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2. 본 론
1) 분할적 형태의 재정,경제구조
2) 전업적, 분업적 형태의 신분,직역 구조
3) 벌집구조의 사회구성, 군현제와 부곡제
3. 결 론
* 참고문헌
2. 본 론
1) 분할적 형태의 재정,경제구조
2) 전업적, 분업적 형태의 신분,직역 구조
3) 벌집구조의 사회구성, 군현제와 부곡제
3. 결 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최후의 승자인 왕건이 고려를 건국했던 것이다. 건국 이후 태조 왕건은 전략적 요충지 중요교통로 생산의 거점 지역에는 군현을 새로 설치해서 중앙이 직접 지배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통합전쟁에 협조한 일부세력에게 성씨를 부여하고 그들의 영역을 본관으로 삼아 해당 지역을 주현으로 삼고, 주변지역을 속현으로 만들어 주현에 예속시키는 형식으로 지방제도를 편성하였다. 고려시대 지방제도가 복합적 양상을 띠게 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이다.
향 부곡 발생의 2가지 경로
고려와 같이 지역적 격차가 큰 사회에서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려는 국가의 노력가운데 부곡제라는 지방 행정단위가 형성되었다.
경제력이 열악하여 토지소유에서 배제된 일반 농민들은 산간 오지나 벽촌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촌락인 新村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4~6세기부터 시작되어 6세기 이후 대량으로 증가하여 이것을 국가 차원에서 군현 질서로 편입시키는 가운데 향 부곡과 같은 특수한 지방 행정단위가 형성된 것이다. 즉, 부곡제는 농경제 개간이라는 추세 속에서 형성되어 갔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경로는 후삼국 통합전쟁에서 반기를 둔 지방세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고려 초기 역명자(逆命者), 즉 반왕조적인 세력 집단을 향 부곡지역에 편제시켜 각종의 천역에 종사시켰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즉, 군현제 영역과 부곡제 영역으로서 하나의 지방 행정단위를 이루었던 고려시대 군현제는 지방세력의 편제과정과 삼국시대 이래 지속적인 개간 및 새로운 촌락의 증가 현상이라는 사회 경제적인 발전 과정 속에서 나온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부곡제는 지역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즉, 군현제와 부곡제영역이라는 복합적이고 계서적인 군현구조는 고려 초 정치변동의 산물이자, 사회경제적 수준이 반영되어 나타난 체제라 파악할 수 있다.
Ⅲ.결론
분할적 재정운영방식의 상징적인 제도는 바로 전시과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전시과는 재정운영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리한 제도로써 조선시대와 같이 모든 재정을 국가가 관리하는 데에 따른 비용과 행정절차를 완화 경감 시켜주는 장점이 있으며, 중앙의 개입이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지방행정이 자율화되는 발전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에는 각 기관과 개인을 통제하기가 어려워 많은 폐단이 나타나게 되는데 특히 민에 대한 수탈이 극심해질 우려가 많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분할적인 재정운영, 즉 토지에 대한 수조권이 관청이나 개인에게 위임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즉, 분할적인 재정운영방식이 왕조질서 자체를 부정하고 신국가 건설을 지향한 고려시대 농민항쟁과 나아가 이성계 일파의 전제 개혁의 명분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 신분구조의 변동은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원인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그러한 신분 직역구조가 지역간 발전 격차를 해소하고 지방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합리적인 방안이었지만, 나중에는 점차 여러 모순이 거듭되면서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즉, 과중한 역 부담과 토지탈점 현상 등으로 인해 중세국가의 물적 토대였던 양인 신분층이 지배신분층과 천인 신분층으로 크게 분해되면서 신분 직역 구조가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그와 함께 고려왕조는 몰락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현제 영역과 부곡제 영역으로서 하나의 지방 행정단위를 이루었던 고려시대 군현제는 지방세력의 편제과정과 삼국시대 이래 지속적인 개간 및 새로운 촌락의 증가 현상이라는 사회 경제적인 발전 과정 속에서 나온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즉, 군현제와 부곡제영역이라는 복합적이고 계서적인 군현구조는 고려 초 정치변동의 산물이자, 사회경제적 수준이 반영되어 나타난 체제라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원적인 고려사회를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현재 모든 가치관과 질서가 동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계층과 계층사이, 세대와 세대사이, 그리고 지역과 지역사이의 대립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고려사회는 우리의 고민과 문제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역사적 가교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그것을 사회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고려역사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박종기, 『5백년 고려사』, 푸른물결, 2003.
향 부곡 발생의 2가지 경로
고려와 같이 지역적 격차가 큰 사회에서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려는 국가의 노력가운데 부곡제라는 지방 행정단위가 형성되었다.
경제력이 열악하여 토지소유에서 배제된 일반 농민들은 산간 오지나 벽촌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촌락인 新村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4~6세기부터 시작되어 6세기 이후 대량으로 증가하여 이것을 국가 차원에서 군현 질서로 편입시키는 가운데 향 부곡과 같은 특수한 지방 행정단위가 형성된 것이다. 즉, 부곡제는 농경제 개간이라는 추세 속에서 형성되어 갔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경로는 후삼국 통합전쟁에서 반기를 둔 지방세력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고려 초기 역명자(逆命者), 즉 반왕조적인 세력 집단을 향 부곡지역에 편제시켜 각종의 천역에 종사시켰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즉, 군현제 영역과 부곡제 영역으로서 하나의 지방 행정단위를 이루었던 고려시대 군현제는 지방세력의 편제과정과 삼국시대 이래 지속적인 개간 및 새로운 촌락의 증가 현상이라는 사회 경제적인 발전 과정 속에서 나온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특히 부곡제는 지역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즉, 군현제와 부곡제영역이라는 복합적이고 계서적인 군현구조는 고려 초 정치변동의 산물이자, 사회경제적 수준이 반영되어 나타난 체제라 파악할 수 있다.
Ⅲ.결론
분할적 재정운영방식의 상징적인 제도는 바로 전시과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전시과는 재정운영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리한 제도로써 조선시대와 같이 모든 재정을 국가가 관리하는 데에 따른 비용과 행정절차를 완화 경감 시켜주는 장점이 있으며, 중앙의 개입이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지방행정이 자율화되는 발전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에는 각 기관과 개인을 통제하기가 어려워 많은 폐단이 나타나게 되는데 특히 민에 대한 수탈이 극심해질 우려가 많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분할적인 재정운영, 즉 토지에 대한 수조권이 관청이나 개인에게 위임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즉, 분할적인 재정운영방식이 왕조질서 자체를 부정하고 신국가 건설을 지향한 고려시대 농민항쟁과 나아가 이성계 일파의 전제 개혁의 명분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 신분구조의 변동은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원인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는 그러한 신분 직역구조가 지역간 발전 격차를 해소하고 지방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합리적인 방안이었지만, 나중에는 점차 여러 모순이 거듭되면서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즉, 과중한 역 부담과 토지탈점 현상 등으로 인해 중세국가의 물적 토대였던 양인 신분층이 지배신분층과 천인 신분층으로 크게 분해되면서 신분 직역 구조가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그와 함께 고려왕조는 몰락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현제 영역과 부곡제 영역으로서 하나의 지방 행정단위를 이루었던 고려시대 군현제는 지방세력의 편제과정과 삼국시대 이래 지속적인 개간 및 새로운 촌락의 증가 현상이라는 사회 경제적인 발전 과정 속에서 나온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즉, 군현제와 부곡제영역이라는 복합적이고 계서적인 군현구조는 고려 초 정치변동의 산물이자, 사회경제적 수준이 반영되어 나타난 체제라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원적인 고려사회를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현재 모든 가치관과 질서가 동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계층과 계층사이, 세대와 세대사이, 그리고 지역과 지역사이의 대립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고려사회는 우리의 고민과 문제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역사적 가교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그것을 사회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고려역사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박종기, 『5백년 고려사』, 푸른물결,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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