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전혜린=-정신분석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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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보면 전혜린이 동생 채린에게 보인 애정은 곧 나르시시즘의 대상선택에 해당된다. 그와 더불어 생각되는 것은 전혜린이 이처럼 지극한 동생에의 애정은 장녀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분신적 관계>가 이룩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프로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해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감동적인, 하지만 근본에는 극히 어린애다운 양친의 애정은 양친의 부활된 나르시시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고 이 나르시시즘은 대상애로 변함으로써 기왕의 본질을 의심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양친의 애정>을 전혜린(장녀)의 동생에 대한 애정으로 바꾸어 놓으면 곧 그 애정의 본질이 나르시시즘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채린에 대한 그토록 감동적인 애정은 나르시시즘형의 애정이었다 할 때 거기엔 장녀 컴플렉스가 작용하고 있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부모의 애정 불균형(아버지의 편애와 어머니의 애정결핍)은 전혜린에게 모정에 대한 그리움을 염원케 했고 어릴 때 자기가 받았으면 했던 모정을 동생 채린에게 대상화했다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장녀가 아니었던들 동생에의 애정이 이처럼 절실할 수가 있고 또한 이별이 그처럼 분신의 찢김임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마음의 고향을 잃지 말고 살아다오. 내가 책을 쓰면 '채린이에게'라고 바치겠다 -중략- 자아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끊지 말고 자기를 미칠 듯이 사랑하고 아끼되, 자기의 추나 악을 바라보는 지성의 눈동자를 감지 말아줘>(남부독일 뮌헨에서 1956).
이쯤되면 동생 채린에의 편지들이 곧 자기의 분신이며 자기와 동일시되는 대상에의 사랑이고 소망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자기를 미칠 듯이 사랑하고 아끼되, 자기의 추나 악을 바라보는 지성의 눈동자>를 감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나르시시즘은 완성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엔 나르시시즘의 배리(背理)가 숨어있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의 배리>>
나르시시즘은 흔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도취나 자기찬미의 경향만을 주목하기 쉽지만 내면은 극히 갈등적이고 수면에 비치는 자기 모습에 매료되었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나르시소스처럼 자기고뇌적이고 파괴적인 요소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전혜린 자신도 그런 인식의 순간을 맛보고 있다. <어떤 동심의 오후 혼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을까? 불행의 인식이 싹텄던 것은 그 순간 이후 우리는 다시는 행복해지지 못한 것이다. 정화에게는 가능한 한 늦게 그 순간을 주고 싶다>(1959년 5월 *일 일기)
전혜린은 역시 동생 채린에의 편지(6)에서 <동생의 죽음을 탄함>이란 어떤 독일시인의 시를 적어 보내면서 <왜 그런지 동생에 관한 시라면 관심이 간다. 그리고 죽음에 관한 시도... 맨 끝귀절 '오! 감미로운 생이여 너는 죽었다'가 몹시 실감이 난다>고 적고 있다. 이에서도 동생에 대한 자기애적 동일시 감정을 엿볼 수 있고 또한 죽음에 대한 나르시시적 갈등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르시시즘이 과도하게 강해지거나 고착되는 것은 좋지 않은 경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의 긍정적인 면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이 점을 N.눈베르크는 <나르시시즘은 생명에 대해서 본질적인 것이므로 자기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도 좋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데 전혜린의 경우 나르시시즘은 어느 면 <생명에 대해서 본질적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또한 자아의 강화를 위해서는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가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인식 과정에서는 그것이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과 연관되고 있는 면이 많다.
<만약 내가 죽거든 채린이에게 나의 기념품으로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니체전집을 남기겠다>는 말도 하고 있는데 이런 죽음에 대한 언급들은 아마도 나르시시즘의 배리와 관련이 되는 것들이다. 이와 더불어 전혜린의 나르시시즘은 위에도 말한 장녀 컴플렉스 때문에 그 어느 쪽으로도 완성되지 못한 나르시시즘의 비극을 낳게 했다.
<<전혜린의 죽음>>
여기에서 나는 전혜린이 독일에서 귀국해서 살던 얼마간의 기간의 얘기를 생략하고 죽음에 관한 종말에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전혜린은 1월 11일, 31세를 일기로 짧은 생애를 닫았다. 전혜린의 죽음은 자살이란 말도 있고 수면제 과용이라는 말도 있다. 그 무렵 전혜린은 남편 K씨와는 이혼상태(1964년 합의 이혼)였다. 딸 정화를 데리고 친정에 있었는데 공직생활로는 성균관대학 조교수로 임명된 지 얼마 안되던 때였다.
전혜린은 죽는 전날까지도 죽음에의 징조라 할만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전날 밤 그녀와 최후까지 만났던 R여사의 회상에 다르면 <그녀는 국제 펜클럽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면서 얼마 전 건강진단을 해본 결과 완벽한 상태였다는 말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전혜린의 죽음은 수면제과용임은 확실한데 그것이 자살의 의도가 내포된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것이 가장 온당한 해석일 것이다. 다만 전혜린의 후년의 일기나 수상 등을 보면 죽음, 권태, 우울, 불안 등에 관한 어휘가 수없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그 무렵의 전혜린은 그런 극단적인 <치우친 성격>으로는 일상성을 용납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웠던 나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거의 일관적으로 <완전한 삶에의 순간>을 추구하면서도 한편 <무명으로 남을 용기>도 없었던 그녀-그것은 곧 현실에 대해서도 남다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는 모습을 노정하고 있다. 이런 모순은 삶의 어느 순간 자기파괴본능의 위협이 엄습할 수도 있다.
전혜린은 그런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에서 자살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적극적인 의도로서가 아닌 수동적인 뜻에서의 <자살의 수용이라고나 할>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전혜린의 비극의 근본은 정신분석학적 의도로 추구해 본다면 나르시시즘의 행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모든 생애를 자기인식에 바치고 싶다던 그녀의 정신성과 나르시시즘의 집착 사이에는 그만큼 뛰어넘을 수 없는 관념의 벽이 있었다. 나르시시즘적 경향은 대인관계를 어렵게 한다. 자기 외적 범주에 속하는 몇몇 사람 이외에는 <속물성에 대한 혐오>를 느끼던 전혜린으로서는 결국 자살은 나르시시즘의 파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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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5.03.24
  • 저작시기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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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89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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