자신이 겪은 바로는 사나운 아내를 둔 자를 주위에서 여럿 보았는데, 남자가 권세를 쥐고 있는 가정은 열에 한 둘도 못된다고 하였다.
-박제가 [북학의]: 여자들 옷이 저고리는 날로 짧아지고 치마는 날로 길어져서 이런 차림으로 봉제사 접빈객을 하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성종 때 성현 [용재총화]: 1일 근심은 아침에 마신 술이요, 1년 금심은 발에 맞지 않는 가죽신이요, 일생 근심은 성질 나쁜 아내라는 속담을 소개하면서 진실로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 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조선시대에 악처가 존재하였고,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다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무서운 아내들
-동양에서 무서운 아내의 대표적인 예
-한나라 고조의 비 여태후: 유방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척부인이라는 한 후궁을 유달리 총애하자, 질투와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여태후는 후궁의 눈을 도려내고 귀를 지지고 약을 먹여 벙어리를 만들고 손발까지 잘라 골방에 가두어두었다.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태자는 눈물을 펑퍼 쏟고는 어머니의 잔인무도함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여 1년간 병석에 드러눕고 말았다.
-중종 때 허지의 아내 유씨: 투기가 한번 발동되면 남편을 때리고 욕을 하면서 죽기 살기로 덤벼드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볏짚으로 만든 인형에 허지라고 이름 붙여 팔다리와 몸뚱이를 끊어 놓고는 계집종들로 하여금 뜰에 모여 축하하도록 하고, 남편이 사신으로 나갈 때에는 종들에게 문밖에서 곡을 하게 하여 남편이 죽어 발상하는 흉내를 내었으며, 이웃집 수탉이 암탉을 쫓아다니다 담장을 넘어오자 붙잡아 죄를 따지면서 "네 집에도 암탉이 있을 텐데 또 이웃집 암탉을 쫓아다니니 이것도 허지 같은 놈이다." 하고는 깃털을 뽑아 사지를 찢어 죽였다 한다.
-군자감 판관 신수린의 아내 성아기: 친정 덕에 출세한 남편을 업신여기고, 신수린이 한눈을 판 계집종을 잡아다 마구 두드려 패고, 돌로 입술과 이를 짓이기고 인두로 지져 결국 죽게 한 뒤 시체를 거적에 싸서 남편 앞에 내보이며 패악을 부렸다.
-중종 때 수안군수 홍태손의 처 신씨: 홍태손은 전처, 후처에게 모두 아들을 낳지 못하고 나이 쉰이 넘어 어떻게든 후사를 이어보려고 다시 신씨에게 장가들었다. 성깔이 보통이 아니었던 신씨는 홍태손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너는 늙고 못생긴 것이 기운도 없으면서 뭘 믿고 혼인하여 나를 시들게 하냐? 차라리 어서 죽어!" 하면서 남편을 구박하고 별거생활을 하였다.
■ 결론
조선시대의 가정사를 보면서 여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것은 남자의 종속물도 아닌, 생산을 위한 도구도 아닌 인간으로서의 한 집단이다. 조선시대 때 통치이념이 어찌되었던 간에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고 21세기에 맞은 여성을 활동이 필요로 되고 있으며 또 보장되어야 한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하며, 남녀간에 조화로운 삶을 모색해야 하겠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재혼'은 '재가금지법'의 비상구로 보쌈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약탈혼의 일종인 보쌈은 일반형인 '과부 보쌈'이외에도, 총각과 처녀 보쌈도 있었다. 과부 보쌈은 '합의'와 '강제'의 방식 가운데서 양자택일되었다. 명문가의 청상과부를 탈법행위나 사회적 물의 없이 재혼시키기 위해 또는 '정력 왕성한' 권력가가 첩실을 들이기 위해 보쌈이 이용됐다. 물론 여성의 역할은 지극히 수동적이라는 문제점을 노출시킨다. 재혼 결정권과 지아비 선택권이 모두 시아버지와 장래 남편으로서의 '남성'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합의 보쌈은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강탈과 추적 행사를 통해 안전하게 '재혼' 행사를 진행한다. 관가의 묵인과 추적 행사를 통한 보쌈 사실의 선전으로 음모의 주범이 '위로'의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강제 보쌈도 행정 관청의 묵인 속에 진행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국대전> 예전(禮典) 혼인(婚姻)조에 혼기 단속과 결혼 지원을 명문화하고 있던 시대에, 노총각이나 홀아비의 보쌈은 탈법의 의미가 아닌 행정 책임자의 '짐 덜기'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숙종은 오랜 가뭄의 원인이 음양의 교합을 방해하여 천지조화를 깨트린 혼기 어긴 남녀에 있다며, 3개월 안에 20세 이상의 여성과 25세 이상의 남성을 모두 혼인시킬 것을 명한 일도 있었다. 약탈혼의 전형이었던 강제 보쌈의 형식은 '보부상' 보쌈에서도 나타난다. 전국을 떠도는 장돌뱅이가 현지처 조달 방식 선택한 보부상 보쌈은 장터 이동 시, 현지처를 버리고 감으로써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고종 32년에 보부상의 과부 보쌈 금지령을 선포했을 정도이다.
또한 광해군 때 유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보면 총각보쌈 이야기가 등장한다. 권세 가문의 과부가 성욕을 채우기 위해 나이 어리고 귀여운 유생을 납치해 하룻밤을 보낸 뒤 제거하거나, 과부가 될 팔자를 지닌 처자의 액땜용으로 '하루살이 남편'을 보쌈 했다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재가금지법'과 '보쌈'은 성별을 막론하고 피지배 계급 모두를 '양반 남성 권력'에 자발적으로 종속되게 만드는 문화적 코드의 하나였다.
Ⅲ. 남자에게 질 수 없다. - 악처열전 -
1. 평생 근심, 악처
우리 민족은 북방 기마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여자들의 목소리가 꽤 컸던 편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아들딸이 부모 유산을 똑같이 분배받았고, 제사도 아들딸이 돌아가며 윤회봉사로 모셨으며, 대개는 남자들이 여자 쪽 집에 장가들어 살았으니 여자의 입김이 센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여자들을 중문 밖을 못 나가게 안방에 꼭꼭 가둬놓고서는, <삼강행실도>나 삼종지의 등 갖가지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세뇌교육을 시켜놓았다.
-성호이익: "우리 나라는 여자의 권리가 너무 세서 집안의 법도가 서지 못한다."
자신이 겪은 바로는 사나운 아내를 둔 자를 주위에서 여럿 보았는데, 남자가 권세를 쥐고 있는 가정은 열에 한 둘도 못된다고 하였다.
-박제가 [북학의]: 여자들 옷이 저고리는 날로 짧아지고 치마는 날로 길어져서 이런 차림으로 봉제사 접빈객을 하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성종 때 성현 [용재총화]: 1일 근심은 아침에 마신 술이요, 1년 금심은 발에 맞지 않는 가죽신이요, 일생 근심은 성질 나쁜 아내라는 속담을 소개하면서 진실로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 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조선시대에 악처가 존재하였고,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다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무서운 아내들
-동양에서 무서운 아내의 대표적인 예
-한나라 고조의 비 여태후: 유방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척부인이라는 한 후궁을 유달리 총애하자, 질투와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여태후는 후궁의 눈을 도려내고 귀를 지지고 약을 먹여 벙어리를 만들고 손발까지 잘라 골방에 가두어두었다.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태자는 눈물을 펑퍼 쏟고는 어머니의 잔인무도함에 삶의 의욕을 상실하여 1년간 병석에 드러눕고 말았다.
-중종 때 허지의 아내 유씨: 투기가 한번 발동되면 남편을 때리고 욕을 하면서 죽기 살기로 덤벼드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볏짚으로 만든 인형에 허지라고 이름 붙여 팔다리와 몸뚱이를 끊어 놓고는 계집종들로 하여금 뜰에 모여 축하하도록 하고, 남편이 사신으로 나갈 때에는 종들에게 문밖에서 곡을 하게 하여 남편이 죽어 발상하는 흉내를 내었으며, 이웃집 수탉이 암탉을 쫓아다니다 담장을 넘어오자 붙잡아 죄를 따지면서 "네 집에도 암탉이 있을 텐데 또 이웃집 암탉을 쫓아다니니 이것도 허지 같은 놈이다." 하고는 깃털을 뽑아 사지를 찢어 죽였다 한다.
-군자감 판관 신수린의 아내 성아기: 친정 덕에 출세한 남편을 업신여기고, 신수린이 한눈을 판 계집종을 잡아다 마구 두드려 패고, 돌로 입술과 이를 짓이기고 인두로 지져 결국 죽게 한 뒤 시체를 거적에 싸서 남편 앞에 내보이며 패악을 부렸다.
-중종 때 수안군수 홍태손의 처 신씨: 홍태손은 전처, 후처에게 모두 아들을 낳지 못하고 나이 쉰이 넘어 어떻게든 후사를 이어보려고 다시 신씨에게 장가들었다. 성깔이 보통이 아니었던 신씨는 홍태손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너는 늙고 못생긴 것이 기운도 없으면서 뭘 믿고 혼인하여 나를 시들게 하냐? 차라리 어서 죽어!" 하면서 남편을 구박하고 별거생활을 하였다.
■ 결론
조선시대의 가정사를 보면서 여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조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것은 남자의 종속물도 아닌, 생산을 위한 도구도 아닌 인간으로서의 한 집단이다. 조선시대 때 통치이념이 어찌되었던 간에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고 21세기에 맞은 여성을 활동이 필요로 되고 있으며 또 보장되어야 한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하며, 남녀간에 조화로운 삶을 모색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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