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음된 조각들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흐름을 창출해 냈다. 단일 녹색인 4개의 기둥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거대한 아치 밑에서 측면부 벽체를 각각 지지하고 있다. 이 기둥들 위로 6개의 적색기둥들은 여성용 회랑높이까지 올라가 있으며 전 벽체는 아래로 대리석 위로는 모자이크가 덮어져 있다. 주된 네이브의 외곽부에는 250개의 정련된 대리석 기둥들로 채워졌다. 사원의 입구에는 나르텍스, 궁륭들 모두 4개가 모자이크되었으며 그 거대한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의 품 안에 있는 아기예수가 묘사되어 있다. 나르텍스는 거대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리석 기둥으로 이어지는 반 돔에 의해 지붕이 구성되어 있고 반대편 끝 쪽의 후진(예배당 동쪽 끝의 반원형 부분)은 다른 반구형 돔에 다섯 개의 창과 모자이크로 외곽을 형성하고 있다. 5기둥 위에 보다 작은 장식 궁륭으로 지지되고 있는 어두운 쪽의 화랑과는 대조적으로 사원의 중앙부 공간은 33m 정방형의 공간이 4각의 귀퉁이에서 장중한 기둥으로 확대되고 돔의 밑면에 있는 40개의 창에서 빛이 들어온다. 이들 창에서 들어오는 빛은 마치 얇은 나선형 돔이 각각의 기초에서 귀퉁이의 기둥에 의해 한정된 듯한 사각평면으로부터 돌출되는 4개의 곡면 펜덴티브와 4개의 거대한 아치에 의해 지지된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사원 위를 떠 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전체 돔이 천지창조의 조물주인 예수의 거대한 상을 새긴 황금색 표면이고 이 거대한 공간의 중앙부위를 떠도는 듯한 4개의 펜덴티브에는 4명의 천사들을 표현하는 모자이크가 덮여져 있다.
사원의 구조(The Structure of the Church)
네 귀퉁이 각각의 기둥으로 구성된 정방형을 가정하자. 한 쌍의 기둥 사이에 반구의 모양을 지닌 완전한 아치에 의해 스팬이 걸쳐지는데 반구의 크기는 그 스팬의 크기에 반이 된다. 수평원은 이러한 4개의 아치 위에 형성되며 그 위로 돔이 올라서게 된다. 원래의 돔은 13.5m 높이의 완전한 돔이 아니라 약 7.5m 높이였다. 그러므로 돔은 얕았고 하나의 뒤집혀진 접시모양이었다. 접시모양의 돔은 40개의 등간 방사형 리브로서 강화 보강되었고 40개의 창이 돔의 하부에 있는 40개의 리브 사이에 설치되었다. 곡면으로 돔 상부의 수평원과 기둥에서 오르는 아치 사이의 개구부를 마감하였다. 이러한 곡면부, 즉 펜덴티브는 삼각형의 모양으로서 낮은 각 부위는 기둥에 의해 지지된다. 남북으로 개구부가 있고 돔을 지지하는 측면의 아치는 부분적으로 벽체로 세워졌으며 그 벽체는 4개의 커다란 녹색 기둥위에 놓여있다. 또한 이 기둥들은 6개의 작고 붉은 대리석 기둥들을 받치며 이것들이 벽체를 지지한다. 이 벽체는 3열의 창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서 벽체 하부에 있는 기둥과 함께 개방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하부의 창열은 실제로 벽체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나중에 막혀 졌다. 출입구 쪽의 서쪽아치와 후진 쪽의 동쪽아치는 벽체로 마감되지 않고 그 측면에 주된 2열의 동서 기둥과 주기둥의 동서에서 좀 더 작은 보조기둥 위에 2개의 반 돔이 있다. 또 그 옆에는 2개의 보다 작은 반 돔과 통형궁륭이 있다. 통형 궁륭은 사원의 동서 축선상에 있으며 동쪽의 통형지붕은 나머지 반 돔으로 닫혀졌고 이것이 후진의 지붕을 형성한다. 모든 작은 반 돔은 마치 측면 벽체처럼 반원 위에 놓여진 두 쌍의 기둥열에 의해 지지된다.
마지막으로 측면 남북 벽체 외부의 아일(Aisle:교회 측면의 복도)은 통형 궁륭에 의해 연결되는 장축의 기둥 열로 구성되었다. 또한 외부벽체는 일변 60m 정방형으로 전체 교회를 구획하고 있다. 구조의 기하학적 체계는 단순하며 내부 공간의 체계와 연관 된다.
그리하여 그는 횡단의 30.6m 스팬과 종단의 60m 스팬으로 전례없는 무주 공간으로 완성하였다. 재료도 무한의 차원을 형성하고자 나무를 지붕재로 쓰지 않았다. 그래서 성 소피아 사원은 방화성능을 갖게 되었고 목재 사용 기피의 결과로 장대한 스팬은 아치, 통형지붕, 돔 등으로 지붕을 마감하였으며 돌과 벽돌같은 압축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4개의 주된 기둥(Pillar)과 4개의 보조기둥이 거의 모든 구조체의 자중을 지지하고 돔의 붕괴에 대항하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기둥을 무겁고 강한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벽돌사이를 완전하게 접합하기 위해 가죽을 끼워댔고 기둥모양의 돌로 역시 중요한 접합부의 벽체와 반돔측면궁륭을 지지하도록 사용하였다.
또한 돔은 비잔틴식 벽돌로 건조되었는데 약 45cm 정방형에 약 5cm 두께이다. 벽돌들을 서서히 그 자체 강도까지 경화시키고 인접한 벽돌표면 사이의 불완전함을 부드럽게 해주는 석회 몰타르로 접합하였다. 몰타르가 응고해서 벽돌들을 거의 일체식 구조로 부착시킬 때까지 시공 중 아치궁륭돔 등을 지지하기 위하여 대형 목재 비계를 조립, 이용하였다.
성 소피아 사원의 운명
안테미우스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원을 설계하고 건축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거장이 되어 죽었으나 걸작이 봉헌된 지 21년만에 553년과 557년 두차례의 지진으로 인해 인접 반돔이 접해 있는 동쪽아치와 주 돔의 일부가 붕괴 되었다.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수평 아치에 의한 돔의 부벽이 충분치 못하여 돔의 추력 아래 또한 몰타르의 완만한 수축에 의해 남북의 아치는 조금씩 외향 하였으며 동쪽아치의 지주가 무너지고 반 돔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개의 거대한 구석 부벽이 교회 남북쪽의 외부에 세위졌다. 그리하여 서구에서 고딕성당의 건축으로 얻게 된 부벽에 관한 지식으로 보수를 하게 되었다. 돔 하부에 체인으로 원을 돌려서 돔의 추력력을 감소시켜 드디어 구조적으로 안전한 교회로서 어떠한 약점도 나타내지 않고 지진들을 모두 저항해 냈다. 그러나, 성 소피아 사원은 자연의 힘보다는 인간의 손에 의해 더욱 고통을 받아 왔다. 먼저 사원의 내부는 기독교 분파인 우상 파괴주의자들에 의해 모자이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서부 유럽의 십자군이 약탈하여 57년간 로마천주교제단으로 개조하여 사용되었으며 마지막으로 1453년 모하메드 2세가 성 소피아 사원을 회교사원으로 개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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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구조(The Structure of the Church)
네 귀퉁이 각각의 기둥으로 구성된 정방형을 가정하자. 한 쌍의 기둥 사이에 반구의 모양을 지닌 완전한 아치에 의해 스팬이 걸쳐지는데 반구의 크기는 그 스팬의 크기에 반이 된다. 수평원은 이러한 4개의 아치 위에 형성되며 그 위로 돔이 올라서게 된다. 원래의 돔은 13.5m 높이의 완전한 돔이 아니라 약 7.5m 높이였다. 그러므로 돔은 얕았고 하나의 뒤집혀진 접시모양이었다. 접시모양의 돔은 40개의 등간 방사형 리브로서 강화 보강되었고 40개의 창이 돔의 하부에 있는 40개의 리브 사이에 설치되었다. 곡면으로 돔 상부의 수평원과 기둥에서 오르는 아치 사이의 개구부를 마감하였다. 이러한 곡면부, 즉 펜덴티브는 삼각형의 모양으로서 낮은 각 부위는 기둥에 의해 지지된다. 남북으로 개구부가 있고 돔을 지지하는 측면의 아치는 부분적으로 벽체로 세워졌으며 그 벽체는 4개의 커다란 녹색 기둥위에 놓여있다. 또한 이 기둥들은 6개의 작고 붉은 대리석 기둥들을 받치며 이것들이 벽체를 지지한다. 이 벽체는 3열의 창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서 벽체 하부에 있는 기둥과 함께 개방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하부의 창열은 실제로 벽체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나중에 막혀 졌다. 출입구 쪽의 서쪽아치와 후진 쪽의 동쪽아치는 벽체로 마감되지 않고 그 측면에 주된 2열의 동서 기둥과 주기둥의 동서에서 좀 더 작은 보조기둥 위에 2개의 반 돔이 있다. 또 그 옆에는 2개의 보다 작은 반 돔과 통형궁륭이 있다. 통형 궁륭은 사원의 동서 축선상에 있으며 동쪽의 통형지붕은 나머지 반 돔으로 닫혀졌고 이것이 후진의 지붕을 형성한다. 모든 작은 반 돔은 마치 측면 벽체처럼 반원 위에 놓여진 두 쌍의 기둥열에 의해 지지된다.
마지막으로 측면 남북 벽체 외부의 아일(Aisle:교회 측면의 복도)은 통형 궁륭에 의해 연결되는 장축의 기둥 열로 구성되었다. 또한 외부벽체는 일변 60m 정방형으로 전체 교회를 구획하고 있다. 구조의 기하학적 체계는 단순하며 내부 공간의 체계와 연관 된다.
그리하여 그는 횡단의 30.6m 스팬과 종단의 60m 스팬으로 전례없는 무주 공간으로 완성하였다. 재료도 무한의 차원을 형성하고자 나무를 지붕재로 쓰지 않았다. 그래서 성 소피아 사원은 방화성능을 갖게 되었고 목재 사용 기피의 결과로 장대한 스팬은 아치, 통형지붕, 돔 등으로 지붕을 마감하였으며 돌과 벽돌같은 압축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4개의 주된 기둥(Pillar)과 4개의 보조기둥이 거의 모든 구조체의 자중을 지지하고 돔의 붕괴에 대항하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기둥을 무겁고 강한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벽돌사이를 완전하게 접합하기 위해 가죽을 끼워댔고 기둥모양의 돌로 역시 중요한 접합부의 벽체와 반돔측면궁륭을 지지하도록 사용하였다.
또한 돔은 비잔틴식 벽돌로 건조되었는데 약 45cm 정방형에 약 5cm 두께이다. 벽돌들을 서서히 그 자체 강도까지 경화시키고 인접한 벽돌표면 사이의 불완전함을 부드럽게 해주는 석회 몰타르로 접합하였다. 몰타르가 응고해서 벽돌들을 거의 일체식 구조로 부착시킬 때까지 시공 중 아치궁륭돔 등을 지지하기 위하여 대형 목재 비계를 조립, 이용하였다.
성 소피아 사원의 운명
안테미우스는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원을 설계하고 건축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거장이 되어 죽었으나 걸작이 봉헌된 지 21년만에 553년과 557년 두차례의 지진으로 인해 인접 반돔이 접해 있는 동쪽아치와 주 돔의 일부가 붕괴 되었다.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수평 아치에 의한 돔의 부벽이 충분치 못하여 돔의 추력 아래 또한 몰타르의 완만한 수축에 의해 남북의 아치는 조금씩 외향 하였으며 동쪽아치의 지주가 무너지고 반 돔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개의 거대한 구석 부벽이 교회 남북쪽의 외부에 세위졌다. 그리하여 서구에서 고딕성당의 건축으로 얻게 된 부벽에 관한 지식으로 보수를 하게 되었다. 돔 하부에 체인으로 원을 돌려서 돔의 추력력을 감소시켜 드디어 구조적으로 안전한 교회로서 어떠한 약점도 나타내지 않고 지진들을 모두 저항해 냈다. 그러나, 성 소피아 사원은 자연의 힘보다는 인간의 손에 의해 더욱 고통을 받아 왔다. 먼저 사원의 내부는 기독교 분파인 우상 파괴주의자들에 의해 모자이크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서부 유럽의 십자군이 약탈하여 57년간 로마천주교제단으로 개조하여 사용되었으며 마지막으로 1453년 모하메드 2세가 성 소피아 사원을 회교사원으로 개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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