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창조 진화론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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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기독교창조 진화론과 과학

1. 인류화석에 대한 해석

2. 라마피테쿠스(Remapithecus)

3.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lopithecus)

4. 직립원인(Homo Erectus)

5. 북경인 (Peking Man)

6. 하이델베르그인 (Heidelberg Man)

본문내용

약 40마일 떠러진 산지란 (Sangiran)에서 더욱 자세히 조사를 했다. 그래서 치아를 포함한 턱뼈조각과 두개골 조각 및 두개골의 윗부분을 발견했다. 그러나 팔다리의 뼈는발견되지 않았다. 퀘니그스발트는 그가 발견한 것들을 피테칸트로푸스II,III,IV, 라고 불렀다. 부울과 발로아는 산지란에서 발견된 두개골들을조사해본 결과 듀보아의 것과 동일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대퇴뼈는 틀림없은 사람의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들이 발견한 치아들은 손상되지 아않은 채로 하악골에서 붙어 있었다. 부울과 발로아가 제시한 이 치아들의모든 특징들은 사람보다는 원숭이와 비슷하였다.
3) 듀보이스의 결론
여러사람들에 의해 자바인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가 있었지만 자바인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은 아이로니칼게 듀보이스 자신에 의해 제기되었다. 듀보이스는 자바인을 발견했던 듀보이스는 자바인을 발견했던 곳과 가까운 와드잭(Wadjac)이라는 곳에서 현생인류의 두개골 용적 평균치를 조금 넘는1550-1650cc의 용적을 가진 두개골(Wadjac skullh 로 알려져 있음)을 두개발견했으나 이는 이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이 사실을 발표했다면 그가 발견한 자바인이 "빠진 고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듀보이스가 와드잭 두개골을 공개한 것은 자의적이라기 보다는 타의적인것이었다.1922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슷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발표되자1923년에 비로소 듀보이스는 자기가 30년동안이나 와드잭 두개골을 감추고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가 와드잭 두개골의 발표를 고의적으로 회피한것은 고생물학계에 자바 원인, 즉 피테칸트로푸스를 유인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듀보이스는 죽기 전, 이미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이 피테칸트로푸스 즉 자바인을 사람이라고 믿게 되자 돌연그가 발견한 자바인이 단지 커다란 긴팔원숭이에 불과했다고 선언했다.
4) 그러므로 자바인은..
듀보이스가 트리닐에서 발견한 대퇴뼈는 그가 후에 발견하여 추가한 몇개의 다른 대퇴뼈들과 함께 사람의 것과 구별할 수 없다. 따라서 피테칸트로푸스를 원숭이 이상의 것으로 보는 이유는 단지 사람의 대퇴골이 유인원 유해들과 비슷한 장소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듀보이스가 수집했던 두개의 어금니와 한개의 앞어금니가 각각 우랑우찬과 사람의 것이라고판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대퇴뼈와 두개골 윗부분을 같은 생물의 것으로 연관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것에 관해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었던 듀보이스가 결국 피테칸트로푸스는 유인원이 아니고긴팔원숭이의 것으로 결론지었다. 결국 자바인은 사람의 대퇴뼈와 원숭이의두개골을 결합시킨 것으로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 형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5. 북경인 (Peking Man)
북경인의 화석은 1920년대에 북령에서 서남쪽으로 25마일 가량 떨어진 주구점(Choukoutien)의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때 발견된 것은 두개골 30개, 아래턱뼈 11개,치아 147개였다. 처음 발견한 치아 중 하나에 대해북경에 있는 유니온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수였던 블랙(Davidson Black) 박사는 이 치아를 중국의 고대 유인원, 혹은 사람과 유사한 동물이 존재한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이 동아물을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SinanthropusPekinensis)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것이 곧 북경인으로 알려졌다.
이 북경인 자료를 평가하는데 가장 치명적인 사실은 치아 두개를 제외한나머지 모든 자료가 1941년 12월 7일,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미국으로이송되는 중국 진앙부두에서 선적하기 직전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것이다.이 자료들이 없어진 것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이들을 북경으로부터 미해군 부대로 옮기다가 잃어버렸거나 탈취당했다는것이다. 사실 아무도 이 자료가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모른다. 1990년 초에는 이 화석을 되찾기 위한 범세계적인 캠페인을 벌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북경인에 대한 연구는 전적으로 그 당시에 연구한 사람들이 남겨둔 기록과모형 등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독일의 바이덴라이히(Franz Weidenreic)였다. 그는 북경인에 관한 논문을 발표햇으며 이것은 오늘날까지 북경인 연구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연구에참여했떤 학자들이 모두 진화론자들이였기 때문에 오늘날 학자들은 그당시진롸론자들로만 구성된 북경인 연구학자들이 남긴 자료에만 의존하고 있다.그러므로 북경인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증거들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있다.
6. 하이델베르그인 (Heidelberg Man)
하이델베르그인은 1907년 독일 하에델베르그 근교에 있는 마우어(Mauer)지방의 라인강변 모래구덩이에서 발견된 턱뼈로부터 재구성한 것이다. 사람들은 것을 인간의 가장 가까운 조상이며, 지금부터 50-150만 전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퍼져 살았던 직립원인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듀보아의 자바원인도 이 속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였다. 그후 진화론자들은 하이델베르그인의 연대를 좀 더 줄여 25만년전으로 잡고 인류진화를 증명하는 중요한 빠진 고리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는 턱뼈의 크리고 보아서는 매우 큰 유인원의 것이나 치아의 배열이나 형태로 보아서는 전형적인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그인도 진화의 중간형태로 받아들이기에는 몇가지 어려움이 있다. 한가지 이유는 그 턱뼈와 똑같은 구조의 턱을 가진 종족이 오늘날에도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지방에 살고 있으며, 그 턱뼈에 대응하는 두개골 형태는 오늘날 흑인들 중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하이델베르그인의 치아는 현대인의 치아와 완전히 같다. 그래서 유명한 진화론적 인류학자 허들리카(A.Herdlicka)는 "마우어인 즉, 하이델베르그인의턱뼈와 치아는 완전히 보존되어 있다.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람이 치아이다. 이 치아들로 인해 그들의 주인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하이델베르그인 역사 중간형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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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02.15
  • 저작시기2005.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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